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안에 어떤 지역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어떤 지역에는 사람들의 수가 적다. 예를 들어 변두리나 시골지역에는 5만 명이 넘고 경기도에는 100만 명이 넘는 시도 있으나 둘 다 동일하게 시라고 칭한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당시에도 어떤 지역에는 많이 어떤 지역은 적게 살았으니 예루살렘은 지금으로 말하면 사람의 수가 가장 많은 특별시와 같았고 나사렛은 작은 시와 같았다. 그런데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자신의 욕심과 영광을 구하며 늘 원수의 말을 듣고 말하며 행하는 악한 자들이 있으니 반드시 질서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백부장이라는 위치는 사람의 수가 100명인 마을을 대표하며 책임지는 자이되 그 마을에 꼭 100명만 거하는 것이 아니요 마을의 명부에 기록된 인구수와 일치하지 않았으며 또한 어떤 백부장에게는 50명을 어떤 백부장에게는 30명을 더해주기도 하였기에 당시 백부장이 다스리는 마을의 사람 수는 대체로 100명보다 훨씬 더 많았다.
또한 그리스도 당시에는 지금의 군대조직과 달랐으니 만일 악한 이방인들이 쳐들어오면 성인의 나이인 12세 이상의 남자는 누구나 나가서 함께 싸웠으나 여자는 항상 집안에 거하며 집안일을 도왔다. 그러므로 백부장과 천부장은 행정적인 책임과 더불어 군사적인 권세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른 자들에게 위협과 죽임을 당할 수도 있으니 자신의 안전을 위해 자기의 주변에 늘 칼을 든 종들을 두고 다녔으며 밤에는 칼을 든 그 군사들이 밤새워 그들을 지켰다. 구체적으로 백부장과 천부장은 늘 여섯 부류의 종들을 데리고 있었으니 우선 칼을 잘 이용하는 종들과 집안의 일을 하는 종들과 집밖의 일을 하는 종들과 가정의 모든 재산을 관리하는 종들과 자녀들을 가르치고 보호하는 종들과 다른 모든 종들을 관찰하는 종들을 데리고 있었다.
결국 백부장과 천부장은 그 힘으로 어떠한 두려움과 타협 없이 의롭고 공평하게 마을을 다스리며 또한 모든 백성을 아끼며 정직하게 대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야곱으로부터 12지파를 이룬 후 이집트에 있을 때에도 또한 광야에 있을 때에도 백부장과 천부장이 자기의 목숨을 바쳐 백성들을 위해 일했다. 그러나 그때도 지금처럼 그 자리에 앉아 백성들을 위해 선하게 다스리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욕심과 자리만을 구하는 자들이 있었으니 그런 자들은 백성들을 위하여 자기의 목숨을 내어놓고 섬기고자 함이 아니요 오로지 자신에게 있는 부유한 것을 다른 자들에게 보여주며 또한 자신이 앉은 그 자리가 합당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마음을 가지고 많은 종들을 데리고 다녔다. 그리하여 그런 마음을 품고 그 자리에 앉아있는 자는 앞에서는 입술로 백성들을 위한다고 말하며 돌아다니되 뒤에서는 늘 백성들을 속이며 그 자리를 통해 자기의 유익을 얻고자 자기의 자리를 굳게 지켰으니 지금의 높은 자들과 똑같았다. 또한 사람들은 지금은 종이 없도다 라고 하며 너와 나가 동등하다라고 말하되 세상을 가만히 보아라! 아직도 그 물질이 있는 자들은 물질이 없는 자들을 늘 물질로 사서 종을 만들어 온갖 더럽고 위험한 일을 시키며 모든 물질을 쌓아놓되 자기가 부리는 자와 그 가족을 책임지기는커녕 종의 가치가 없어지면 잘라버린다.
당시 가버나움은 두 지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을 때 나온 백부장은 가버나움의 두 백부장들 가운데 한 영혼이었다. 그 영혼은 성품이 선하였으며 또한 다른 영혼들을 늘 불쌍히 여기는 자였다. 그러므로 자기의 종이라 하여도 자기의 종같이 여기지 아니하고 늘 한 가족으로 여겼으니 낮은 종들에게도 늘 공평하게 나눌 것을 나누어주었다. 또한 항상 자신만을 위하지 아니하고 자신의 온 가족들과 또한 온 종들을 위하여 애쓰는 자였다.
하지만 그 선한 백부장의 종들 가운데 한 종이 그 병에 걸려 그 몸을 온전하게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 병은 자신의 마음을 이미 원수에게로 빼앗겼기에 원수는 그의 두 번째 단계인 육체의 기능을 자신이 잡아 사망으로 데려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 번 육체에 어떠한 충격이 올 때에 흑암의 세력이 그 한 부분과 또한 다른 한 군데를 동시에 잡기에 그 병에 걸린 자들은 그 잡힌 한 부분을 이용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원수는 자기가 원할 때마다 그 부분을 이용하여 그가 끝까지 아버지께로 나가지 아니하고 오히려 부인하게 하므로 영원한 사망으로 이끌고자 함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아들의 그 피를 의지하여 아버지께로 나와 자신의 죄와 범한 허물들을 회개하면 아버지께서는 그의 육체 안에 군데군데에 죽은 피가 머물러 다른 피를 그 육체로 퍼지지 못하게 막고 있는 그 썩은 피들을 종을 통해 거두어주신다. 그러므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죄들을 회개하고 돌이킨 자는 그 피가 이제는 원래처럼 온 몸을 돌게 되니 그 병에서 온전케 된다.
그런데 자식들이 만일 악한 부모를 따르며 보고 자라면 자식들도 부모처럼 악해져 서로간에 결국 원수로 변하듯 악한 지도자의 밑에는 반드시 악한 종들이 밑으로 들어가 서로 헐뜯고 끌어내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반대는 반대이니 그 선한 백부장의 종들 가운데서 한 영혼이 예수그리스도의 소식을 들었다. 그러므로 그 종은 그 병에 걸려 자기의 옆에 누워있는 종이 그 병에서 일어나길 원했기에 자기의 주인에게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리고 주인은 늘 선한 마음이 있기에 그 소식을 들었을 때 유대인으로서 자신이 기다리던 메시아의 앞에 나아와 속죄의 권위가 있는 그리스도의 앞에 그의 마음을 다 내어 놓았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 백부장의 선한 마음을 이미 알고 계셨으니 그의 마음중심을 보시고 그에게 거룩이 담긴 복된 말씀을 허락하시므로 그가 생명을 얻었으며 또한 그의 종도 육만이 아니라 영의 구원도 얻었다. 즉 병으로 인해 누워있던 종도 자기의 주인에게 거룩을 전해 들었을 때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를 믿고 자신의 허물들을 돌이켰기에 영이 거듭나는 그 은혜와 육의 깨끗함도 얻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그 백부장을 향하여 말씀하신 이만한 믿음이라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으니 첫째로는 그 영혼이 자기의 핏줄도 아닌 낮은 종을 살리고자 하는 그 선한 마음을 뜻하는 것이요 둘째로는 그가 이 세상의 다른 그 누구에게로 찾아가지 아니하고 가장 먼저 창조자에게 나와 자신과 또한 자신의 종의 영혼을 맡긴 것에 대한 마음과 믿음을 뜻하는 것이니 당신의 마음 안에는 과연 그만한 믿음이 있는가?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