앗사리온이라는 것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다 좋아하는 돈의 단위다. 모든 사람들이 아닌 이유는 그것이 일만 악의 뿌리임을 깨닫고 또한 그것이 처음에는 사람들을 묶어주지만 나중에는 그들의 관계를 벌리다 결국 원수처럼 변하게 하는 것임을 경험했으니 자기의 마음에서 그것을 다 내려놓고 오로지 필요한 만큼만을 취하며 그리스도만을 따르고 있는 제자들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그것이 사람을 불의와 죄와 비인격으로 이끌어 간다는 것을 그들만 알고 있는 것이 아니요 거의 모든 사람도 이미 다 알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지 못하는 것은 썩어질 욕심 때문이다.
돈은 세상에서 자신이 어느 계층에 있느냐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진다. 고로 피라미드의 꼭대기에 있는 소수부유층과 제일 밑에서 굶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동일한 1억일지라도 그 가치가 다르게 느껴진다. 또한 아무리 써도 줄지 않고 쓸수록 더 불어나니 돈 쓰는 재미가 없는 사람과 비싼 것들을 마음껏 누리는 사람과 중산층에 속한 사람과 가파른 피라미드를 올라가고자 달리는 사람과 별다른 재산 없이 매달 생계를 꾸려가는 서민과 4인 가족의 법적인 최저생계비를 보며 그럼 우리가족은 뭐냐고 생각하는 사람과 굶어 죽고 싶지 않은 사람과 바벨론에서 나와 광야에 거하며 하늘에서 내리는 만나와 메추리를 먹고 사는 사람이 보는 천원의 가치도 다르되 바벨탑을 짓고 있는 자들은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간신히 꾸려가고 있든지 누구나 다 돈에 매여있다.
이처럼 돈은 사람에 따라 그 가치가 달라지기에 그리스도 당시의 한 앗사리온을 지금의 가치로 환산하면 노동자의 하루 품삯의 십 분의 일에 해당한다고 설명해주어도 계층에 따라 버는 돈이 다르니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와 닿지는 아니한다. 그러나 진리는 그가 가난하든 부하든 능력이 있든 없든 남자든 여자든 노인이든 젊은이든 지식이 있든 없든 모든 사람들에게 공평하게 전해져야 하는 것이니 앗사리온의 가치가 어느 정도되는지 모든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현재 어디서 살고 있든지 어느 계층에 거하고 있든지 누구나 육신을 위해 밥을 먹고 있으니 네 명의 가족이 한끼식사를 하되 반찬은 포함되지 아니하고 오로지 쌀만을 구입하는 금액이 바로 한 앗사리온이다. 그리하여 앗사리온은 교회시대의 끝자락에 있는 서민가족에게는 라면 한 그릇을 사먹을 수 있는 정도의 가치가 있으나 다른 계층에게는 다른 가치로 다가온다.
한편 당시 유대인들이 앗사리온 하나나 둘로 참새를 사는 것은 우리가 전통시장에 가서 고등어를 사는 것과 비교하면 이해하기 쉽다. 생선을 파는 사람들은 큰 고등어로 작은 고등어를 감싸놓는다. 이때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고등어가 두 마리에 얼마라고 생각할 수 있으나 그것은 마리 수의 계산이 아니라 무게의 계산이니 같은 두 마리가 포개져 있어도 작은 것 두 마리 보다 큰 것 두 마리의 가격이 더 비싸다. 마찬가지로 당시에 참새를 파는 사람들은 두 마리를 한 앗사리온에 다섯 마리는 두 앗사리온에 팔았다. 이렇게 그들은 참새를 마리 수가 아니요 무게로 비교해서 팔았으니 원수가 아버지의 뜻을 깨닫지 못하고 가르치는 교만한 독사의 자식들을 통해 더하거나 빼서 바꾼 곳들과는 달리 마태와 누가가 참새의 마리 수에 대해 다르게 기록하고 있는 말씀은 두 가지 다 옳은 것이다.
그런데 당시 참새가 땅에 떨어지는 경우가 있었으니 참새장사들은 재물을 모으기 위하여 참새들을 가지고 시장에서 가서 사람들을 모아 그것들을 보여준다. 그러면 사람들은 참새들의 그 재롱을 재미있게 보았으니 참새장사에게 돈을 내거나 또한 자기의 아이들에게 주려고 몇 마리씩 사서 집에 가져가기도 한다. 고로 참새장사들은 참새를 통해 자기의 먹을 것을 얻을 수 있었으되 참새장사가 참새들에게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할 때가 있으니 그것은 주인이 오로지 자신의 것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말에 배고프면 담을 넘는다는데 짐승이랴? 그러므로 새들이 때로는 그 새장의 창이 열렸을 때 주인으로부터 달아나고자 떨치고 나온다. 하지만 주인은 날개 털에다 이미 줄을 묶어놓았으니 새들은 잠시 파닥거리며 날다가 땅으로 다시 내려온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오직 늘 자신만을 생각하는 그 참새장사와 같지 아니하시니 자기의 목숨을 내어놓고 오직 진리만을 전하며 십자가의 죽음으로 나가는 영혼들의 머리털까지 이미 다 세셨다. 그러므로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에서 나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 그 마지막 죽음을 바라보고 나가며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육의 먹을 것을 염려하지 말라는 뜻이다. 또한 참새들의 주인은 오로지 자신의 유익만을 구하되 셋째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그 유익만이 아니요 모든 영혼들의 그 유익을 위하시고 계신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원수가 공중권세를 잡고 이끌어가는 그 불의하고 죄악된 피라미드에서 마음을 돌이키고 나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우며 아버지의 그 뜻에 애쓰는 자들이 마지막 때에도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를 따르며 선한 길을 걷고 있는 자들은 자신의 배만 채우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니 사막에서 굶어 죽고 싶지 않은 자들을 불쌍히 여기며 그들에게 오직 진리만을 전한다. 이때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은 아버지의 그 뜻에 대항하고자 자신의 손을 펴서 그들의 모든 것을 다 조여 입에 풀칠도 못하게 한다.
그러나 마지막 때가 이르면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마음에 합한 자들을 통하여 허락하시고 합한 자가 없는 그 대환난가운데서는 그리스도께서 자연을 통해 광야에 거하는 자들을 먹이신다. 그러다 원수가 세상의 권세로 그들을 잡고 법으로 그들의 목을 베어 죽일지라도 아버지께서는 그 영혼들에게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한 육체를 입히시어 다시 살리신 후 그들의 몸을 성전 삼으시어 영광스럽게 하시므로 그들과 자신 모두에게 그 선한 유익을 끼치신다. 그리하여 약속의 자녀들은 태초부터 그 기쁘신 뜻을 위하여 소원을 두시고 행하시는 아버지의 말씀과 능력을 믿고 그 악한 자들과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오직 진리만을 전하며 그 생명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이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는 것이 아니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라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