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께서는 심판대에서 어떤 자에게는 긍휼이 있는 심판을 어떤 자에게는 긍휼 없이 그냥 그대로 심판을 내리신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불공평하시기 때문이 아니요 그가 이 땅에 있을 때 다른 사람에게 긍휼을 베푼 것에 따라 긍휼한 상급을 주시는 것이니 그것은 오히려 의롭고 공평하고 정직한 것이다. 

 

     예를 들어 기도로써 긍휼한 상급을 얻는 것은 오직 그 영혼을 불쌍히 여기는 기도여야 하니 다른 사람의 깨끗함과 거룩함과 구원함을 위해 구한다. 그러나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기도는 외식으로 보시니 외식하는 기도를 아무리 많이 오래해도 그는 긍휼한 심판을 얻지 못한다. 

 

     첫째 내가 당신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이렇게 말을 하는 자는 그가 이미 이 땅의 사람에게로부터 긍휼을 얻은 자이다. 그러므로 그 자는 시장에 나가 두 손을 들고 기도하는 자와 같다. 

 

     둘째 다른 사람의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는 기도가 아닌 육적인 소원을 구하는 것이니 그것은 아버지도 아들도 듣지 아니하시니 그가 구하는 것을 누가 듣겠는가? 그러므로 썩어질 것과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을 위해 구하는 기도는 그리스도께로 긍휼을 얻지 못하되 육과 세상의 권세를 가진 원수로부터 그의 소원이 이루어진다. 

 

     셋째 때로는 사람들이 많은 자들 앞에서 큰 소리로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는 모습을 보인다. 나라를 위해 부흥을 위해 혹은 누가 위독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죄가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그렇게 기도할 때에는 이미 그가 이 땅에서 자신의 의로움을 나타낸 것이니 아버지와 아들께서도 그 기도를 듣지 아니하신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긍휼의 심판을 얻는 그 기도를 누가 언제 어떻게 할 수 있는가? 한가지 비유를 통해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이 자기의 옆에 있는 사람이 먹을 게 없어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도 가만히 있었으니 자신도 먹을 게 없어 죽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그는 누군가에게 많은 양식을 얻었으니 자신이 그것을 먹고 생명을 얻은 후에는 가만히 있지 아니하고 곧 자기의 옆에서 배가 고파 죽어가는 그 사람을 불쌍히 여겨 자신이 얻은 것을 그와 나누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둘 다 생명을 얻게 되었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택하신 한 영혼에게 긍휼을 베푸시니 그리스도께서도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그에게 은혜를 입히신다. 그러면 긍휼과 은혜를 입은 그는 그 은혜를 전할 자로서 자기가 먼저 다른 영혼들에게 은혜를 전하며 긍휼을 베풀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하면 그리스도께서도 심판대에서 그에게 긍휼을 베푸실 것이다. 

 

     이로 보건대 다른 영혼에게 기도로 긍휼을 베풀며 진리를 전하고 있는 자는 이미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로 은혜와 긍휼을 받은 자요 그것을 베풀고 있지 못하는 자는 받지 못했기에 베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마찬가지로 썩어질 것과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을 은혜로 베푸는 자는 그가 그것을 가진 자에게 손을 펴서 받았기 때문이다.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