그리스도께서 2천년 전에 이 땅에 계실 때 자신을 따라다니는 제자들 중에 11명은 자신이 직접 부르셨으나 애비의 힘으로 물질과 권세를 가지고 있던 그 마지막 제자는 자신이 부르신 제자가 아니요 그가 오직 자기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스스로 따라다닌 자였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제자들은 12명이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들 외에도 자신을 진실하게 따르는 영혼들은 그들의 마음과 결단이 약해도 모두다 자신의 제자로 보셨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마가는 새로운 것을 꺼리며 늘 불안한 마음가운데 있었으니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칠 때마다 항상 뒤로 도망가 숨는 소심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요한과 베드로처럼 가장 앞에 서서 적극적으로 따르지 못했으며 그로 인하여 12제자에는 속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아무리 연약하고 자신감 없이 항상 저만치에서 거리를 두고 자신을 따라다녔어도 그의 능력을 보심이 아니요 오직 그의 살고자하는 마음과 순종의 마음을 보시고 그를 자신의 제자로 인정하셨다.

 

또한 유대인들은 육신의 병을 고치는 일을 이방인들처럼 의사가 하는 것이 아니요 치료와 마무리 제사까지 오직 성전에 거하는 목자들이 행한다. 그러므로 누가는 자기 애비의 권세로 성전목자들 가운데 서기관의 위치를 얻어 윗사람들의 비위를 맞추면서 꼼꼼하게 글을 남기는 일을 행하고 있었으나 중간에 이것은 잘못된 일이라는 결단과 함께 의사의 일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랐으니 그리스도께서는 누가도 자신의 제자로 인정하셨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마가와 누가도 말씀의 목격자가 되어 보고들은 대로 기록할 수 있게 하셨고 거룩하신 영께서도 계시를 주셨기에 그들이 붓을 들어 그 복음서들을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이다. 또한 다른 서기관들과 70인과 120인 중에도 그리스도를 따라다니던 자들이 있었다. 또한 성전의 독사새끼들 중에 가장 악랄한 자로서 의문의 율법에 갇혀 신령한 율법을 깨닫지 못하면서도 말씀을 아는체하며 그저 세상의 명예욕으로 가득 차 대제사장만을 바라보고 온 힘을 다하던 자도 살고자하는 마음으로 돌이켰기에 그리스도께서 그 영혼을 자신의 제자로 받아주셨으며 거룩하신 영을 통해 그리스도의 계시를 받았기에 복음의 비밀을 기록해 이방인의 신령한 교회에 여러 서신서들을 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누가는 그리스도의 복음서를 기록할 때 12제자들 외에는 그리스도를 따라다녀도 제자라고 표현하지 않았으나 마태는 꼭 12제자가 아니더라도 그리스도를 따라다니면 다 제자라고 기록했다. 그러므로 마태는 그리스도께 죽은 자들로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라는 이 말씀의 비밀을 들었던 그 영혼을 제자 중에 또 하나라고 기록하는 것이요 누가는 그냥 다른 사람이라고 표현한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따라다니기는 했으나 12제자에 속하지 못한 한 제자가 자신의 애비를 잃었다. 그러므로 그는 부친을 장사하러 떠나기 전에 다녀오겠노라고 주님께 인사하러 나왔으되 어리석은 자들은 이 말씀을 보며 나는 제자이니 가족을 장사하지 않고 주님 위해 가족도 버리겠다 말한다. 한편 교만한 자들은 그럴듯한 말로 사람들에게 자기의 생각을 가르친다. “영이 산 자는 영이 죽은 자를 장사하면 안 된다.” “율법을 장사하라는 의미다.” “영혼을 살리는 일이 중요하니 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 “복음전하는 것이 육의 부모를 모시는 것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만일 그런 뜻으로 말씀하셨다면 그의 육의 애비를 누가 장사하리요? 셋째하늘의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그의 육의 가족들을 누가 돌보리요?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육의 애비의 장사를 다녀오며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영적인 의미를 다시 한 번 마음 깊이 기억하길 원하셨다.

 

첫째 사람은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자신에게 없는 것은 주고 싶어도 못 주고 오로지 자신에게 있는 것을 남과 나눌 수 있음이니 생명이 없는 자가 생명이 없는 다른 자에게 생명을 줄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은 사람에게 생명을 못 주되 오직 그리스도만이 사람에게 아버지의 영생을 전해줄 수 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오직 아들의 십자가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정하셨으니 누구든지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그 십자가의 길에서 새 생명을 이룰 수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의 그 평화의 복음을 다른 자들에게도 나누어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그가 어떤 사람이라도 자신에게 생명이 없으면 생명을 전할 수 없으니 생명 있는 자만이 생명 없는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겨 그에게 생명을 전해줄 수 있다. 그러므로 말씀의 씨로 영이 거듭난 자는 회개와 영의 거듭남의 생명을 전할 수 있고 거듭난 후 그리스도를 따르며 새 생명을 얻은 자는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얻는 영광의 복음도 나누어줄 수 있다. 하지만 자신에게 복음이 있다 하여 아무 때나 아무에게나 줄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생명 얻을 기회를 얻어야 하며 또한 간절히 생명을 원해야 한다. 즉 생명 없는 자는 육의 기회가 있을 때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져야 생명 얻은 자를 통해 그것을 전해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이방인들은 중생이 없는 영혼의 영원한 죽음을 모르니 숨이 붙어있는 자신이 살아있는 줄 알고 산 사람이라도 살아야 한다는 어리석은 말을 하되 거듭난 자들 가운데 자신의 생각과 의를 따르느라 의를 따르지 않는 교만한 자들은 자신이 복음을 들었고 새 생명 가운데 있노라 말하되 복음의 비밀과 새 생명이 무엇인지 모른다.

 

둘째 생명 없는 자가 생명 없는 자에게 생명을 줄 수 없는 것처럼 죽은 자가 죽을 자를 장사하지 못하며 또한 한다 하여도 죽은 자들이 하는 것이 아니요 오로지 이미 그를 선악의 죄와 세상으로 삼킨 자가 하는 것이다. 고로 이것은 사람의 육의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영적인 세계이니 사람의 영혼이 육에서 나오면 그가 쌓은 죄와 거룩에 따라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상급이나 혹은 형벌을 받는다. 그러나 사망으로 들어간 그의 육이 작은 알갱이(쿼크/렙톤)의 창조재료인 티끌로 돌아갈 때 원수가 세포들을 가져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이용한다. 그 이유는 마지막 때에 이 세상으로 올라올 자신을 예비하기 위함이니 자신이 육을 입고 나오기 전에 144000의 목을 베는 짐승들을 만들고자 하되 스스로 지혜롭다는 그가 티끌로 알갱이를 빚어 세포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영적인 세계에서는 죽은 자들조차 죽을 자를 장사하지 못하고 오직 거짓말의 아비가 그를 장사하고 있으니 사람이 어찌 죽은 사람을 장사할 수 있으리요?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사람들에게 천륜과 인륜을 다하도록 공평하신 뜻을 주셨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 보내므로 슬픔을 당한 자가 떠난 자의 마음을 깨닫고 행할 수 있는 일이 있으니 그것은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서는 각 사람의 영혼이 그리스도께 아뢰는 공통된 소원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이 땅에 남은 가족들은 죽은 자를 장사하고 있지만 한 사람의 육이 땅으로 돌아가며 그 영혼이 심판대에 섰을 때 그가 받을 생명과 사망의 상급과 또한 그가 어디로 갈지를 아버지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 법적인 심판대에서 정하신다. 그런데 그때 심판대에서 모든 영혼들이 한 가지를 늘 그리스도께 요청하니 그것은 그가 다시 이 첫째하늘로 내려와 자신이 사랑하는 자들에게 가기를 원함이다.

 

그 영혼들이 가족들에게 가기 원하는 이유는 오직 하나이니 사람들의 표현으로 하면 다음과 같은 영적인 유언을 전하기 위해서다. “나의 사랑하는 가족들이여 내가 인생을 살아보니 또한 죽어서 심판대에 서보니 돈을 따라가거나 이 세상의 영광을 구하거나 주님을 믿는다며 마음 없는 행위를 열심히 드리는 것이 사람의 목적이 아니요 마지막에는 죄와 거룩에 대한 심판과 상급이 있으니 부활을 소망하며 거룩의 믿음을 가지고 거룩에 애쓰며 자신의 영과 혼과 육을 거룩하게 지어가는 것이 삶의 목적이니라.” 즉 그들의 공통된 마음은 무저갱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그 부자와 같으니 부모로서 자기의 자녀들이 나중에 세상에서 잘되고 성공하도록 어릴 때 늘 공부하라는 말을 하는 것과 같다. 그러나 사람은 인격체이니 공부도 자기가 좋아야 하고 목적과 믿음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영혼들에게는 12제자들만이 아니요 연약한 제자들에게도 이렇게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에 대해 늘 알려주셨다. 그러므로 12제자가 아닌 그 제자는 이미 그전에 들은 바가 있었기에 그 말씀의 의미를 깨달았으며 또한 자신이 들은 대로 순종하고자 했다. 즉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를 따르며 받은 복음을 깨닫고 순종하므로 거룩을 이루어 새 생명을 얻은 후에 또한 자신의 가족과 친척과 친구의 영혼들도 불쌍히 여겨 생명을 전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의 마음에는 그리스도에 대한 의심 가운데 순종했을지라도 그리스도께서는 그런 마음도 불쌍히 여기셨으니 그것은 그가 비록 의심가운데 있으나 순종하려는 그 겸손한 마음을 보셨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하시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