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생명을 얻기 위한 긴 여행

 

 

교만한 자들에겐 원수가 생각을 주고 겸손한 자들은 아버지께로 지혜를 얻는다. 그러므로 교만한 자는 무엇을 모르면 입을 다물고 아버지께로 답을 구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입을 벌려서 이것이 저것이요 저것은 이것이라고 전한다. 그러면 또 다른 교만한 자는 그게 아니라 저것이 이것이요 이것은 저것이라며 논쟁한다. 이때 마음이 갈급한 자는 우선 입을 닫고 누가 이것이 이것이고 저것은 저것이라고 말하는지 분별하고자 말씀을 펴서 보며 아버지께로 지혜를 구하되 어리석은 자들은 누구의 말이 맞나 틀리나를 깊이 상고하지 아니하고 교만한 자들의 말을 그냥 받아들인 후 덩달아 입을 벌려 이런저런 말을 전하는 것은 많은 자들이 저들을 따르고 있으니 그들이 뱉는 말이 맞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인함이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어둠을 뚫고 나와 밝은 태양을 보는 것은 오직 한 영혼인데 왜 그렇게 많은 씨(정자)들이 필요한지 몰라 여기저기 묻는다. 이때 모르는 자들은 입을 다물지만 교만한 자들은 많은 씨들이 약해서 혹은 중간에 죽는 씨들이 많아서 혹은 서로 경쟁하기 위해서 라는 말들을 전한다. 하지만 그들의 대답은 이미 질문한 자들도 충분히 추측할 수 있는 것이요 질문한 자들이 정확히 모르기에 물어본 것이니 그들의 대답은 그저 아는체하는 교만한 답변일 뿐이다.

 

그런데 말에는 생명이 있으니 한 영혼이 그 영으로 인하여 죽기도하고 살기도하고 죽을 자가 살기도하고 살 자가 죽기도 한다. 예를 들어 누군가 올바른 거듭남의 말을 전할 때 그 말을 듣고 그대로 행하면 즉 그 말을 믿고 진심으로 회개하고 영접하는 자는 구원을 얻고 게다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자는 결국 큰 구원도 얻게 되니 그 말로 인하여 사는 자가 생기고 또한 죽을 자도 그 말로 인하여 살게 된다. 반면 누군가 잘못된 거듭남의 말을 전할 때 그 말을 듣고 행하면 즉 육의 복과 세상의 형통을 위해 교회를 다니면 거듭남이 없는 그는 그 말로 인하여 죽은 후 죽고 또한 살 자라도 그 말로 인하여 죽게 된다. 그리하여 교만한 자들과 비 진리를 따르는 자들은 사망으로 들어가되 겸손한 자들과 진리를 따르는 자들은 생명으로 들어간다.

 

그렇다면 누가 맞는 말을 듣고 따르게 되며 누가 틀린 말을 듣고 따르게 되는가? 씨는 좋은 땅에 떨어져야 결실하는 것이니 진리를 보고 들을 수 있는 눈과 귀는 오직 각 사람의 마음에 달려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사람의 지식과 나이와 성별과 죽음까지 남은 시간과 상관없이 누구든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은 진리를 볼 때 보고 들을 때 들으며 기쁨을 얻게 하셨다. 그러나 그 마음이 없는 자들은 진리는 안 보이고 안 들리되 비진리가 보이고 들리니 그들의 눈과 귀는 누가 열어주는 것이요? 그리하여 소경과 소경의 인도를 따르는 자들은 허무한 사망으로 들어가되 옳은 길은 걸은 자들은 기쁜 생명으로 들어가 별과 같이 빛나리니 누구든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아버지와 사람의 마음을 깊이 상고하는 자는 많은 수의 씨를 보며 기쁨을 얻을 수 있다.

 

먼저 상고할 아버지와 사람의 마음은 이것이니 농부는 가을에 깨끗하고 풍성한 열매를 많이 얻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봄에 씨를 뿌린다. 고로 자신이 뿌린 씨앗들이 싹이 트는 것을 볼 때 하나하나를 소중하게 여기며 그것들이 모두다 건강하게 자라길 원하되 그 많은 씨들 가운데 싹이 트지 않는 것들도 있다. 그런데 만일 농부가 뿌린 그 많은 씨들 가운데서 오직 하나만이 싹이 터서 자라나 열매를 맺는다면 그 농부에게 그 하나는 너무나 소중하고 값진 것이다. 마찬가지로 만일 어떤 농부가 평생 6억의 씨를 늘 뿌리고 어떤 농부가 12억의 씨를 늘 뿌렸으나 그 중에 오직 하나나 두 개의 열매만을 얻는다면 그 한둘의 열매를 바라보는 그 주인과 그 농부의 마음이 과연 어떠할지 당신은 헤아릴 수 있겠는가?

 

둘째로 상고할 것은 사람의 마음이니 사람들은 어리석어 그저 육의 눈에 보이는 것을 중요시하며 두려워한다. 그래서 돈과 높은 자리를 좋아하며 날카로운 칼을 쥐고 있는 자를 두려워한다. 또한 육체가 강해야 마라톤 같은 운동경기에서 이기고 돈이 많고 환경이 좋아야 자살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마음이니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마음을 포기하지 않고 단단히 먹어야 모든 것을 이기되 그가 이긴 이유는 그의 마음을 보고 하늘 혹은 땅이 돕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많은 수를 계획하신 이유는 그 중에 튼튼하지 못한 것을 섞으셨기 때문이 아니요 그 길에서 많은 수를 죽이시거나 경쟁시키기 위하심도 아니시니 오직 그토록 작은 한 씨 한 씨가 살고자하는 마음을 포기했기에 그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사람들이 바로 주인과 농부의 그 마음을 깨닫고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 아버지의 그 간절한 마음을 헤아릴 수 있도록 동시에 자신과 가족과 다른 자들의 생명을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소중히 여기도록 더불어 자신이 그 많은 씨들 가운데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장 간절히 가졌기에 이 세상에 태어나 밝은 태양빛을 볼 수 있었던 것이요 또한 육신의 죽음 후에는 더욱더 밝고 밝은 곳을 보게 될 것이라는 깨달음을 얻을 수 있도록 많은 수의 씨 뿌림과 생명을 얻는 과정에 다음과 같이 온전한 구원의 여정을 담아 계획해두셨다.

 

우선 남자가 자신의 품에 있던 많은 씨들을 뿌리면 그들은 비로서 똑같이 긴 여행을 시작하니 그 모든 씨앗들이 여자의 그 딸의 권세 안으로 들어가되 살고자하는 마음을 속히 버리므로 여자의 그 신령한 물기에 거하지 못한 씨들은 50분 안에 그 씨앗의 생명을 잃고 다시금 흙(원소)과 물로 돌아간다. 그 후에 그 물기와 싸우며 그 물기를 따라 올라가다 포기하는 씨들도 생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때 살고자하는 마음을 버리는 씨들이 죽는 기간을 씨를 뿌린 후 오직 세 시간 내지 여섯 시간으로 정해놓으셨다.

 

한편 중간에 생명을 포기한 씨앗들 외에 나머지 씨들은 모두다 끝까지 올라간다. 하지만 그곳에 도착한 씨들 가운데서 이 말씀을 읽고 있는 한 씨만이 가장 먼저 밭을 만드는 그 도구(난자)와 만난 후 생명의 문(수정막)이 닫히니 그것이 바로 낙원의 안식을 바라보는 7일째이다. 그러므로 그때에 그곳까지 올라왔으나 밭으로 들어가는 그 도구와 만나지 못한 씨들은 너무 늦었으니 제 7일째에 사망으로 들어가되 씨들에게 7일의 기회는 이 세상에 태어난 자들에게 거듭남의 기회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이고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자들이 아버지의 뜻을 이루는 기간도 7일이다.

 

그리고 나서 7일째에 그 도구와 만난 씨는 함께 밭을 갈기(세포분열) 시작하며 8일째에 그 아궁 속의 정해진 밭(자궁벽)에 심겨(착상)지게 하셨으니 이 이유로 유대인에게 난지 팔 일만에 그것을 행하도록 명하셨다. 그리고 10일째에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림(유전자)을 새롭게 다 그리니 씨와 도구가 같이 만난 후 3일이면 이미 아비와 어미의 성품과 모양을 어느 정도로 닮을 지와 또한 다음 세대에 전할 그림도 완전히 정해진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팔 일째에 밭에 심겨지도록 계획하셨으니 그들은 이제 영혼과 육체가 있는 둘째사람 즉 안식 후 첫날 지음 받은 증거가 된다. 그리하여 누구든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영에 순종하며 셋째하늘을 소망하는 영혼은 자신에게 또한 육의 부모에게 또한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로 참으로 귀하고 귀하고 귀한 유일하고 영원한 생명이 된다. 그러나 만일 그 마음을 내팽개쳐 버리는 자는 모태에서 자라며 또한 세상에 나와서도 땅을 따라가며 세상에 빠져 자라나니 그는 차라리 그 긴 여행을 떠나지 아니하였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찌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치 아니하는 본에 빠지지 않게 하려 함이라”

 

“그 아들 이삭이 난 지 팔 일 만에 그가 하나님의 명대로 할례를 행하였더라”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