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위하여*

 

     아버지께서는 아담을 위하여 지으신 그 여자가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될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다. 그리고 그 약속의 의미를 담아 아담으로부터 지으신 그의 배필에게 하와라는 이름을 붙여주셨다. 그러므로 짐승과는 달리 아담과 하와이후의 모든 사람들은 아버지의 그 약속에 따라 육신과 더불어 영원히 사는 생기인 영을 다음과 같이 그의 부모로부터 얻어 이 세상에 태어난다.

 

     우선 남자의 씨가 여자의 밭에 들어가 남자와 여자에게로부터 나온 그 염색체에 따라 또한 세포가 늘어나며 사람의 모양과 같은 육신이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것이 어느 정도 완성되어 사람의 모습을 갖추게 되는 시기에 여자의 영의 한 부분이 그 아기에게 들어간다. 그러다 나중에 아기가 태어날 때 엄마에게로 온 영의 한 부분이 그 아기에게 임하여 영을 가진 영원한 생명으로서 이 세상에게 나오고 나머지 영은 엄마에게로 다시 돌아간다. 그리하여 여자는 자기의 품에 있는 동안 그 아이를 남편의 뜻에 따라 가르치고 나중에는 남자가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가르친다

 

     결국 이 세상에 태어난 한 사람을 보았을 때 그의 영은 어미의 영이요 아비는 오직 영원한 생명을 주신 아버지의 그 뜻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비가 자식에게 거룩을 가르치고 또한 영도 있을 때 그들의 후손은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어갈 수 있다. 하지만 만일 그에게 짐승과 같이 영이 없다면 거룩을 알아도 헛된 것이다. 그 이유는 거룩을 알아도 영이 없기에 영원한 생명을 얻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로 나오는 그 후손은 아버지의 그 뜻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의 아비가 자신의 후손에게 거룩을 가르치지 못하고 있으니 그것은 그 아비부터 거룩을 모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비가 거룩을 몰라도 영이 있는 자는 그 뜻을 발견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그의 어미가 뜻을 알고 있으니 거룩을 가르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가 비록 뜻을 몰라도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질 때 아버지께서는 그의 영에 거룩을 깨우쳐주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영적인 원리에 따라 아버지의 뜻을 알고 있는 유대인은 그의 아비가 유대인이고 그의 어미도 유대인이면 그 사이에서 태어나는 아이는 당연히 유대인이 된다. 또한 그의 아비가 이방인이라도 그의 어미가 유대인이면 그들이 낳은 자식들은 유대인으로서 아버지의 뜻을 깨닫고 거룩을 이루어갈 수 있다. 아버지의 뜻을 아는 그의 어미가 거룩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남자가 유대인이라도 어미가 이방인이면 그 자식은 유대인이 아니다. 그 이유는 이방인인 그의 어미는 아기 때부터 그에게 아버지의 뜻 대신 오로지 육과 세상의 복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교회시대에 유대인의 남자와 이방인의 여자가 결혼해 난 자식들이 있으니 그들은 사람의 눈으로 유대인처럼 보인다. 그러나 아버지의 눈으로는 이방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버지를 섬기는 법도 모르고 또한 아버지가 누군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교회에 들어와 아버지를 섬기는 법도를 가르친다며 높은 자리에 올라간다. 그러나 그들은 거룩을 모르기에 아버지의 그 뜻을 다 이루신 그리스도가 아닌 오히려 육과 세상의 복을 주는 자기의 신들을 섬기게 한다. 

 

     그런데 이러한 자칭유대인은 교회시대의 이방인들 가운데도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진리나 복음이나 믿음이나 구원이나 부활이나 십자가의 공로나 보혈이나 생명이나 소망과 같은 말들을 사용한다. 그러나 그러한 말들이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을 이기고 거룩해져 얻게 되는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위한 것임을 모른다. 아버지의 그 뜻을 모르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육이 부요해지며 세상에서 잘되는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며 믿는 자들을 훼방한다. 교회시대의 자칭 믿는 자들이 다 함께 모였을 때 거룩을 이루지 못하도록 어떻게 훼방하고 있는지 한 가지 비유를 통해 알 수 있다. 

 

예배를 인도하는 자가 묵상을 하자고 말하니 조용한 음악이 흘러나오며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하나같이 땅을 향해 고개를 숙였다. 잠시 후 자기가 뽑은 찬송가 몇 장을 함께 부르자고 하니 모두가 일어서서 그 찬송을 불렀다. 그 다음에는 누군가 나와서 대표로 기도를 하고 여러 가지 소식들을 전했다. 이제 성경 몇 구절을 읽은 후 설교시간이 되었으니 검은 옷을 입고 나온 자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십자가로 구원의 은혜를 받았으니 헌금도 열심히 하고 전도도 많이 하고 주일성수도 열심히 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 땅에서도 또한 하늘에서도 복이 있을 것이니 그것이 은혜를 갚는 길입니다.” 그러자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합당하게 여기며 큰소리로 아멘 했다. 한편 광명한 옷을 입고 나온 자는 앞에 설 때마다 이렇게 말했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이 잘되고 육신이 강건하게 되며 범사에 잘 되게 하시려고 십자가에서 보혈을 흘려 죽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가 성령에 이끌려 이 땅에서 육적으로나 세상적으로나 복 받고 잘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복음과 성령의 충만을 통해 이 땅에서 복 받을 것이라는 긍정적인 생각과 꿈과 믿음과 입술의 고백을 가지고 복 받기 위하여 항상 기도하며 행하십시오. 그러면 주님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것을 듣자 그곳에 모인 사람들은 큰 감동이 되어 두 손을 들고 큰소리로 아멘 했다. 설교 후 간단히 기도를 하고 봉헌하자고하니 사람들은 기뻐하며 바구니에다 흰 봉투를 넣었다. 그리고 찬송을 하나 더 부르고 축복기도로 마쳤다. 또한 성도의 교제시간이라고 하며 예배를 마친 후 다 함께 모여 이런저런 육적이고 세상적인 이야기를 하며 점심밥을 같이 먹었다. 

 

     이와 같이 이방인의 자칭 믿는 자들도 모여서 아버지와 그리스도를 섬기도록 가르치지 않는다. 오히려 전통은 첫사랑을 잃고 행위에 빠져 마음 없는 행위로 이끌며 이끌림을 받는다. 한편 거짓선지자들은 사람들을 육과 세상의 복으로 이끌어서 오히려 자기의 신들을 섬기게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하여 원수가 자신을 그 높은 곳에 올려준 것과 자신이 가진 육과 세상의 복을 보여주므로 그곳에 모인 자들도 이방신을 섬기도록 가르친다. 하지만 그것은 자기에게 은혜 준 자를 가르치며 섬기게 하는 것이니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후 그리스도를 참되게 믿는 자들은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으니 훼방하지도 훼방 받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오직 거룩에 두고 거룩의 믿음을 가지고 십자가아래로 모인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얻으신 그 거룩한 육체의 소망을 바라보고 자신과 다른 지체들의 거룩에 애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거룩을 다 이루시고 부활하셨음을 믿고 또한 자신도 그것을 소망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음과 믿음에서 나오는 그 거룩한 행위를 보며 그들이 영적인 이스라엘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