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을 통해 포도주를 자신의 피로 상징하셨으며 그 상징은 생명을 의미한다. 그리고 유대인은 그 약속된 생명을 얻으려면 여호와의 법도와 계명과 율법에 순종하므로 거룩을 이루어야 하기에 포도주가 무엇을 상징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영원한 부활의 생명을 이루어주시는 여호와를 믿고 자신의 마음을 드린 영혼들은 아담 이후로 노아시대든 율법시대든 그 상징의 의미를 알고 순한 짐승의 살을 먹고 포도주를 마시며 거룩에 애썼다. 물론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썩어질 육과 헛된 세상에 빼앗긴 자들도 성전에 들어와 동일한 것을 먹고 마시며 동일한 행위를 보였지만 자신이 하는 행위가 무슨 뜻인지를 몰랐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성전에 모일 때 늘 포도주가 필요하니 대대로 다음과 같이 포도주를 빚었다.

 

그들은 좋은 포도주를 만들기 위해서 우선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좋은 포도나무를 심는다. 또한 포도원을 해치는 짐승이나 열매를 가져가는 자들을 막고자 망대를 세운다. 동시에 포도주를 담는 그릇을 만들되 새거나 다른 것이 들어가지 않도록 나무로 빈틈없이 만든다. 그러므로 포도주를 담는 그릇을 만드는 일은 포도나무를 가꾸는 일만큼 힘든 일이다. 이제 때가 되면 포도를 따서 틀에 넣고 짠다. 그리고 미리 만들어놓았던 그 나무통에 담고 뚜껑을 닫아 햇빛이 들어가지 않는 서늘한 곳에 보관한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한번 포도주를 담았던 그릇에는 또다시 포도주를 담지 아니한다. 그 이유는 그 통이 이제는 더 이상 포도주를 붙들 수 없기에 이곳 저곳에서 포도주가 흘러나와 다 버려지기 때문이다. 또한 새로운 포도주를 한번 포도주를 담았던 그릇에 보관하면 썩은 향기가 나니 그런 포도주를 누가 마실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그들은 그릇을 만드는 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반드시 새 포도주는 새 그릇에 담아서 숙성을 시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유대인들이 포도주를 담그는 과정을 통해 요한의 제자들도 또한 자신의 제자들도 또한 교회시대에 아버지께서 택하신 7교회들도 깨닫기 원하셨던 것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것은 바로 신랑인 자신과 거룩하고 신령한 신부의 관계이되 포도주의 비유에서는 특히 교회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어떠한 모습으로 있어야 하는가에 대한 것을 깨달아야 한다.

 

우선 새로운 포도주라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새롭게 거듭난 생명의 영혼들을 의미한다. 그 이유는 그들의 영혼이 거듭남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내주신 그 영원한 생명의 피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포도주를 담는 새로운 그릇이라는 것은 영이 거듭나는 은혜를 받은 자들 가운데 그리스도를 통해 혼의 거룩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과 마음을 지키고 있는 자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자신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하여 처음에 받은 그 사랑과 은혜를 잊지 아니하는 자들은 자기의 마음과 믿음을 세상에 빼앗기지 아니한다. 오히려 자신이 처음에 품었던 그 믿음과 마음을 오직 거룩에 두고 자신의 신랑만을 따르고 있으니 그들이 바로 새 그릇이다.

 

반면 낡은 그릇이라는 것은 피가 있는 영혼들 중에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에 이른다는 그 믿음과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자들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여기에는 거룩에 마음과 믿음이 없기에 이 세상과 사람으로 인해 시험에 든 영혼들과 또한 거룩에 이르지 못한 자들이 포함된다. 하지만 그들도 마음과 믿음을 거룩에 둔 자들과 동일한 행위를 보인다. 그러나 거룩의 모양은 동일해도 그들의 믿음은 썩어질 육과 헛된 이 세상에 대한 것이니 그들의 마음은 다른 남편에게 빠져있다.

 

또한 사람은 아무리 힘이 들어도 새로운 나무 그릇을 만들어 그 안에 새 포도주를 넣어 보관한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피를 얻은 한 영혼이 아들을 통해 얻은 그 생명의 약속을 이루기 원한다면 그는 새로운 그릇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 마땅하다. 또한 자신의 마음이 낡은 그릇 안에 있다면 마음을 돌이켜 새로운 그릇으로 옮기는 것이 옳다. 그래야 자신도 믿음과 마음을 거룩에 두고 애쓰는 자들과 함께하며 그리스도의 안에서 거룩하고 신령하게 숙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낡은 그릇에 새로운 포도주를 담는 자는 우선 그 포도주에서 썩은 향을 낸다. 그러다 결국 그 썩은 틈으로 흘러나가 땅에 떨어진다. 그러므로 거듭난 영혼이 그리스도를 통해 거룩에 이를 수 있다는 믿음과 마음을 지키지 못하고 있는 자들과 함께하면 자신도 그들처럼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한 거룩함과 신령함을 이루어가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으로 들어가게 된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과 환난이 임박한 이 마지막 때에 많은 자들이 이 길이 진리의 길이요 생명의 길이라며 또한 그들에게 생명을 준다며 많은 일들을 하되 그들은 그 죄로 인하여 오히려 불의하고 죄악된 향기를 안과 밖으로 내뿜는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믿는다 하며 죄와 함께하는 영혼은 받지 못하심을 마음이 없는 행위에 빠져 거룩의 모양만을 보이는 자들과 은혜의 방종에 빠진 자들도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거룩을 원치 않는 자들은 여러 가지 행위들을 하다가도 마지막 때에는 오히려 세상으로 도망치게 되어있다.

 

이처럼 피를 얻은 한 영혼이 이 땅에서 십자가를 통한 거룩의 능력을 믿는 공동체나 혹은 그렇지 못한 공동체와 함께하되 그 결과는 생명을 얻어 그리스도의 품에 안기느냐 혹은 이 세상과 함께 사망으로 들어가느냐이다. 하지만 사람은 그러한 새 그릇을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찾나 걱정하지 않아도 됨은 그 생명과 사망의 기준이 자신의 마음과 믿음이 어디에 있는가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거룩을 포기한 자는 낡은 그릇 안에서 율법의 영에 인도를 받을 것이요 자기의 생각을 따르는 자는 단단한 그릇에 남아 자기의 의를 세우는 목자를 따라 어두운 곳으로 들어갈 것이요 육과 세상의 복을 원하는 거짓된 자는 거짓선지자가 유황불 못으로 인도해줄 것이다. 마찬가지 원리로 거룩을 원하는 자는 어두운 세상에 거할지라도 바다 끝에 거할지라도 거룩하신 영께서 새 그릇 안으로 인도하실 것이니 독수리날개에 업혀 광야로 나온 자들은 십자가아래에서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일을 하다 들림을 받고 대환난에서 산 제사를 드리고 그 기쁘신 뜻에 이르게 된다.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