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수는 첫날에 그리스도께 대한 첫 번째 시험에서 실패했으나 이 첫째하늘을 거룩케 하시려는 아버지의 뜻에 끝까지 대항하는 자다. 그러므로 아들에게 주어진 그 메시아의 자격을 무효로 만들고자 둘째 날 계속해 두 번째 시험을 하기 원했다. 그리하여 자신이 생각해낸 방법으로 시험하고자 예루살렘성의 성소의 입구에 있는 문 가운데 가장 높은 곳에 그리스도를 올려놓고자 했다.
그러나 원수는 불의와 죄악이 가득하며 가장 깊은 어둠에 거하는 자이기에 거룩한 자들은 만지지도 못한다. 아버지께서는 빛의 종들을 통해 십자가의 길에 있는 자들을 날개아래 감추시어 눈동자와 같이 지키시기 때문이니 당연히 그리스도의 몸에도 손을 대지 못한다. 그러므로 에덴에서 자신의 꼬이는 말로 첫 사람을 타락시켰던 것처럼 마지막 아담도 자신의 지혜로운 말로 타락시킬 수 있다고 자신하는 원수를 위해 아버지께서는 손바닥 두 개 정도의 두꺼운 낙엽들을 준비하시어 뿌려놓으셨다. 그리하여 원수는 바람을 이용해 자연물의 위에 서신 그리스도를 성전의 그 꼭대기까지 올릴 수 있었다. 그러나 다른 시험을 받으시기 위해 장소를 옮길 때는 아버지와 아들의 거룩한 종들이 그리스도를 붙들고 이동했으니 빛과 빛은 함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 원수는 그 높은 곳에 서계신 그리스도께 ‘네가 만일 아버지의 아들이고 메시아라면 그 높은 데서 뛰어내리므로 너를 확인시켜라. 그러면 아버지의 종들이 너를 붙들지 아니하겠느뇨? 그러면 나도 네가 아버지의 아들인 메시아라는 것을 믿겠도다.’라는 말로 꼬이며 시험했다. 즉 원수는 자신이 똑똑하고 제법 많이 알고 있다는 교만한 생각으로 가득한 자들의 어미이니 그리스도는 내 지혜로운 말에 앞뒤가 막혀 결국 뛰어내리므로 간단히 증명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아버지의 아들인 그리스도도 사람과 같은 몸을 입고 있으니 육의 배고픔 때문에 견디지 못하고 결국 돌들을 떡으로 만들어 먹겠지!’라는 어리석은 생각을 했던 것과 같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이번에도 악한 의도를 가진 원수의 말에 이런저런 대꾸를 하거나 간단히 증명해 보이기보다 오직 다음과 같은 아버지의 말씀으로 원수의 시험을 이기셨다. “아버지와 아들을 시험치 말라. 이는 그가 범죄하는 것이니 누구든지 아버지를 시험코자 하는 자는 오히려 자신이 그 시험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리라 하셨노라.”
그리스도께서 원수에게 아버지와 아들을 시험치 말라고 하셨으니 그것은 광야에서 여호와를 시험하던 유대인과 십자가후의 거룩한 공동체에서 주님을 시험하는 이방인 둘 다를 포함한다. 그러므로 교회시대에 이방인의 믿는 자로서 아버지와 아들을 시험하지 아니하기 원하는 자는 자신이 아버지의 능력인 십자가로 결국에는 거룩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뿐만 아니라 그의 행함도 거룩해야 함을 믿고 경건의 능력을 즉 거룩한 행함과 입술을 주님께 보여야 함이다. 왜냐하면 거룩케 하시는 그 일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미 완전히 이루셨기 때문이요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신실하게 믿는 자에게는 거룩의 믿음과 동시에 거룩의 행함 둘 다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많은 자들이 아버지께서는 믿음과 행함을 둘 다 원하신다는 그리스도의 그 말씀을 알면서도 아버지와 아들을 시험하려고 한다. 그러므로 어떤 자들은 십자가의 살과 피로 거룩에 이른다는 믿음이 없이 오히려 자신의 마음을 육과 세상에 두고 종교행위에 빠지되 그리스도께서는 마음 없는 의문에 속한 그런 행위들을 십자가에서 폐하시고 드러내셨다. 반면 어떤 자들은 자신에게는 거룩의 믿음이 있다고 시인하지만 그에게 정작 거룩의 행함들은 나타나지 아니하되 오히려 원수가 주는 선악의 생각들에 이끌려 자신의 입을 벌리고 육신을 움직인다.
그런데 누구든지 만일 이렇게 오직 한 분 신이신 전지전능하신 아버지를 시험하면 아버지도 아들도 그 시험하는 자에게는 의롭고 거룩하게 되는 역사를 안 하시니 믿음이나 행함이 빠진 그는 거룩에 이르지 못한다. 오히려 주님을 시험하는 자는 결국 원수의 시험과 웅덩이에 빠져 거기서 스스로 헤어나오지 못한다. 그러므로 많은 자들이 입술로는 믿되 마음은 끝까지 세상에 빠져있거나 육신의 생각에 이끌리는 말과 행위를 끊지 못하는 이유는 이미 하나님을 시험했거나 혹은 시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아버지와 아들을 시험한 자는 거룩에 이르지 못하니 그가 비록 영혼은 구원을 얻을지라도 마지막에 육체는 죄로 인하여 세상과 함께 사망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거듭난 후 살고자하는 마음을 놓지 않는 영혼들이 있으니 그들은 첫사랑을 잊거나 주님을 시험하는 데 빠지지 않는다. 오히려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주신 그 속죄의 피를 의지하여 아버지의 거룩에 이를 수 있음을 믿고 잠잠히 기다리되 그리스도께서 부르실 때 자신의 의와 생각과 또한 썩어질 육과 헛된 세상에서 돌이켜 오직 의를 따르며 거룩의 믿음을 가지고 한 몸 안에서 거룩에 애쓴다. 이에 아버지께서는 마음과 믿음을 거룩에 두고 애쓰는 그의 마음에서 그 죄의 뿌리를 제해주시고 거룩한 자라 칭하시니 성도는 큰 구원의 은혜에 점점 더 다가간다.
그런데 큰 구원이 큰 은혜인 이유는 믿음과 행함을 둘 다 보이므로 거룩에 이른 그가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입고 부활하여 천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왕과 제사장으로서 다스리기 때문이요 또한 그 천년왕국의 끝에 그리스도를 따라 올라갈 셋째하늘에서 아버지의 모든 영광과 권세를 그가 믿음과 행함으로 이룬 거룩에 맞게 상속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거룩한 자녀들의 본향은 영원무궁하기에 그들은 그 은혜 안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영원한 기쁨과 즐거움으로 함께 거하게 된다.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