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족이 주유소에서 기름을 넣은 후 빨간 자동차를 타고 사막을 지나다가 기름이 다 떨어졌다. 그런데 가족들이 다 내려서 미는데 한 살도 안 된 아기가 운전대를 붙들고 있었으니 아기는 앞이 보이지 않아 차가 좌우로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게다가 뒤에서 미는 가족들도 역시 앞을 보지 않고 오로지 땅과 사막만을 바라보니 차가 앞으로 곧장 가고 있는 줄 알고 계속 열심히 밀었다. 그렇게 온 가족이 힘들게 차를 밀고 가다 높은 언덕길에 올라가서 밑을 바라보니 사막이 펼쳐져 있는데 오른쪽에는 차를 움직이게 하는 석유가 흐르는 강이 보였고 길의 양쪽으로 푸른 나무들이 자라고 있었으나 입구가 안 보였다. 게다가 사람들도 그 길로 가기를 꺼렸으니 하얀 자동차 일곱 대만 그 도로를 달리고 있었다. 반대로 왼쪽에는 눈과 몸을 즐겁게 해주는 유흥가가 있었고 길이 넓었으며 3개의 주유소가 있었지만 나무는 다 시들어 있었다. 하지만 검은 자동차들뿐만 아니라 빨간 자동차를 탄 다른 가족들도 그곳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것을 보자 운전대를 잡은 아기가 말하길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든지 반드시 왼쪽 길로 가야 한다고 했고 다른 가족들도 그 길을 선택했다. 결국 그 가족도 검은 자동차를 탄 가족들처럼 그 길로 들어가 주유소에 들러 기름을 넣었다. 그러나 그것이 물이라 겨우 6미터를 달리다 서버렸고 그들은 또다시 내려서 오직 땅과 사막만 보며 다음 주유소까지 힘들게 6킬로를 밀었다. 그러나 다음 주유소에서 넣은 것도 물이니 그들은 다른 가족들처럼 개고생을 하면서 계속 밀고 갔다. 그런데 그 길은 똑바로 정신을 차리고 보면 사람이 깨닫지 못할 정도로 조금씩 왼쪽으로 벗어난 길임을 알 수 있었지만 멍하게 있으면 그것이 안 보였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 길의 끝에 사망이란 푯말이 붙어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으니 그곳으로 떨어지면 영원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었다. 반면 오른쪽 길은 그 석유의 강이 어느 지점에서부터는 바닥까지 훤하게 보이는 맑은 생수의 강으로 변했다. 그리고 그 길의 마지막에는 영생이란 푯말이 있었고 그곳을 지나 올라가면 참으로 맑은 호수에서 기쁘고 즐겁게 안식하며 즐기는 낙원이 있었다. 그러므로 빨간 자동차를 밀면서 왼쪽 길을 힘들게 걷는 가족들 가운데 천에 하나 정도는 아주 드물게 두려움을 이기고 오른쪽 길로 돌이키는 가족도 있었다.

 

이와 같이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을 소원하니 누구나 다 그리스도와 함께 낙원에 거하기를 원하되 낙원으로 가는 그 길에는 육과 혼의 고난이 있다. 하지만 육적으로는 비록 고생스런 그 십자가의 길이 복된 이유는 늘 마음의 기쁨과 즐거움과 만족가운데서 너와 네 집이 그 생명의 길을 함께 걸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원수가 힘의 논리로 이끌어가는 이 어두운 세상에다 내놓은 길은 오직 썩어질 육과 헛된 세상을 즐기는 길이요 처음부터 끝까지 영원한 사망으로 부활하는 길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처음에는 모든 사람들이 다 공평하게 생명의 길과 사망의 길을 선택해 걸을 수 있도록 거듭남으로 그 길을 갈라놓으시되 그 후로는 생명의 길로 온 영혼들이 그 길을 끝까지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신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어떤 가족이든지 중생한 후 자신이 원하는 대로 둘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해 걸을 수 있으나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은 진리로 거룩해져 몸과 마음에 아버지께서 거하시므로 천국이 임하는 그 거룩한 부활의 생명을 원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비록 의식주에 대한 걱정과 자기의 생각과 의에서 돌이키는 두려움이 있지만 아버지께서 일용할 양식을 내려주시며 친히 거룩하게 하신다는 믿음으로 그것들을 이기고 그 생명의 길을 걷되 그 길에서 마음의 기쁨과 즐거움과 만족과 영혼의 안식을 얻고 또한 그 영광의 자유를 소망한다.

 

반면 원수는 사람들에게 참된 것을 주지 못하니 항상 거짓된 것을 보여주며 들려주며 사람들이 사망으로 들어가는 이 세상의 길을 끝까지 걷도록 돕는다. 그러므로 그 사망의 길을 걷는 자들은 이방인이든 거듭난 자든 육의 기쁨은 순간순간 얻을 수 있어도 진리가 없으니 마음은 공허하고 심판이 다가오니 영혼은 두렵다. 게다가 원수는 썩어질 육과 세상의 영광을 주었다 뺏었다 하니 사망의 길을 걷는 자들은 염려와 고통의 나날을 보내다 마지막에는 낙원이 아닌 사망으로 들어가 영원한 고통에 처하되 영원한 부끄러움이나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곳으로 들어가는 자들도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듭난 자들 중 적지 않은 자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며 생명의 길을 걷기보다는 세상을 따라 사망의 길로 가는 것은 참으로 그 가족들 가운데서 가장 어리석고 육적인 자가 다른 모든 가족들의 방향을 잡고 나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가족은 십자가의 피를 얻고도 거룩을 거부하고 이방인들처럼 육과 세상의 영광을 구하는 길로 갈 수밖에 없으니 이 세상에서의 꿈과 목표와 희망을 정해 그 사망의 길을 개고생하면서 지금까지 달려왔고 오늘도 달리고 있고 내일도 달릴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먹고 살아야지’라는 말을 버릇처럼 내뱉되 이방인은 정작 사람은 먹고 마시며 죽음으로 점점 가까이 가고 있다는 것과 사람이 왜 사는지도 당연히 모르고 있으니 이방인들이 어리석은 것이요 아님 약속을 얻고도 이방인처럼 사는 자들이 어리석은 것이요?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