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대인은 난지 8일만에 주를 만났으며 여호와께서 사람에게 오직 의와 거룩을 요구하신다는 것도 알았으나 많은 유대인이 자신의 안에 거하는 선악에서 돌이키지 못했다. 또한 세상의 불의함과 죄악됨을 알아도 세상에서 나오지 못함은 자신의 마음이 썩어질 육과 헛된 영광에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기쁨이 되지 못한 다수의 유대인이 이집트에서도 광야로 나와서도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사망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이것은 처음에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다 나중에 십자가로 알게 되는 이방인도 마찬가지니 2천년 전의 유대인도 이방인도 그들의 악함은 동일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보다 이방인이 더 낫다고 하셨으니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달으려면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그러므로 그것은 곧 신에 대한 유대인과 이방인의 다른 관점이다.
유대민족도 또한 이방의 다른 모든 민족도 동일하게 알고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 첫째하늘에 수많은 신들이 있다는 것이니 혹자는 우주가 혹자는 자연이 혹자는 종교가 혹자는 스스로가 신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 많은 신들 가운데 유대인은 오직 여호와라는 신을 믿는 것이며 이방민족들도 자기 나름대로 각자의 신을 섬기며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이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참된 신에 대해 올바르게 알기를 원하셨으니 이 말씀을 통해 그들에게 전하고자 하셨던 뜻은 이것이다.
모든 생명의 근원으로서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스스로 계신 영생의 신은 오직 아버지 한 분밖에 없다. 그렇다면 다른 수많은 신은 어디서 어떻게 생겨난 것인가? 그러므로 그것들을 지어낸 인격체도 처음에는 영원한 셋째하늘에 있었으니 원수도 아버지께로 지음 받은 피조물들 가운데 하나였으되 그는 늘 자신의 욕심과 영광과 의만 구하는 더럽고 교만하고 불의한 마음을 품고 말과 행위를 통해 타락한 후에도 끝까지 돌이키지 아니했기에 셋째하늘의 밑에 있는 이 첫째하늘로 쫓겨난 것이다. 그런데 원수는 심판 받은 후에도 자신을 돌이키기 보다는 오히려 아래로 쫓겨난 것을 억울하게 생각하며 생명을 주신 아버지께 끝까지 대항하기 원했다. 즉 이방민족들에게는 영생을 주지 못하는 신들을 만들어 전해주었기에 어리석은 이방인들이 세상의 돈과 복과 명예를 따라가고 있는 것이요 할례로 여호와와 언약을 맺고도 어리석고 음란하게 된 유대인들이 아버지대신 말 못하는 유대종교를 섬기고 있다는 것을 믿는 자들이 깨닫도록 이 말씀을 허락하신 것이다.
이처럼 원수는 오직 아버지께로 대항하고자 많은 신들을 사람들에게 만들어주었기에 유대인들이 사는 첫째 둘째 도시도 또한 이방인들이 거주하는 셋째 넷째 지역도 공통점이 있었다. 그러므로 원수는 자신의 악한 영들을 통해 모든 지역들에다 사람들이 눈으로 보기 원하는 수많은 이적들을 내어주었으며 또한 사람들로 하여금 그 이적들을 보고 끝까지 따르도록 이끌었다. 즉 만들어진 신을 섬기므로 보고 듣고 만지고 느끼는 신기한 것들을 이용해 사람들이 생명을 주시는 아버지와 그 생명을 십자가로 전하신 아들을 보거나 듣거나 만지거나 깨닫지 못하게 했던 것이다.
하지만 두 지역에 차이점도 있었으니 우선 유대인이 거하는 도시들은 이미 여호와를 들은 바가 있었다. 그러나 육에 할례 받은 자들의 마음이 생명을 주신 아버지와 아들께로부터 떠나 세상에 빠져있었으니 이미 들었던 자들에게는 다시 전한다 하여도 그들은 돌이키지 아니할 자들이었다. 반면 이방인들이 사는 곳은 어려서부터 지어낸 신들만 알았기에 아버지를 들어본 적이 없으며 죄가 무엇인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전한다면 단 한 영혼이라도 좌우를 분별하고 회개하는 자가 있으리니 이것이 바로 이방인의 도시가 유대인의 지역보다 더 낫다는 말씀의 의미다. 하지만 당시에 이방인도 유대인도 다 악한 영들로 인해 그들의 마음은 오직 신비한 것들에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거짓된 신들이 내주는 신비한 것들을 매우 좋아했기에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얻고자 세상에서 돌이키기 보다는 오히려 그 신비한 것들과 함께 영원한 사망으로 내려갔다.
그렇다면 코를 통해 아버지의 생기를 받은 사람에게 그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은 영생이되 그들을 세상에서 돌이키지 못하게 했던 그 신비란 것은 과연 무엇인가? 즉 그들은 영생하는 인격체로서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그것을 도대체 무엇과 맞바꾸었나? 비유를 통해 그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
한 마술사가 어떤 사람을 보니 그는 생명보다는 음란을 참 좋아했다. 그러므로 마술사가 검은 천을 들고 있다 천천히 벗겨내니 파격 노출 볼륨 섹시한 여자가 나타났다. 이때 마술사가 그에게 말하길 자기를 따라오면 이 여자를 주겠다고 했다. 이에 그는 기뻐하며 마술사를 따라갔으나 9초 후에 여자가 싫증나고 이제는 종이방석에 앉고 싶었다. 그래서 그가 주위를 둘러보니 다른 마술사가 종이를 보여주며 자기 말을 잘 들으면 그것을 원하는 만큼 깔아주겠다고 말하자 그는 둘째 마술사가 시키는 것들은 어떤 일이든지 다했다. 하지만 9초가 지나자 이제는 높은 구두도 가지고 싶었으니 또 다른 마술사를 찾아가 높은 구두를 달라며 간절히 빌었다. 그러자 마술사는 구두를 보이며 네 목숨을 나에게 바치면 주겠다고 했으니 그는 자기영혼을 팔았다. 이에 마술사가 그의 머리에 도장을 찍고는 검게 빛나는 구두를 내주자 그는 흑암가운데서 높은 자리를 차지했다. 그러나 마술사들은 그의 육이 원하는 것들은 다 채워줄지라도 오직 생명은 주지 못했으니 마술사들의 말을 듣고 따라간 자들은 죽음과 동시에 자기의 모든 소유를 다 잃고 사망으로 들어갔다.
이처럼 신비라는 것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신기한 것이되 신을 통해 오직 자신의 요구를 채우며 또한 자신의 요구를 신기한 방법으로 들어주는 신을 자기마음에 모시는 것이니 오늘은 이 신 내일은 저 신으로 늘 바꾸며 자신이 얻기 원하는 이적들을 바라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당시 생명의 신을 알되 거룩은 거부하고 썩어질 육의 욕심과 세상의 영광에 빠진 유대인도 또한 주님을 모르다가 알게 된 이방인도 세상의 여러 가지 신비한 것들에 빠져 세상과 음란을 행했다. 심지어 그것들을 얻기 위해 자기의 아내와 아들딸도 마음껏 다른 자들에게 넘겨주었다.
그런데 인격체가 이렇게 신비한 것에 마음을 빼앗겨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생명을 잃는 것은 이 마지막 때에도 마찬가지이니 이방인의 다수가 생명의 주님을 믿노라 하되 속마음은 썩어질 것과 헛된 것에 있다. 그러므로 아비들은 이적을 보기 위해 가족의 영혼을 돌보지 않는다. 오히려 6일 동안 세상으로 인도하며 자식들을 이용하고 희생시킨다. 그러다 7일째에 이것은 주일성수요 예배요 헌금이라 말하되 속마음은 이적을 구하며 그 자리에 앉아있다. 이러하니 자기의 욕심과 영광을 위해 주님을 이용하는 자들과 자기의 자식들까지 사망으로 내어주는 거짓마술사들이 어찌 죄와 세상에서 돌이켜 생명을 얻을 수 있으리요? 하지만 그가 비록 자기가족을 몰렉의 불에 지나게 했을지라도 심지어 아이들을 이적으로 이끌던 마술사일지라도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면 회개하고 돌이킬 수 있으니 아버지께서는 이 마지막 때에 그런 한 영혼을 애타게 기다리신다.
“예수께서 권능을 가장 많이 베푸신 고을들이 회개치 아니하므로 그 때에 책망하시되 화가 있을진저 고라신아 화가 있을진저 벳새다야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으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