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세 여자가 믿음이 부족하니 눈으로 읽은 말씀을 믿지 못했다. 언젠가는 반드시 생명의 열매를 맺기에 썩지 아니하는 씨이며 마음 안에 있는 그 강한 죄를 몰아내기에 거룩한 능력이며 이 어두운 세상에서 밝고 빛난 셋째하늘의 예루살렘성전까지 인도하는 그 십자가 길을 가는 자의 발 앞에 등인 그 빛 된 말씀을 보고도 순종치 못했던 것이다. 게다가 다른 자들도 자기들처럼 믿음 없이 말하며 행하는 것을 늘 눈으로 보고 귀로 들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순종치 못하는 자신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었다. 예를 들어 그들이 말씀을 펴서 보니 여자는 거룩한 자들이 함께 모였을 때 입을 열지 말고 집에 가서 남자에게 종용이 배우라고 되어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거룩한 몸에 있을 때 이런 저런 말을 했고 마음으로는 다른 자를 비판했고 심지어 앞에서 남자들을 말씀으로 가르치기까지 했다. 그러니 집에 있을 때는 입을 닫고 남자에게 말씀을 배우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자기가 머리가 되어 남자를 이끌므로 빛을 따르지 않았다. 영이 거듭난 후 아버지와 아들께로 소망을 두는 거룩한 여자는 오직 자기 남편에게 순종함으로 자기를 거룩하게 단장하여 구원에 이른다는 말씀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는 믿음 없는 그 영혼들에게 큰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베푸셨다. 즉 거룩한 자들이 모였을 때 입을 벌리지 않고 집에서 종용이 남편에게 배우는 한 여자를 보이셨으니 그들은 자신의 눈으로 살아있는 믿음을 직접 확인했다. 이때 첫째 여자는 남편에게 순종하여 자기를 거룩하게 단장하는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씀을 이전엔 믿지 못했으나 이제는 믿어졌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믿음이 없었음을 깨닫고 돌이켜 말씀에 순종한 그 여자도 결국 큰 구원을 이루었다. 즉 믿음 있는 자가 비추는 빛을 보고 그 빛으로 나아가 자신도 믿음을 얻어 그 빛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그 여자의 눈이 성했기 때문이었다. 한편 둘째 여자는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 그 거룩한 여자를 자신의 두 눈으로 직접보고도 말씀을 믿지 못했다. 그러므로 말씀이 찔러주고 거룩하신 영께서 책망하셔도 남편에게 불순종하는 자신을 돌이키지 못했으니 아버지께로 믿음도 또한 빛도 얻지 못하여 결국 큰 은혜도 얻지 못했다. 즉 눈으로 보고도 말씀에 불순종하므로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긴 것은 그 여자의 눈이 어두웠기 때문이다. 반면 셋째 여자는 자신의 입과 몸으로 늘 범죄하되 회개한 적이 없으며 오히려 자신은 믿는 자이니 믿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고 당당히 말했다. 또한 거듭남이 무엇인지 어떻게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지 몰랐으나 자신은 믿는 자이니 거듭났으며 빛에 거한다고 생각했다. 즉 그 여자에겐 거룩한 믿음을 보기 원하는 눈이 아예 처음부터 없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말씀을 믿고는 싶어도 믿음이 부족한 영혼에게는 아들의 거룩한 육체에 있는 창자국을 실제로 보여주신다. 또한 부활을 믿고 말씀과 그리스도의 계명에 순종하고 있는 자들의 그 거룩한 빛도 보여주신다. 이때 사람의 육체가운데는 귀가 들을 수 있듯 오직 눈이 볼 수 있으니 눈이 성한 자는 자신의 두 개나 되는 눈을 통해 빛에 거하는 영혼들을 보게 된다. 그리고 자신도 그리스도의 생명을 얻고자 그 빛으로 향하여 한걸음씩 나아가게 된다. 그리하여 자신의 눈을 통해 온몸이 빛에 거하므로 영이 거듭난 그가 이제는 혼도 거룩해질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마음에 있는 눈이 어두운 자는 빛을 보지 못하며 빛이 어디에 있는지 알지도 못하고 그곳으로 갈 수도 없다. 하지만 거룩하신 영께서 빛을 보이시지 아니하며 빛이 있는 곳을 알려주시지 아니하며 그의 발걸음을 그곳으로 인도하시지 아니함은 보혜사로서 돕는 일을 게을리하심이 아니요 그 사람의 마음이 원치 아니하기 때문이다. 즉 그는 마음속에 그 죄를 붙들고 있으며 그의 마음은 이 어두운 세상에 있으니 행여 그 빛을 본다 하여도 자기 스스로 그 빛을 거부한다. 그러므로 눈이 어두운 자는 영이 거듭난 후에 자신이 거하던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물러 있기에 혼의 거룩에 이르지 못하여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과 영광의 자유에도 이르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의 몸에 있는 그 눈이 성하냐 어두우냐에 따라 한 영혼의 생명이 좌우되는 것은 십자가 후로 교회시대마다 또한 마지막 때의 큰 환난에서도 동일하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큰 환난이 다가오는 이 마지막 때의 모든 영혼들에게도 아버지께서 택하신 일곱 교회들이 비추는 그 빛을 공평하게 보여주시고 들려주신다. 아버지의 뜻에 마음 없는 행위와 의문의 율법에 열심인 자들의 거룩한 모양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의 계명을 가지고 세상 끝날까지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 자들의 그 거룩한 능력의 모습을 보여주시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자들이 보고도 믿지 못하니 온몸이 빛으로 나오지 못하고 그냥 빛을 비추지 못하는 자들과 함께 거하며 육의 사망이나 슬피 울며 어두운 곳으로 들어간다. 또한 오히려 거짓된 자들과 끝까지 함께 거하며 영원한 형벌의 장소로 들어가는 자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전자가 빛으로 나오지 못함은 눈이 없어서가 아니요 오직 그들의 눈이 어둡기 때문이되 첫사랑을 잃고 영혼의 눈이 어두워진 것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지 않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후자가 영혼의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도 눈이 없어서가 아니요 자칭 믿는 자들과 함께 모여서 말하며 행하되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적이 없었으니 아예 처음부터 거듭남조차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전자든 후자든 모든 영혼들이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무슨 핑계가 있으리요?
“눈은 몸의 등불이니 그러므로 네 눈이 성하면 온 몸이 밝을 것이요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