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사람이 많은 사람들의 앞에 우뚝 서는 것을 원했다. 또한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싶었으며 사람들이 자기가 한 말대로 움직이는 것을 보면서 만족했다. 그러므로 그는 많은 사람들의 앞에 서서 이렇게 말했다. “여러분 아무리 돈이 많아도 하루에 세끼이상 먹지 못합니다. 큰 차도 굴러가고 작은 차도 굴러가 자신이 가야 할 곳에 데려다 줍니다. 넓은 집이든 좁은 집이든 부부와 자녀들이 등을 대고 잘 수 있으면 족한 것 아닙니까? 높은 곳에 평생 앉아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고 사람은 썩어질 육의 욕심을 품고 세상의 헛된 것을 얻고자 할 때 불의와 죄악을 범하게 됩니다. 게다가 육신은 점점 후패하고 이 세상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심판을 받아 멸망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나 손으로 짓지 아니한 거룩한 장막은 아픔과 슬픔과 후회는 없고 영광의 자유가 있으며 아버지께서 기다리시는 셋째하늘은 고통과 이별과 죽음이 없고 영원히 기쁘고 즐거운 곳입니다. 그런데 밝고 빛난 그 좋은 곳에는 거룩한 자라면 누구나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육과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켜 한 마음을 품고 아버지께서 영원한 본향에 쌓아두신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소망을 두세요. 그리고 십자가에서 이미 아버지의 뜻이 다 이루어졌음을 믿고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마음과 정성과 뜻과 목숨을 다해 말씀에 순종하며 거룩을 이루어가세요.”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작 이렇게 가르친 그의 마음 안에 썩어질 육의 욕심과 자기가 높아지려는 교만과 헛된 세상의 영광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는 여러 가지 할 일도 많고 사람의 썩어질 육을 도와야 한다면서 적지 않은 돈을 받고 양들의 중간 정도가 적당하다고 말하며 좋은 차를 타고 책이 많고 사람들이 많이 오니 큰 집에서 산다고 했다. 게다가 그는 앞에 서서 가르친 것 중 단 하나에라도 자기의 마음을 다해 순종하는 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때에 아버지의 말씀을 가르치고 있는 자가 살고자하는 마음을 포기하고 가르쳐야 할 것을 입술로만 가르치고 행위로는 가르치지 않고 있음은 자신의 마음에 육과 세상의 욕심이 있기 때문이요 정작 자신은 행치 아니하면서도 돌이키지 못하고 계속 가르치는 것은 자신이 바리새인이라는 증거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그런 목자를 따르는 것은 그가 바리새인임을 몰라서가 아니요 이미 알고 있으나 그가 가지고 있는 육의 부요와 세상의 영광을 자신도 얻기 위함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전에 있던 바리새인과 장로와 율법사와 랍비와 제사장과 대제사장이 바로 그와 마음을 품고 그와 같은 행위를 하며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갔음을 알고 계셨다. 또한 당시에 큰 건물을 붙들고 있던 성전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자신의 십자가 후에 있을 일곱 교회시대의 목자들도 그 길을 뒤따라 걸을 것을 이미 아셨다. 하지만 그들이 영원한 사망이나 영원히 슬피 울며 이를 갊이나 영원한 부끄러움에 이르는 것을 원치 않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이 그와 같은 길을 걷지 아니하도록 또한 교회시대의 목자들도 그 어리석은 길을 따라가지 않도록 가르치는 자에 대한 예언을 주셨으니 그 말씀의 의미는 이와 같다.
“누구든지 가르치기를 원한다면 말씀의 한 가지를 믿고 마음을 다해 순종하여라. 이렇게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아버지께서도 그를 가까이하시되 그렇지 아니하는 자는 아버지께서도 그를 멀리 두시니 그는 영원히 아버지의 얼굴을 뵙지 못하며 그의 음성도 듣지 못하리니 그것이 그에게는 이 땅에 사는 동안 늘 부끄러움이 되며 나중에 아버지의 나라에서는 영원한 부끄러움이 되겠노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