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이방인이라고 하면 유대인의 12지파에 속하지 않은 사람들로서 이스라엘의 밖에 거하는 사람들을 떠올린다. 하지만 그 이방인들 가운데는 아브라함으로부터 그리스도의 당시까지 유대인들과 함께 거하던 이방인들이 있었다. 예를 들어 유대인들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그들을 함께 따라 나왔던 이집트인들이 있었으며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로 다닐 때에 포로가 되거나 자진하여 그들과 함께 광야 길을 걸었던 주변의 이방인들도 있었다. 또한 라합과 그의 가족들도 처음에는 이방인이었으나 그 일 후에 유대인들과 함께 거했다. 또한 예루살렘성전이 세워진 후에 여호와의 구원의 이름을 듣고 여러 지방과 민족에서 포로들이 돌아올 때 함께 온 자들도 있었다.
이처럼 할례를 받은 후에 이스라엘과 함께 살게 된 이방인들과 유대인들이 맺은 관계는 요즘에도 색깔과 언어가 다른 사람들이 함께 거할 때 벌어지는 일을 보면 이해하기 쉬우니 그들이 어렸을 때는 함께 어울리며 친밀한 관계를 맺지만 성인이 되고 성숙해지면 서로가 다른 것을 깨달았기에 그 친밀한 관계가 변하여 오히려 더 원수의 관계가 되었다. 그러므로 악한 유대인들은 자기의 조상 때부터 자기들과 함께 살던 그 이방인들의 후손들을 형제자매로 받기보다는 늘 낮게 여기며 종처럼 대우하므로 아버지께서 주신 그 계명들에 순종하지 못했으며 유대인들과 함께 거하던 이방인들 중에 악한 자들도 유대인들을 미워하며 싸웠으니 그들도 사랑의 계명을 지키지 못했다.
그리스도의 당시에 이렇게 유대인이 아닌 유대인으로서 유대 땅에 거하는 자들의 수효는 남자가 1872명이요 여자가 2134명이 있었으며 성인의 나이인 12세가 되지 않은 어린 남자는 881명이요 어린 여자의 수는 822명이었으니 그들이 바로 유대인의 하속이라고 불리는 자들이었다.
그런데 자기가 태어난 자기의 민족을 떠나서 다른 민족들이 거하는 땅에 살겠다는 것은 사람이 쉽게 내릴 수 있는 결정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의 하속의 조상들은 자기가 속한 그 뿌리를 떠났으니 그것은 그들이 유대인들에게서 육적인 것을 더 얻거나 혹은 이 세상의 나라에 속한 타락한 육적인 이스라엘에 그 어떠한 소망이나 영광이 있어서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들의 마음은 썩어질 육과 이 세상의 헛된 소망을 버리고 오직 율법과 계명과 법도에 순종하여 거룩에 이르므로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그 부활의 생명에 이르고자 자기가 태어난 민족을 떠났던 것이다.
그러나 유대인의 하속들과 그들의 조상들 가운데 자기의 민족을 떠나올 때 가졌던 그 첫 마음을 지키지 못한 자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택함의 은혜를 얻고도 거룩을 저버린 유대인들처럼 그 거룩한 뜰로 들어가 그들의 손을 펴되 오로지 썩어질 것들과 헛된 것들만을 구했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그 거룩한 곳으로 들어와 거룩한 행위의 모양을 보이되 영원한 생명을 주는 자신을 이방인들의 신처럼 섬기던 그들에게는 눈을 돌리시고 귀를 막으셨으니 그들도 육적인 유대인처럼 그저 아버지의 마당만 밟을 뿐이었다.
반면 그들 가운데 자신이 여호와를 만날 때의 첫 마음을 끝까지 지키므로 자기의 마음에 우상을 허락하지 않은 영혼들이 그리스도의 전에도 또한 그리스도의 당시에도 있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기들을 위한 뜰에 들어갔을 때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거룩에 이르고자 애썼다. 즉 그들이 자기민족의 풍습을 버리고 유대인의 약속과 또한 그 거룩한 행위의 능력을 따른 것은 그들이 오직 아버지의 뜻에 이르고자 함이었으니 아버지께서는 이방민족에서 유대로 들어와 거룩에 애쓴 그 하속들에게 은혜를 내리시어 그들을 의롭고 거룩케 하셨다. 또한 그들이 썩어질 육에서 벗어났을 때에는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그 약속을 그들에게도 지키셨으니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부활하신 후 그 영혼들도 거룩한 몸을 입고 그 거룩한 성으로 들어갔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도 또한 아들께서도 그들을 보실 때에 이제는 더 이상 이방인이나 유대인의 하속들로 보시지 아니하시고 오로지 유대인의 자녀들 가운데 딸로 여기신다.
그러나 이렇게 동서로부터 많은 유대인 아닌 유대인들이 와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그 약속을 이루는 동안 오히려 바깥의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가는 유대인들이 있다. 그러므로 이것은 유대인들을 향한 말씀처럼 보이되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을 유대인만이 아니요 자신의 십자가 이후에 있을 그 일곱 교회시대에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모든 영혼들에게 선포하신 것이니 그리스도께서 주신 이 경고의 말씀을 깨닫고 돌이키는 이방인에게는 영생의 유익이 있다.
그러므로 각 교회시대마다 또한 어린양의 다시 오심이 임박한 이 마지막 때에도 나는 그리스도를 안다 믿는다 따른다 말하되 거룩에 마음이 없는 이방인들이 있으니 그것은 자신의 마음을 육과 또한 자신이 나왔던 이 세상에 빼앗겼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리석은 자들은 십자가의 첫사랑을 회복하고자 자신의 심령을 찢기보다는 그저 때가 되면 아버지의 앞에 나와 마음 없이 행위만을 보인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마음 없는 더러운 곳에는 임하시지 못하시니 그들이 비록 거룩한 곳에 나와 늘 예배를 드리며 여러 가지 행위들을 열심히 드린다 할지라도 아버지께서는 그들을 받으시거나 그들의 몸을 성전으로 삼으시지 아니하신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음을 보시는 그리스도의 심판에 따라 그 어두운 곳으로 들어가 영원히 슬피 울며 이를 가는 것은 나는 세상에 있을 때 오직 예수이름으로 모든 것을 했는데 내가 왜 여기에 있는가 라는 불평과 불만이다.
이와 같이 유대의 주변에서 온 이방인들은 그가 어느 시대에 거하든 나는 예수를 믿는다 따른다 또한 예수님을 좋아한다 라는 말을 하되 그들의 마음은 오로지 그 육을 어떻게 채울까에 가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바로 그런 육적인 이방인들을 향한 그리스도의 엄중하신 심판의 선포였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믿는 자들이 말씀을 듣고 보았을 때 생명과 소망이 없는 이 헛된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켜 이미 약속된 그 푯대의 생명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당시만이 아니요 교회시대와 이 마지막 때에도 늘 입으로만 믿는다 따른다 하는 자들에게 그들의 귀로 또한 눈으로 이 어두운 곳에 대한 말씀을 분명히 듣고 똑똑히 보게 하시는 것이다.
반면 십자가의 피로 영이 거듭난 후 이 땅에서는 비록 주변에 거하되 그들이 이 세상을 등지고 광야와 섬들에 거하는 이유는 자기의 생각이나 의나 사람의 가르침이나 이 세상의 풍조에서 돌이켰기 때문이요 십자가아래에 모이는 그날을 소망하기 때문이다. 이에 아버지께서는 바벨론의 주변에 거하며 마음과 믿음을 오로지 거룩에 두고 마음과 몸과 정성과 뜻을 다해 거룩에 애쓴 그들도 부활시켜 어린양의 신령한 신부나 이방인가운데 거룩한 아들과 딸로 삼으신다. 그리하여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얻은 그들이 영적유대인과 함께 천년왕국과 또한 그 끝에 맏아들을 따라 올라갈 영원한 셋째하늘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가까이에 거하므로 기쁨과 영광이 충만해지며 아버지의 모든 것을 누리며 그 의롭고 거룩한 나라를 영원토록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또 너희에게 이르노니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