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밭 길을 흰 시멘트로 포장한 길을 경계로 좌측에는 편리하고 화려한 도시가 있었고 우측으로는 여유롭고 평화로운 농촌이 있었다. 그리고 도시에는 살진 암소와 힘센 소들이 많았으나 농촌에는 오직 한 마리의 수소가 땀 흘리며 밭을 갈고 있었다. 그런데 어린양 3마리가 포장된 길에 서서 도시와 시골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몇 가지를 깨달았다. 그러므로 도시에는 검은 십자가를 비롯해 수많은 네온사인이 불야성을 이루었고 그곳에 거하는 양들은 오로지 자신만을 사랑했으니 아침에 일어나 밤에 잠들 때까지 오직 돈과 음란과 명예만 생각했다. 그리고 그것들을 얻고자 어떤 양은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살았고 어떤 양은 몸을 뜯어고치거나 팔았고 어떤 양은 자기자리를 유지하며 높이기 위한 연구만했다. 심지어 검은 십자가 밑에 있는 양들은 자기의 새끼들을 살진 암소에게 부탁했고 암소는 힘센 소에게 팔아 넘겼으되 그런 자신을 의롭게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4개의 뿔이 달린 힘센 소가 전쟁을 일으키고는 이것은 모든 양들이 살기 위한 전쟁이라면서 42달 동안 짓밟았고 마지막에 천조국을 다스리던 염소는 다른 도시들이 버섯을 못 쏘게 하늘에서 감시하다 6개의 버섯을 던졌으니 그로 인해 수많은 양들이 죽은 후에야 전쟁이 끝났다. 그러자 2개의 뿔이 달린 새끼 양이 나타나 용처럼 유창한 말로 평화와 안전을 외치며 모든 도시들을 하나로 만들어 왕처럼 다스리되 자신의 악한 마음과 계획은 숨겼다. 그러나 새끼 양은 자신의 마음을 숨기는데 한계가 있었으니 잠시 후 자신의 비밀을 드러내는 수양과 암양을 순서대로 잡아 모조리 도살했다. 그러다 결국 하늘의 심판으로 땅이 갈라졌으니 자신만 사랑하던 양들은 살진 암소들과 염소들과 그 새끼 양을 따라 도시와 함께 땅속으로 내려갔다. 반면 농촌에서는 어떤 농부가 이런저런 말을 하며 수소를 인도했으니 수소는 농부의 말에 맞춰 즐거운 노래를 부르며 밭을 갈았다. 그러므로 농부와 수소가 함께 땀 흘린 결과로써 곧은 왕의 대로가 나자 농부는 수소에게 가죽옷을 입히고 오른쪽 밭으로 가서 자기의 마음에 합한 수양에게 멍에를 씌웠으나 밭을 갈아본 적이 없었기에 삐뚤게 가기도 하고 갑자기 서거나 뒷걸음도 쳤다. 이에 농부는 밭을 갈아본 수소의 어깨에다 두 마리를 함께 묶는 멍에를 씌운 후 그것을 수양의 어깨에 걸쳐서 둘이 함께 밭을 갈게 만들었다. 그러므로 수양은 농부의 이런저런 말에 맞추어 수소와 함께 즐거운 노래를 부르며 차근차근 밭을 갈았다. 또한 12마리의 독수리가 날아다니며 왕의 대로로 인도했으니 수양은 결국 자신의 밭을 갈아 엎었다. 이에 농부는 수양에게도 가죽옷을 입히고 마음껏 먹고 마시며 쉬게 한 후 이번에는 수소를 데리고 왼쪽의 밭으로 가서 합당한 암양을 찾기 시작했다. 바로 이러한 모습을 시멘트로 포장된 길에 서있던 어린양 3마리가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았다. 그러므로 첫째 암양은 자기의 목숨도 내어줄 수 있는 친구와 그럴만한 가치 있는 일이 농촌에 있음을 깨닫고 자기를 부인하고 싶었다. 이에 7마리의 비둘기가 날아와 그 암양을 왼쪽 밭에서 기다리던 수소에게 이끌자 농부는 자기에게 돌아온 암양의 등에 멍에를 씌웠으니 첫째 암양도 쉽게 밭을 갈아 엎은 후에 가죽옷을 받아 입고 마음껏 먹고 마시며 쉬었다. 그러나 둘째 암양은 단단한 자신의 밭을 가는 것에 전혀 무관심했으니 수소가 짊어진 멍에를 거부하고 자기가 원하는 밭을 골라 열심히 갈았다. 그러므로 둘째 암양은 힘들게 밭을 갈기는 했으나 자기 밭은 씨를 뿌릴 수 없을 정도로 망쳤다. 한편 셋째 암양은 자신만을 사랑하던 양이었으니 좌측으로 들어가 스스로 도시의 부속품처럼 살며 그곳에서 자신이 원하던 것들을 얻었으나 결국에는 편리하고 화려한 그 도시와 함께 땅속으로 내려갔다.

 

이처럼 거룩하신 영께서는 거듭난 영혼을 오직 그리스도께로 이끌기 원하시되 둘째사람은 자신의 마음과 인격이 있으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앞으로 이끌림을 얻는 자가 그리스도의 멍에를 얻게 된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것은 거룩이니 그리스도의 멍에라는 것은 오직 거룩의 길이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오직 한 분 신이신 아버지의 아들이시되 동시에 우리와 같이 연약한 육신을 입고 계셨다. 그러므로 인자는 이 땅에 계실 때 늘 거룩하신 영께로 이끌리셨으며 또한 아버지께서 보내주신 그 일곱 영들의 섬김과 보호를 받으며 십자가의 길에서 아버지의 뜻과 계획을 이루셨다. 그런 후 마지막에 십자가에서 승리하고 결국 그 거룩한 몸을 얻으셨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십자가고난을 통해 거룩에 이른 후 영광스런 부활의 생명에 이르는 것은 유대인과 이방인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누구나 어두운 세상에 거하며 선악에 따라 말과 행위를 하므로 원수를 아비로 섬긴다. 그러나 중생할 때는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인으로 영접하니 그때는 인침 받은 모든 영혼들이 세상이 아닌 오직 주님만을 따르며 섬기겠노라 굳게 약속한다. 하지만 정작 그리스도께서 부르실 때 자신의 첫 마음을 지키는 자도 있고 이 세상이 좋아 약속을 지키지 못하는 자도 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어떠한 영혼들을 인도하시며 일곱 종들은 어떠한 자들을 섬기고 보호하리요? 그리하여 살고자하는 마음으로 인하여 인자와 함께 멍에를 걸친 자에게는 그 거룩의 길이 참되고 복되며 쉬운 길이 되데 스스로 의로움을 얻으려 하는 자는 마음도 몸도 매우 고난이요 또한 그 길에서 도움을 얻지 못하니 그것이 매우 힘든 길이 되는 것이다. 또한 그 짐은 오로지 죄악이니 그리스도의 앞에 나와 그 짐을 내려놓는 자는 그 영혼의 짐을 벗게 되므로 그가 이제는 비로소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자신의 십자가를 받아 지고 가되 그가 스스로 지는 것이 아니요 이미 인자께서 지고 가셨으니 그 십자가는 오히려 그에게 가볍고 또한 영광스러우며 결국 아버지께로 의로움과 거룩함도 얻게 된다.

 

하지만 거듭난 영혼들 가운데 더 좋은 부활과 큰 구원에 이르고자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인자를 따르기 원하는 자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다. 사람은 인격체요 또한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걸어갈 수 있는 발이 있으니 세상과 일곱교회를 갈라놓은 그 경계를 스스로 벗어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가난한 마음애통하는 마음을 가진 자 외에는 그 경계를 넘지 못하며 그 마음이 없으면 넘으려 하지도 아니하고 일곱 영도 돕지 아니한다. 그러므로 입술로는 그 푯대를 소망한다 하되 자신의 마음이 썩어질 것과 헛된 것을 더 소중히 여기는 자들에게는 그 쉬운 것이 불가능하다.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