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는 아버지와 아들께서 거룩하신 영을 통해 세우신 은사 자들도 있으나 원수가 세운 자들이 더욱더 많이 거하고 있으니 영적인 원인을 치료받지 못하고도 오직 육신만 병상에서 일어나는 자들이 많다. 그러므로 회개와 돌이킴 없이 일으킨 그 신유의 은사가 누구에게로 온 것인지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그리하여 불의와 죄악을 자신의 마음 깊은 곳에 그대로 숨겨두고도 원수에 의해 그저 육신만 일어난 자들은 반드시 자기의 뜻을 아버지의 뜻이라고 말하며 행하며 자신의 의로움과 높아짐을 이루어가게 되어있다. 하지만 많은 자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하여 질병에서 일어난 모습만을 바라보고 또한 그 후에 그가 거룩과 상관없이 이루어가는 큰 일들을 보며 그가 일어난 것과 이룬 일을 하나님의 능력과 거룩하신 영의 역사로 인정하면서 따라간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진흙이 떨어져나가는 병을 얻은 자가 찾아왔을 때 다른 병든 자들에게 하셨던 것처럼 그에게도 동일하게 돌이킴을 명하셨다. 이에 그는 자신의 모든 죄들을 마음을 다해 회개하고 완전히 돌이켰기에 그 영혼을 사망으로 이끌어가던 그 죄를 용서하시어 영의 생명을 허락하셨으며 또한 그가 거룩에 애쓸 수 있도록 그의 육신도 깨끗하게 하시므로 육의 수명을 연장해주셨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제사장들을 찾아가 그의 치유된 몸을 보이고 아버지와 원수가 되도록 이끄는 의문의 율법과 계명이 아닌 사람을 신령하게 하는 모세의 율법과 계명에 따라 예물을 드리라고 그에게 이르셨으니 그 이유는 첫째 질병에서 해방된 그가 신령한 계명에 순종하도록 하시기 위함이요 둘째 성전에 거하는 제사장들에게 증거할 것이 있으셨기 때문이다.
신령한 율법과 의문에 속한 율법의 차이는 이것이니 전자는 그리스도께서 모세에게 호렙산과 지성소에서 일일이 내려주신 것이요 후자는 그것을 제사장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바꾼 것이다. 깨닫기 쉬운 비유로써 어떤 왕이 두 종에게 석판을 주고 그것을 손에 들고 읽으며 그대로 행하라고 명했다. 하지만 한 종은 그것이 너무 무거워 일부를 깨서 버려버리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말을 종이에 써서 석판에 붙였으되 다른 종은 석판을 손에 들고 읽으며 그대로 행했다. 그러므로 전자가 바로 신령한 율법을 무겁게 여겨 자기의 의로 바꾸어 지킨 성전의 목자들이요 후자는 그리스도께 받은 것을 그대로 지켰던 세례요한까지의 선지자들이었으니 전자가 말씀을 힘겹게 느낀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썩어질 육의 욕심과 자신의 영광에 빼앗겼기 때문이되 후자는 여호와께 두었기에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율법에 죽기까지 순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의 육체로 폐하신 것이 바로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이되 다 이루신 것이 대대로 영원히 지켜야 할 신령한 율법과 계명과 법도와 율례다.
그리스도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제물가운데 진흙이 떨어져나가는 병에서 깨끗함을 얻은 영혼을 위해 가장 중요한 예물 두 가지는 첫째로는 양을 드리되 가장 젊고 아무런 흠이 없어야 하며 더불어 그 순한 짐승에게 아버지의 영광이 있는 양만을 드려야 하되 형편이 나은 자는 다른 한 짐승을 더 잡아 피를 흘릴 수도 있었다. 둘째로는 비둘기이되 날아다녔던 산비둘기가 아니요 어느 한 장소에서 따로 키웠던 집비둘기여야 된다. 이 두 가지가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람과 같이 육신을 취하시지 아니하시는 아버지께서 짐승의 살이나 피를 좋아하시거나 기뻐하시기 때문이 아니시니 오직 죄에서 자유를 얻은 그 영혼이 그 제사제물을 통해 그 피의 의미를 마음 깊이 깨닫고 있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즉 아버지께서는 그가 비록 자신대신 짐승을 잡아 그 피를 흘리되 오로지 그 의미를 마지막 제사의 그 순간까지 자신의 마음속에 늘 기억하고 있기를 원하셨던 것이다.
둘째 그리스도께서 당시 성전에 거하던 자들에게 증거하기 원하셨던 것은 바로 아버지의 아들이셨던 자신이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피를 진흙으로 가리는 범죄에 빠진 영혼에게 진흙이 떨어져 나가는 병을 허락하시거나 또는 회개하고 돌이킨 영혼의 육신을 낫게 하시는 분은 오직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밖에 없음을 제사장들은 잘 알고 있었다. 그리하여 성전에 거하며 오직 거룩한 모습의 본을 보이므로 자신과 백성들의 몸이 하나님을 위한 성전이 되게 하는 그 거룩한 일을 하던 자들에게 하나님의 나타나심을 증거하시기 위해서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 두 가지 목적을 위해 정결케 된 그 영혼으로 하여금 제사장에게 가서 보이고 증거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형편에 따라 수양과 집비둘기와 또한 소까지 가지고 성전의 제사장들을 찾아가 자신의 몸을 보인 후 제사장들을 통해 아버지께로 제사를 드렸다. 그런데 그때에 일곱 명의 제사장들 가운데 한 제사장이 그 영혼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그를 알아본 제사장이 자기의 입을 열어 이리저리 돌리지 못함은 이 땅에 하나님께서 내려와 계심을 자신의 두 눈으로 확인하고 두려웠기 때문이되 그는 돌이키기 보다는 오히려 슬쩍 뒤로 가서 숨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그 병에서 나음을 얻은 영혼을 통해 당시 백성들을 거룩으로 인도하던 성전목자들에게 자신을 증거하라고 하시므로 제사장들이 그 영혼을 위한 속건제를 드리며 이 땅에 아버지께서 내려오셨음을 깨닫기 원하셨다. 그러므로 그들도 아들을 통해 아버지를 맞이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지게 하심이요 또한 백성들에게 그것을 선포케 하므로 모든 백성들도 생명의 아버지를 만나 아버지와 함께 거할 수 있는 그 날을 사모하게 함이셨다. 그러나 입으로는 이 땅에 오시는 그리스도를 간절히 기다린다 말하되 그들의 마음은 오직 자기의 육과 높아짐에 있었다. 게다가 그리스도께서 오심을 믿고 인정하려면 그 누구보다 먼저 영혼의 목자인 자신의 마음을 돌이켜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가 앉은 자리에서 거룩은 이루지 아니하고 오히려 자신의 뜻과 계획을 아버지의 것이라며 이루어갔고 그 과정에서 백성들에게 얻는 물질과 영광이 좋았으니 그것을 끝까지 돌이키지 못했기에 어리석게도 죄와 두려움을 그대로 가지고 뒤로 들어가 숨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땅에 거하는 이방인목자들과 양들도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마지막 때에 동일한 일을 겪을 것이니 자신이 받은 그 십자가의 첫사랑을 잊고 썩어질 육과 헛된 영광에 마음을 빼앗긴 목자들과 자기의 생각과 의에서 돌이키지 못하여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하고 있는 목자들은 늘 하나님아버지 예수님 주여 주여라고 부르고 심지어 재림과 휴거와 마라나타와 대환난을 설교하며 양들을 위로하되 자신의 깊은 곳에 있는 그 욕심과 교만과 의를 돌이키지는 못한다. 그러므로 돌이키지 못하기에 의를 따르지 못하여 거룩을 이루지 못하는 목자들과 또한 성경을 펴서 자신이 들은 설교를 말씀에 맞추어보지 않고 따르는 어리석은 양들은 대환난전에 그들의 육이 사망의 은혜를 얻는다. 하지만 세상에 환난이 임할 때 그들이 찾고 부르짖어도 아버지께서 응답하시지 아니하심은 아버지께서 약속을 어기심이 아니시요 오직 그들 스스로 육과 세상에 두고 있는 그 음란한 마음을 끝까지 돌이키지 않았기에 환난 중에 큰 도움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거듭난 자들 가운데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와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의를 따르는 자와 말씀 앞에 자신의 의를 내려놓는 겸손한 자와 연약한 자와 첫사랑을 붙들고 거룩의 약속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세상에 환난이 임할 때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얼굴을 숨기시지 아니하시고 오른손과 왼손으로 구원하시어 피난처로 이끌어 들이시니 육과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킨 자들은 십자가아래에서 오직 거룩만을 이루어간다. 그리하여 영과 혼과 육의 정결함에 이른 영혼들이 대환난전에 공중으로 들림을 받아 신령한 몸을 입고 혼인잔치에 참여하며 대환난에서 몸의 산 제사로 영광을 돌려드린 영혼들이 거룩한 몸을 입고 144000에 참예하게 되는 것이니 거룩을 이룬 자녀들은 왕과 제사장으로서 이 땅에 내려와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다스린 후 그 천국의 끝에 셋째하늘로 올라가 영원토록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늘 영광 중에 거하게 된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 하시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