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강도 아름답지만 한탄강에 비하면 밋밋하다. 하지만 자기 나름대로의 아름다움을 지닌 낙동강에서도 흘러가는 강과 모래사장과 자갈과 강의 주변경관과 날아다니는 새들을 보며 또한 강바람을 얼굴에 맞으며 그에 맞는 편안함과 여유를 누릴 수 있다.

 

사람들이 흐르는 강물을 볼 수 있게 된 과정은 이러하다. 태초에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뜻과 계획에 따라 아버지와 자신의 종들을 통하여 셋째 하늘에 아름다운 강들을 만드셨다. 그리고 나서 그 강들보다 조금 못한 강들을 거룩한 자들의 안식처가 있는 둘째 하늘에다 만드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셋째 별에서 태어날 모든 사람들과 동물들을 위하여 이 첫째 하늘에도 만들어주셨으니 사람들이 지금과 같은 강들을 보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아버지께서는 이 첫째 하늘에서 볼 수 있는 강들보다 더 아름다운 강들을 둘째 하늘에다 예비해두셨다. 그리고 그보다 더 아름다운 강들을 영원한 본향인 셋째 하늘에다 예비해두셨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 거룩한 육체를 입은 자녀들과 그리스도의 몸인 신령한 교회와 온전하게 된 의로운 한 백성들은 천년왕국의 끝에 셋째 하늘로 올라갔을 때 유유하고 아름답게 흐르는 그 강들을 보며 영원히 누리게 된다. 

아버지께서는 셋째 하늘에 있는 모든 강들의 아래에 깨끗하고 아름다운 물고기들과 사람의 몸에 유익한 해초들이 살게 하셨다. 하지만 셋째 하늘의 강들은 이 첫째 하늘에서 사람들이 보는 강과 같지 않고 그 규모가 바다와 같으니 더욱더 크고 아름답다. 그 강들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이렇게 깨달을 수 있다. 사람들은 이 강과 저 강을 서로 비교한 후 어떤 강은 아름답고 어떤 강은 그저 그렇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사람들이 이 첫째 하늘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여기는 그 강의 풍경이 셋째 하늘에서 가장 하찮은 강의 한 부분의 풍경이다. 

그런데 셋째 하늘의 아름다운 강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들은 오직 네 개가 있다. 그러므로 그 네 강물은 새 예루살렘 성이 있는 시온산으로부터 흘러나온다. 그 중에 첫째 강에는 포도주가 흘러가며 둘째 강으로는 우유가 흐른다. 아버지께서는 그 두 강의 바닥은 순금으로 만들어 놓으셨다. 한편 셋째 강에는 생수가 흐르니 그 바닥은 은으로 만들어 놓으셨고 넷째 강으로는 꿀물이 흘러가니 그 밑은 동으로 만들어 놓으셨다. 

이 첫째 하늘에서는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바닷물과 강물을 그대로 마시지 않는다. 그러나 셋째 하늘의 모든 곳을 흐르며 다 적시는 그 네 강물은 아버지와 아들의 지성소와 성소로부터 흘러나온다. 그러므로 어떤 물보다 더 깨끗하다. 그리하여 자녀들과 신령한 교회는 그 신령한 네 강물들을 떠서 마음껏 마시되 마실수록 기쁨과 즐거움이 충만해진다.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때에 둘째 하늘을 이끌고 내려오셨을 때 원수가 욕심과 죄로 더럽혀놓은 이 땅을 다시금 태초에 창조하신 그 아름답고 선한 에덴동산과 같이 회복하신다. 그러므로 그때 그 네 강물들도 회복하시되 그 아름다움을 보는 사람도 있고 보지 못하는 사람도 있다. 즉 육신의 기회가 있을 때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자신을 의롭고 거룩케 한 영혼들은 그것을 볼 것이요 그 마음을 버리고 아버지의 뜻을 이루지 못한 영혼들은 보지 못한다. 

이와 같이 인격체인 사람이 의롭고 거룩한 곳에서 영원히 살며 깨끗하고 아름다운 것을 늘 보고 느끼며 즐기는 것은 그의 마음이 거룩을 원하느냐 원치 않느냐에 좌우된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그 선악의 죄를 회개하고 세상에서 돌이켜 진리를 따르므로 그 생명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생명과 사망을 모든 사람의 앞에 두시고 각 사람이 생명을 택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원수는 사람들의 눈앞에 썩어질 종이와 세상의 헛된 것들을 보여준 후 그들이 그것을 얻고자 애쓰며 죄를 쌓으므로 자신과 함께 사망으로 들어가기 원한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