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위하여*

 

그리스도의 전에는 유대인을 위해 영광에까지 이르지 못한 신령한 율법이 있었으나 이후에는 그가 유대인이든지 이방인이든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나고 의롭게 되고 거룩하게 되고 영화롭게 되어 영광에까지 이른다. 그리고 심판대의 앞에 서서 그리스도께로 법으로 심판 받은 후 아버지의 뜻을 이룬 상급으로써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하므로 온전한 구원에 이른다. 그리고 영광을 얻은 영혼은 왕과 제사장으로서 천년왕국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공의와 사랑으로 다스린다. 또한 셋째하늘에 갔을 때는 아버지의 자녀가 되어 아버지께서 준비해두신 모든 것을 상속하므로 역시 왕과 제사장으로서 다스리며 또한 성소와 지성소에서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거하며 늘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하니 그것이 영원히 간다. 그러므로 이 영원한 영광과 권세를 통한 기쁨과 즐거움을 어찌 복된 소식이라 하지 않을 수 있으리요? 그리하여 그 복음의 약속은 오직 아버지의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니 그것을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한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아버지께서는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그들이 복음을 듣고 복음을 나누어준 아들을 따르며 순종하므로 거룩과 평화에 이르러 그 복음의 약속을 이루도록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또한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리기 원하셨다. 그러므로 바울은 거룩하신 영께서 주신 계시를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이 깨달을 수 있도록 기록해 로마에 거하는 유대인의 교회와 이방인의 교회에게 전했으니 그것이 바로 로마서요 또한 다른 모든 복음서들의 목적도 이와 같다.

 

로마서에 기록된 그 복음의 비밀을 깨닫고자 하면 우선 자주 나오는 몇 가지 말들의 영적인 의미를 알아야 한다. 첫째 율법과 의문의 차이로써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께서 택하신 유대인들이 아버지를 올바르게 섬기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도록 모세를 통해 법도와 계명과 율법을 내려주셨으니 그것은 신령한 것이었다. 그러나 대제사장과 제사장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기의 뜻과 의와 계획을 이루고자 또한 지키기 어렵거나 찔림이 되는 것들은 더하거나 빼거나 바꾸었으니 그것이 바로 의문이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는다거나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지 못하고 도리어 굳게 세운다고 할 때 그 율법은 모세가 받은 그 신령한 율법을 뜻한다. 그러나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영의 새로운 것으로 아버지를 섬기고 의문의 묵은 것으로 하지 말자는 것은 의문의 율법을 뜻한다. 그러나 율법과 의문에 대한 깨달음이 없는 자들 가운데 은혜만을 주장하며 율법은 폐해졌다고 하는 자가 있으니 오직 은혜만을 구하며 불순종이 가득한 그는 그저 짐승과 같은 자요 믿음과 함께 율법과 행위가 나타나야 한다고 주장하되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는 그는 교만한 자다.

 

둘째 할례와 거듭남의 관계는 이것이니 아버지께서는 유대민족의 경우 태어난 지 팔일 만에 할례를 받으면 그의 영이 거듭나게 해주셨다. 그러나 십자가 후로는 유대인도 이방인도 오직 그리스도의 피로만 거듭남을 허락하신다. 그러므로 그가 이미 할례를 받았던 유대인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신 후에는 그가 팔일 만에 받은 것은 더 이상 거듭남이 아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기 전에 육의 사망에 들어간 유대인의 경우에는 아버지께서 그의 할례를 거듭남으로 인정하셨다. 그러므로 반대의 예로써 바울은 유대인이었기에 이미 할례를 받았으나 다메섹으로 가는 그 길에서 회개하고 거듭남의 은혜를 얻었으니 그때는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신 후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전을 지키는 자들과 다른 유대인들은 그들이 비록 할례는 받았을지라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았으니 그것이 없는 것이요 그리하여 거듭나지 못한 그들은 전부다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갔다.

 

셋째 유대인의 법도와 계명과 율법의 내용으로써 아버지께서는 우선 그들에게 가장 처음에 계명을 포함한 법도를 주셨으니 아버지와 아들을 알 수 있는 것이 그 안에 들어있다. 그러므로 법도를 아는 자는 아버지와 아들을 알고 따른다. 그 후 따르는 그에게 계명을 주시니 그것은 오로지 아버지의 아들에게 맺은 언약이요 그 다음으로 한 사람과 다른 사람의 관계를 맺는 언약이다. 그러므로 그 사랑의 언약은 마음에 있다. 마지막으로 아버지께서 그에게 율법을 주셨으니 그것은 그 한 영혼과 그가 속한 한 민족이 거룩함에 이른 상징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법도가 없는 자에게는 계명과 율법이 무슨 소용이 있으리요? 이처럼 유대인은 율법과 계명이 먼저이되 그 가운데 은혜가 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을 죽기까지 이루기 원하는 유대인은 은혜를 얻은 후에도 계명과 율법을 버리지 않는다. 한편 그리스도 이후의 유대인은 이러하니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따르는 자에게 역시 법도를 주시되 그것이 바로 아버지와 아들을 알 수 있는 말씀의 기초요 그리고 나서 법도를 행하는 그에게 계명을 주시니 그것이 바로 새 계명이요 그 후 그것을 그가 자신의 마음을 다하여 지키면 아버지께서 그에게 십자가를 통해 아들의 새 생명을 주시고 율법도 주신다. 그러면 그는 율법을 통해 진실한 마음으로 주님께 순종하고 또한 다른 영혼들을 불쌍히 여기니 율법에서 그의 행위가 나타나는 것은 오직 아버지의 나라에 그 행위가 있다. 마찬가지로 이방인도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은혜를 먼저 받고 그 다음에 계명과 율법들이 주어지되 그것을 원치 아니하는 자는 그 안에 죄가 있고 그 죄로 인하여 십자가의 새 생명과 거듭남이 없음을 확인하는 것이다.

 

넷째 큰 비밀로써 그리스도께서 피를 흘리시기 전에 의를 행한 유대인들은 아버지께로 받은 법도와 계명과 율법을 순서대로 다 지키므로 그리스도께서 거룩한 육체를 입으셨을 때 그들도 아브라함 때부터 그토록 원하던 할례의 약속을 얻었다. 그러나 성결의 영으로 위에서 내려오신 이 외에 그것을 순서대로 다 지킬 수 있는 육체가 이 세상에 있으리요?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들이 그 제사를 드리기 위해 모였을 때 마음을 다하여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며 구하는 자의 그 마음을 보시고 그들에게 은혜를 베푸시어 그들을 거룩하게 해주셨다. 그리하여 거룩케 된 자가 육체가운데서도 항상 그 신령한 율법을 마지막에도 다 지킬 수 있었던 것이요 율법의 약속을 지킨 그가 그리스도를 따라 부활한 후에도 영원히 지키게 되는 것이다.

 

다섯째 바울이 자신을 동일하게 ‘나’라고 표현하는 것에는 그의 세 가지 위치가 있으니 그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가 첫째 단계요 그리스도를 만난 후 그 피를 의지해 거룩에 애쓰는 과정이 둘째 단계요 선악을 뽑아내므로 거룩을 이룬 후가 셋째 단계다. 그러므로 예를 들어 자신이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아나고 자신이 죽었다고 할 때는 그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 바리새인으로 있을 때를 말하는 것이요 자신을 보고 곤고한 사람이라고 하며 그 사망의 몸에서 누가 자신을 건져줄 수 있겠느냐며 애통하는 것은 그가 만난 후 거룩에 애쓰고 있을 때를 말하며 마지막으로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참말을 하고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이제는 거룩을 이룬 후를 말하는 것이다. 또한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된 것도 역시 자기처럼 거룩을 이룬 영혼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깨닫지 못하여 거듭난 후 거룩에 애쓰는 과정도 없이 또한 마음과 생각과 말과 행위로 늘 범죄하는 자신을 보면서도 ‘나는 믿는 자이니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도다.’라고 말하는 어리석은 자가 적지 않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오직 아버지의 뜻에 애쓰는 자의 눈을 열어주시니 이런 단어들의 의미를 알았다 할지라도 살고자하는 마음이 없으면 로마서도 다른 성경들과 마찬가지로 까만 것은 글이요 하얀 것은 종이로 보이게 된다. 그러므로 선한 양심을 갖지 않고 말씀을 전하는 자은 로마서를 보고 복음의 진수니 최고봉이니 혹은 이것이 복음주의해석이라 말하되 정작 복음이 무엇인지 모른다. 또한 율법과 행위로 거룩하게 되지 못하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구원을 얻는다 말하되 정작 그리스도가 아닌 사망으로 들어갈 자신의 생각과 이 세상을 따른다. 그리고 그렇게 율법이 무엇인지 행위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고 전하며 가르치니 그는 그 어리석음과 교만으로 다른 영혼들을 더욱더 율법이 아닌 율법으로 행위가 아닌 행위로 인도할 수밖에 없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선악을 따라 말과 행위를 하면서도 믿음과 은혜만을 부르짖거나 혹은 행함도 주장하며 점점 더 자신의 의와 행위를 들고 아버지의 앞으로 떳떳이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