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1. 선악과(善惡果: The Tree of the Knowledge of Good and Evil)는 무엇인가?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기 4천년 전 즉 안식 후 첫날인 8일째에 하늘에서 온 신령한 둘째사람을 지으셨고 6천년 전에는 땅에서 난 첫째사람을 창조하셨다. 그런데 모든 생명의 근원이신 아버지께서는 오직 한 분 신이시니 이미 모든 것을 다 아시고 창조와 구원과 심판과 멸망을 계획하셨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은 두 사람과 각종 짐승들이 편하게 살 수 있는 크기였으며 또한 네피림의 조상인 첫째사람들과 구별된 땅을 준비하셨다. 그러므로 태초의 낙원은 사람들이 현재 보고 있는 원수가 더럽힌 이 땅과 또한 처음에 첫째사람을 위해 창조된 그 땅보다 더 아름다웠다. 예를 들어 낙원과 같은 그곳에 기쁘고 즐겁게 마실 수 있는 깨끗한 네 강물이 흐르게 하셨으며 동산의 곳곳에는 각종 선한 열매를 맺는 나무들을 심어 놓으셨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깨끗하고 선한 에덴을 미리 준비하신 후 첫째아담을 지으셨으며 아들의 형상과 모양인 둘째사람에게 자신의 생기를 코를 통해 불어넣어주시어 생령이 되게 하셨다. 또한 에덴동산의 중앙에 생명의 열매를 맺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심어놓으시고 죄 없이 거룩하게 지음 받은 아담과 하와가 말씀에 순종하므로 낙원을 영원히 누릴 수 있는 그 생명을 유지하기 원하셨다.

 

하지만 사람은 자신이 원한다면 말씀에 순종하므로 의롭고 거룩한 생명을 유지할 수 있으나 반대로 마음이 자신의 욕심과 교만을 구하면 불순종하여 불의와 죄를 이루며 사망으로 향할 수도 있다. 아버지께서는 사람을 로봇이 아닌 인격적인 존재로 지으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에덴동산의 중앙에 실제로 심겨있던 두 나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에 품고 결정하고 이제는 혼(생각)에 따라 자기의 몸을 움직이게 할 수 있는 인격적인 판단이 사람의 마음중심에 심겨져 있음을 상징한다.

 

이처럼 사람의 마음에 두 나무가 심겨져 있다는 것은 자신의 마음이 원하면 선할 수도 있고 악해질 수도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선악이라는 것은 말씀의 기준이 아니요 사람인 나 자신의 기준과 입장에서 정하는 선과 악이다. 하지만 사람은 선과 악의 기준이 의롭지도 공평하지도 못하다. 간혹 옳다 하여도 선을 행치 아니하고 오히려 악을 행하는 게 사람이다. 사람은 또한 오직 보고 느끼고 향을 맡고 맛을 보고 만지고 생각을 하며 육적인 것을 선하게 본다. 예를 들어 가난한 사람을 보고 불쌍한 생각이 들어 자신에게 있는 것을 나누어 다른 사람을 돕거나 자녀들에게 육적인 좋은 것을 준다. 그러나 육의 도움을 주고받은 사람들이 그것을 통해 영원히 살지는 못한다. 심지어 자신의 유익을 계산해 그 육적인 선을 베풀기도 한다. 결국 사람의 선함이라는 것은 오직 썩어질 육신을 위한 선이요 자신을 위한 것이니 열매 없는 그것에는 선한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다. 오히려 육신이 하루를 더 살며 죄를 이루고 그 죄의 형벌을 영원히 받는 것보다 육신이 하루를 덜 살더라도 말씀에 따라 살며 아버지께서 준비하신 그 생명을 영원히 얻는 것이 절대로 더 선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사람에게 원하시는 것은 자기기준의 선악에서 돌이켜 말씀에 순종하며 의와 거룩을 행하는 것이니 그래야 의롭고 거룩한 그 생명이 그에게 주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은 그가 영이 거듭나는 은혜를 얻었다 할지라도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신과 다른 영혼을 불쌍히 여기지 않는다면 영원한 생명을 소홀히 하며 썩어질 선을 따르게 되어있다. 또한 의롭거나 공평하지 못한 자신의 기준과 입장에서 선과 악을 정하면서 자신은 정작 그 기준대로 행하지 못하게 되어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며 사람이 선하면 얼마나 선할 수 있으며 또한 사람이 악해지면 한없이 악해질 수 있고 또한 사람은 자신이 말한 것도 지키지 못하면서 오히려 다른 자들을 정죄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다.

 

2. 악은 왜 생기며 그 악의 뿌리는 누가 심었나?

 

사람은 악이 언제 왜 생기는지 깨달아야 십자가의 빛을 통해 그 흑암의 뿌리를 자신으로부터 뽑아낼 수 있다. 그러므로 악은 자기를 위해 다른 사람을 해치기 위해 생긴다. 예를 들어 놀부는 아무 잘못 없는 자기 동생을 내쫓았다. 자기 혼자 부모의 재산을 다 가지려는 욕심을 품고 다른 사람을 해친 것이다. 심지어 죄 없는 짐승의 다리를 일부러 부러뜨렸으니 그것도 역시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였다. 한편 어떤 군인이 왕이 되고 싶었으나 백성들은 왕은 정치인이 되고 군인은 나라를 지키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그는 백성들이 적과 싸우라고 사준 총과 칼로 오히려 백성들을 쏘아 죽이고 찔러 죽였다. 자기가 왕이 되고 싶은 교만과 높아짐을 이루고자 많은 사람들을 해친 것이다.

 

두 번째로 악은 또한 나의 부끄러움보다는 상대방의 부끄러움을 더욱 드러내며 생긴다. 사람들은 큰 죄를 범한 사람을 연일 대중매체에 드러내 그의 부끄러운 허물을 보고 손가락질 하며 덩달아 입방아를 찧는다. 그런데 사람이 이렇게 행하는 것은 자신과 다른 영혼들의 죄를 책망하고 돌이키려는 의도가 아니요 서로가 의와 거룩을 이루고자 함도 아니다. 오직 남의 부끄러움을 열심히 드러내므로 자신의 안에 있는 그 동일한 죄를 숨길 수 있으며 또한 그렇게 하므로 자신이 의롭다는 것을 드러내 사람들을 자신에게 이끌고자 함이다. 하지만 바로 그때 자신의 마음 안에서 오히려 더 강한 악이 생기게 되어 있으니 결국 그 죄악이 오히려 그를 언젠가 대중매체에 오랫동안 나오게 만든다.

 

그렇다면 아버지께서 에덴동산 중앙에 두 나무를 두셨다면 즉 사람이 자신의 마음과 결정에 따라 선이나 악으로 향할 수 있다면 ‘아버지께서는 악을 계획하신 것이 아닌가?’ ‘원수를 에덴동산에 허용하시어 악이 발생했으니 불의하신 분이 아닌가?’ ‘사람이 처음부터 오직 선만 행하도록 지으실 수는 없으셨나?’하는 의문들을 품을 수 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절대 거룩하신 분이시니 둘째사람을 창조하실 때 자신과 같이 오직 선한 것만을 넣어주셨으며 또한 생기를 주시므로 영원히 거룩하게 창조하셨다. 즉 사람의 마음 안에 두 나무가 심겨져 있어도 아버지께서는 생명나무만을 심으신 것이요 죄의 뿌리는 심지 않으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을 인격체로 지으셨으니 로봇처럼 무조건 아버지의 말씀만 듣고 자신이 하기 싫어도 선만 행하도록 지으시지는 않으셨다. 그러므로 사람은 욕심과 교만을 마음에 품고 결정하면 얼마든지 무엇이든 행하며 악한 뜻을 계속적으로 이루어 갈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세상에 불의와 죄악이 가득한 이유다.

 

그렇다면 사람의 마음 안에 죄의 뿌리를 심은 자는 도대체 누구인가? 즉 말씀의 기준에 의한 선악이 아니요 사람의 기준과 입장에서 선악을 정하도록 요구하는 그 가라지를 덧뿌린 자는 누구였나? 그가 바로 셋째하늘에서 욕심과 교만한 마음을 품고 자기를 위해 처음부터 거짓말하며 죄를 창조했으나 회개치 않고 오히려 아버지를 죽이고자 반란을 일으켰다 이 첫째하늘로 쫓겨난 원수(Lucifer)였다. 그런데 원수는 아버지의 언약을 받은 둘째사람을 보고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그러므로 결과적으로 아담도 원수처럼 자신의 마음에 욕심과 또한 아버지보다 더 높아지려는 교만을 품었기에 원수의 말을 들었다. 즉 사람이 만일 욕심과 교만을 이루려면 아버지의 거룩하신 말씀의 기준을 버리고 자기가 정한 선악기준을 따라야 하니 이것이 바로 타락하고 쫓겨난 원수처럼 첫째아담도 똑같이 타락하고 에덴에서 쫓겨난 이유였다.

 

한편 사람이 타락했을 때 원수는 합법적으로 그 선악과의 뿌리를 사람의 마음에 심었으니 그때부터 악이 사람의 그 어두운 굴을 통해 자유롭게 들락날락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사망권세를 가진 원수는 ‘거짓말해야 나에게 이익이 된다.’는 생각을 주지만 아버지께서는 ‘거짓은 죄이니 솔직히 말하는 것이 옳다.’는 마음을 주신다. 이때 만일 욕심과 교만을 품는 자는 반드시 원수의 말을 듣고 따르게 되어 있으니 그는 점점 더 불의와 죄악을 쌓아가게 된다. 그러나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의와 거룩을 사모하는 자는 아버지께로 나와 늘 말씀에 순종하므로 점점 더 의와 거룩을 이루며 그 생명을 향해 나갈 수 있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악을 계획하시거나 심지 않으셨으며 또한 사람의 인격을 무시하고 그의 마음을 강제로 조종하시거나 이끄시지도 아니하신다. 오히려 의롭고 거룩하게 창조하신 후 이제는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마음에 품고 그것을 자유롭게 이루어가도록 인격체로 지으신 것이다. 그러므로 말씀에 순종하는 선한 자는 자신보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하며 선을 이루어가게 되지만 오직 자기의 욕심과 영광을 구하는 악한 자는 늘 원수의 말을 듣고 원수를 따르며 오직 불의와 죄악을 자기머리 위에 쌓아간다.

 

이러하니 사람은 세상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되 아버지께서는 그의 영혼이 육체에서 나왔을 때 그가 원하던 것을 주신다. 즉 아버지의 인격적인 계획에 의해 사람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자신이 원하며 행하던 것을 영원히 얻게 된다. 그러므로 생명을 위해 의와 거룩을 행하는 자는 고난과 핍박을 기쁨과 평화와 함께 얻되 나중에 거룩한 육체를 얻고 불의와 죄를 행하는 자는 썩어질 육과 헛된 세상의 영광을 염려와 두려움과 함께 얻되 나중에 더러운 육체로 부활한다. 그리하여 사람이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있도록 아버지께서 두 나무를 계획하신 것은 의로우시고 선하신 것이니 말씀에 순종한 자들을 거룩한 자녀로 삼으시는 것도 불의와 죄를 행한 자들에게 심판을 허락하시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원수와 마음을 합한 자들은 오히려 선하시고 거룩하신 아버지를 욕하며 날마다 저주하고 있으니 그것은 아버지의 존재나 혹은 죄에는 심판과 형벌이 있음을 모르거나 믿지 못해서가 아니다. 오직 자신의 마음이 욕심과 교만을 원하기 때문이요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세운 선악의 기준을 의롭다고 여기기 때문이요 오직 자기의 유익만을 생각하며 따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기의 욕심과 교만을 위해 말씀을 거부한 자는 영원히 원수와 함께 거하게 되리니 그것은 자신이 원수가 창조한 선악을 마음과 몸으로 사랑하며 따랐기 때문이요 십자가를 거부하며 끝까지 돌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3. 택할 수 있는 아버지의 선하심

 

그렇다면 선은 과연 어디로부터 오는가? 결국 모든 선한 것은 사람에게 나오는 것이 아니요 오직 아버지께로만 나온다. 하지만 의와 거룩은 저절로 얻는 것이 아니니 사람이 자기생각에서 돌이키고 세상에서 나와 아버지의 말씀을 따를 때 그리스도처럼 선해질 수 있다. 예를 들어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전에는 오직 아버지의 말씀만을 들었을 때는 아버지처럼 선했으며 의롭고 거룩한 것만을 따랐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마음에 있는 욕심과 또한 자신의 눈과 기준에 선하게 보이는 것을 따르고자 순종치 아니하고 그 선악과를 취하므로 아버지의 선을 따르지 않았다. 그리고 선악과를 먹은 후 더욱더 아버지의 선한 것이 아닌 점점 더 자신의 선한 것과 자신의 악한 것을 택하며 나아갔다. 그러면서 그들은 그런 자신을 의롭게 여기며 말과 행위를 했으나 그것은 사실 자신에게 있는 그 악한 것만을 따른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삶은 말씀에 순종을 통해 아버지의 의와 거룩을 이루신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고 있는 이 땅에 거하는 모든 자들의 어쩔 수 없는 공통된 모습이다. 그러므로 그가 영이 거듭났을지라도 만일 그리스도를 따르지 아니하고 자기의 의와 생각을 붙들거나 이 세상을 따르는 자는 이방인과 같은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사람이 현재 가진 육체의 생각과 마음을 가지고 죄를 택하지 않고 생명을 택할 수 있는 능력은 없는가? 또는 아버지께서 만일 더 순종할 수 있는 육체와 마음을 사람에게 주셨다면 더 쉽게 구원 얻을 수 있고 반대라면 구원 얻는 수가 더 줄어드나? 답은 이것이니 아버지께서 육을 지으실 때 또한 그 안에 선한 마음을 넣으실 때에 오직 그 마음에서 죄와 싸울 수 있는 만큼의 마음과 능력을 모든 자들에게 공평히 주셨다. 그러므로 죄와 싸울 자는 살고자하는 마음이 있는 것이요 그 마음을 오직 아버지께서 살리신다. 그러나 마음이 오직 자기의 욕심과 교만을 구하려 죄와 합할 때에는 아버지께서도 그 영혼을 구원코자 하시지 아니하신다. 그리하여 사람에게 위와 같은 질문은 어리석은 것이되 만일 능력을 줄인다 하여도 살고자하는 인격체는 살겠고 더한다 하여도 죄와 합하는 인격체는 죄와 합하리라. 이렇게 아버지께서는 그 마음에 이미 죄와 싸울 수 있을 정도의 담대함을 주셨으니 아버지께서 구원코자 하시는 자들에게도 또한 사망으로 들어갈 자들에게도 모든 것을 공평하게 계획하셨음을 깨닫고 모든 자들이 결국 생명과 사망의 심판을 주시는 아버지와 아들을 보고 여호와인줄 알게 될 날이 오게 된다.

 

4. 사람은 언제 타락하는가?

 

선악을 택해 범죄하고 타락한 자는 생명의 아버지와 잠시 멀어지되 만일 그 타락에서 돌이키지 아니하므로 생명이신 아버지와 영원히 멀어진 자는 영원한 사망에 이른다. 그런데 잠시라는 것은 회복의 기회가 있다는 뜻이지만 동시에 영원한 사망이 있음을 볼 때 사람은 자신 스스로의 마음이 그 회복을 원하지 않을 경우 영혼은 영원하니 그 잠시가 영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숨을 쉬는 동안 허물과 죄를 속히 회개하고 아버지께 돌이키는 것이 옳되 돌이키지 아니하는 자는 결국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간다. 여기서 깨달을 것이 있으니 아버지께서는 돌이키지 않은 자들을 말씀대로 심판하시어 그 영원한 유황불 못의 사망으로 들어가게 하신다. 하지만 사람의 마음에는 두 나무가 있으니 사람의 입장에서는 자기의 욕심과 교만을 위해 스스로 불순종하며 자신이 아버지를 멀리 떠나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이요 아버지의 입장에서는 타락하고도 끝까지 돌이키지 않은 그들의 마음이 원하는 것을 허락하신 것이다.

 

또한 사람도 종도 마찬가지이니 자신의 자리와 주어진 것에 만족과 감사를 하지 않고 더 높은 자리와 더 좋은 것을 원할 때 타락하게 된다. 즉 말씀에 기록된 대로 욕심을 가진 자는 말씀에 불순종하는 죄를 낳고 욕심을 품고 스스로 타락한 그 죄는 아버지와 영원히 멀어지는 사망의 결과를 낳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원수는 아버지의 가장 높은 120종들 가운데 한 종으로 있는 것보다 아들의 자리를 원했으며 심지어 자신에게 생명의 은혜를 주신 아버지의 자리까지 차지하길 원했다. 마찬가지로 아담도 아버지의 아들로 있는 것보다 자기가 아버지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기를 원해 불순종하고 타락한 것이다. 즉 어린아이가 머리가 좀 커지자 자기를 낳고 길러준 부모를 자기의 머리에서 끌어내려 자기의 발 밑에 두고 부리려는 그 어리석음과 교만함과 무질서와 배은망덕이 타락으로 이끈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 자리에 맞는 의와 거룩이 없는 자가 그곳에 앉는다면 다른 모든 피조물들에게 어떠한 악한 영향을 끼칠지 원수를 보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또한 세상에서 왕의 자리에 앉은 자들을 가만히 보아도 쉽게 알 수 있다. 한편 의와 거룩에 이르기 위해 땀과 눈물과 고통과 피를 흘리지 않은 자에게 영광이 주어지거나 혹은 덜 고난 받은 자에게 더 높은 영광이 주어진다면 불공평하고 불의한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것을 원치 않으시며 또한 인격체인 사람과 종도 그런 것들을 인정치 못한다. 그러므로 선악의 기준을 정하시되 오직 선만 행하시는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완벽하게 계획하시고 이루어가신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누구든지 원수와 하와처럼 자신의 마음에 욕심과 교만을 품고 그것을 얻고자 자신과 다른 영혼을 타락하게 하는 것을 사망으로 이끄는 죄로 여기신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자신 스스로 자신의 마음에 품은 것과 동시에 그 품은 것을 생각과 행위와 입술로 낸 것들을 의롭고 정직하고 공평하게 심판하시어 그 선과 악의 결정에 대한 심판과 상급을 영원히 베풀어 주신다.

 

누구든지 선악과가 무엇인지 깨닫고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원수가 심은 죄와 싸울 수 있게 된다. 그러다 결국 자신의 안에서 어둠이 스스로 떠나므로 그리스도의 생명에 이르면 그는 아버지께로 났으니 더 이상 죄를 짓지 아니하고 오히려 의롭고 거룩한 열매를 맺어가다 마지막에 아버지께로 그 영광을 돌려드릴 수 있다. 그리하여 죄와 세상을 이긴 그가 죽음과 형벌의 심판을 당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거룩한 몸을 입고 부활하여 거룩한 자녀가 되므로 아버지의 영광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저희는 지각을 사용하므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변하는 자들이니라”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