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고한 사람

 

사람들은 인생을 여정(旅程)이라고 합니다. 혹자는 인생을 거친 파도와 맞서는 항해로 비유하며 노래로 만들기도 합니다. 두 단어 모두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공히 겪어야 할 희로애락을 나름 표현한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의 의로 그러한 시적인 포장을 한다 해서 인생의 분명한 목적이 가려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인생은 차라리 아버지의 뜻을 온전히 이루기 위한 과정이라는 표현이 더 솔직한 것 같습니다. 썩어질 육체를 입은 사람의 생명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아버지의 신성한 생명과 합해질 때 우리는 그 영원하고 거룩한 육체 안에서 기쁨이 영원토록 충만할 것입니다. 

 

육신 안에 있는 동안 과연 아버지의 뜻인 거룩을 이룰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조차 전혀 가져보지 못하고 그저 희미하게이게 아닌데혹은무언가 부족한데하면서 진리에 갈급해 했던 시절은 참으로 열정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의 은혜로 전통에서 나와 말씀의 기초를 통해 서서히 창조와 구원과 심판에 대한 진리를 알아갈 때의 열정은 바로 그 자리에서 순교할 수 있을 것만 같았던 것 같습니다. 

 

10년을 근무한 직장을 그만두고 나올 때엔 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은 그리스도를 따라 간다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 두 달 사이에 혼이 다 녹아 내리는 것 같은 고통과 심령이 상하는 듯한 괴로움은 예상치 못한 곤고함이었습니다. 물론 그 곤고한 시간은 이제 일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희한 한 것은 그 두 달 동안 제 자신을 제대로 알게 된 것입니다. 남편으로써 아빠로써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거룩한 공동체의 한 지체로써의 나 입니다. 내 안에 진리가 있다 하며 원수의 선악의 뿌리가 남아 있는 자가 얼마나 많은 가시로 누군가를 찔러 왔는지 그 누군가가 아내요 자식이요 직장 동료요 또한 모르는 사람들이니 참으로 부끄러웠습니다. 

 

자신의 의와 혈기가 무엇인지 깨닫고 자기를 부인하는 과정은 참으로 힘이 듭니다. 나의 의와 혈기, 나의 결단 그리고 나의 재산까지 다 내려놓으려면 제 자신과의 싸움은 끝없이 길어 보입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감당치 못할 시험은 허락하지 않으심을 알기에 그러한 고난의 길이 오히려 감사한 것은 우리에게 주신 그 영광의 복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육의 욕심을 내려놓고 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으며 오직 그리스도만을 따라 가고 싶은 자가 지금은 아무 것도 이룬 것은 없지만 결국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의 은혜로 저도 아버지의 뜻을 꼭 이룰 줄 믿고 있습니다. 아멘!

 

(말씀을 전하는 자의 답글)

말씀의 기초에 이러한 말씀이 있습니다. “말씀의 기초가 모두 마쳐진 후 만일 님의 마음가운데서 그리스도를 따라 끝까지 고난스런 거룩의 길을 걸어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그 영광에 이르고자 하는 원함이 있으시다면 그때에는 또 다른 아버지의 계획과 인도하심이 준비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하셨더라

 

또 천막이 있어서 낮에는 더위를 피하는 그늘을 지으며 또 풍우를 피하여 숨는 곳이 되리라

 

그러므로 한민족에서 은혜를 받아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과 갈급한 마음을 가진 자들과 깨어있는 자들과 준비된 자들과 세상에서 소망이 없는 자들이 이집트에서 나와 그 광야의 피난처함께 모여 그리스도안에서 서로 낮아져 섬기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그 길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것이니 그들은 결국에 자신이 간절히 원하던 그것을 취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