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보고 그리스도는 이 땅에 계실 때 거처가 없었으며 가난했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자기생각으로 가르치는 자들은 나는 집도 없고 가난하며 아무것도 없으니 네가 만일 이 길을 가려면 너도 무소유가 될 것이니 그럴 각오가 되어있느냐는 뜻이라고 전하며 자신을 제자로 여기니 뿌듯하다. 그래서 그가 말한 대로 사는 자인가 하여 들여다보면 이방인들과 똑같다. 한편 어떤 자는 지금은 마지막 때라며 사람들을 불러 모으되 결혼해서 아기들을 줄줄이 낳고는 앞에 서서 설교하길 홍수가 나서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그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갔다며 울분을 토한다. 최고봉은 이것이니 혼자 있을 때 늘 음행을 즐기는 자가 돌이키지는 않고 지금은 환난과 재림이 임박한 마지막 때이니 우리 함께 깨어서 신부단장하자며 사람들을 모아놓고 입을 돌리길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이 죄라며 자위한다.

 

그러나 우리의 구세주 되신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와 동일한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셨어도 이 땅에 육신을 입고 계셨으니 어찌 음식을 취하지 않고 대변을 보지 않으셨겠는가? 거처가 없어 날마다 산에서 주무셨겠는가? 또한 자신을 세상과 사람들이 아니요 오직 아버지께만 맡기셨으니 주식과 땅과 보험은 취하지 않으셨어도 공적인 복음사역을 시작하시기 전 원수의 시험을 이기기 위한 그 40일 외에는 오로지 일용할 만큼의 영과 육의 양식을 늘 취하셨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니요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앞날에 대해 말씀하신 것이니 곧 인자에 대한 예언이다.

 

아버지께서 정하신 창조원리에 따라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도 짐승도 동일하게 그들의 육신이 죽을 때가 되면 자기의 가족과 친척과 친구를 찾도록 창조하셨으니 그들은 자기가 자라 나온 곳으로 돌아가 그곳에다 자신의 육신을 묻는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앞으로 자신이 죽음을 당할 때 사람들과 또한 짐승들도 하는 그 일조차 하지 못할 것이라는 의미로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고 하셨던 것이다. 하지만 가증스러운 자들은 그가 가난했으며 또한 거할 처소도 없었다고 가르치며 자신을 그리스도의 제자라고 알리되 머리 둘 곳만이 아니요 다른 모든 것들도 철저하게 준비하다 결국 머리 둘 곳 없는 그 마지막 죽음은 피한다. 그리하여 그런 육신적인 준비들과 양들을 위한 죽음의 거부는 그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가 아니요 바리새인이었음을 스스로 증거한다.

 

그런데 이 말씀은 예언이요 예언은 반드시 이루어지니 그리스도께서 그 죽음을 맞이하실 때 그를 따르던 제자들 즉 친구들은 모두다 도망갔다. 또한 그의 육의 어미도 자기의 생각을 따르며 육과 세상으로 분주하여 그리스도를 따르지 않다가 오로지 주님이 돌아가실 때에 십자가로 나아왔다. 게다가 그의 육을 담는 그곳도 자신이 마련한 것이 아니었으니 오직 모든 것을 아버지께 맡기고 자신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고자 사단의 자식이란 소리를 들으며 극한 고통가운데서도 십자가의 죽음만을 끝까지 이루셨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그 참된 생명을 이루고자 죽음을 당하실 때에 사람들과 짐승들이 하듯 그 모든 것을 다 하지 아니하시므로 인자의 그 예언을 그대로 이루셨다.

 

한편 이 예언의 말씀이 나온 상황과 대상이 있었으니 우선 그리스도를 좇아 다니던 한 서기관이 있었다. 그런데 그 자는 참으로 마음이 악했으니 자신이 영의 생명을 얻고자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라다닌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를 보니 그가 왕이 될 때에 자신도 그 왕의 자리에 함께 가길 원하여 따라다녔다. 즉 그는 율법공부를 다 마친 후에 자신이 서기관자리에서 바리새인이나 혹은 장로로 올라가지 못할 것을 이미 예측하고 그리스도를 좇아 다녔다. 그러나 인자의 예언이 이루어지는 쪽으로 형편이 기울어지자 얼마 못 있다 그리스도를 버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좇지 못한 그 서기관은 생명도 얻지 못하고 또한 세상의 명예도 얻지 못했다.

 

그런데 그 악한 서기관이 바로 그때 자신의 그 마음을 숨기고 그리스도께서 어디를 가든 자신은 그리스도를 끝까지 따르겠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것은 그가 왕이 될 때 자신도 그 자리에 함께 앉을 때까지 따르겠다는 것이지 자신도 머리 둘 곳 없는 그 죽음까지 따라가므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겠다는 마음이 아니었다. 이에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악한 마음을 아시니 그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리요? 너의 마음을 돌이키라는 말을 인격체에게 계속해 반복하시리요? 아님 다 큰 성인에게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시리요?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 악한 서기관에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아니하셨으니 그것은 그가 자기의 사람이 아닌 것을 이미 아셨기 때문이다.

 

한편 서기관의 고백 바로 전에 열두 제자 중 한 명이 그들이 이제는 육의 안식도 취하기 원하여 쉴 곳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그 제자의 마음은 정말 육신의 안식을 위해 쉴만한 곳을 찾는 것이 아니요 그리스도와 제자들에게 계속적으로 사람들이 붙으니 그의 육적인 욕심과 영적인 교만으로 자기의 사람들을 고르고자 함이었다. 즉 그 제자는 사람들 가운데서 누가 그리스도의 말이 아닌 자신의 육적인 말을 들을까 하여 자기를 따를 자들을 고르기 위한 생각을 가지고 쉴 곳을 찾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 제자는 믿는 자들 중에서 지금으로 말하면 저 불쌍한 사람들의 육을 돕자고 말하는 자들의 조상이니 동성애는 죄요 내 안의 음란은 성령이 주는 것이고 바벨론의 공산주의는 마귀정권이요 바벨론의 자본주의는 하나님이 세웠으니 묶였던 자가 자유케 되는 그 영광의 날은 내 안의 죄를 이기는 날이 아니요 북한정권이 무너지는 날로 여기며 노래 부른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그 서기관에게는 무슨 말씀을 하지 아니하셨으나 그 전에 그 제자가 사람들을 자기에게 이끌어 자기의 말을 듣게 하므로 자기가 높아지고자 쉬는 곳을 찾는 그 잘못된 마음을 아시고 그 대답으로써 그 제자에게 주셨던 말씀이 곧 이 인자의 예언이었다.

 

이처럼 가룟유다는 늘 다른 자들보다 자기가 더 육적인 이익을 얻고자 했으며 또한 그 육을 통해 사람들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가 아닌 오히려 육을 많이 가진 자신을 따르도록 이끌었다. 이에 그리스도께서는 또 한번의 기회를 주어 그가 잘못된 마음을 돌이키길 원하셨기에 그에게 머리를 둘 곳이 없는 인자의 그 죽음에 대해 알리셨던 것이다. 그러나 자신을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라 하면서도 그의 마음은 오직 육의 욕심과 세상에 있었으며 또한 살고자하는 마음도 없었으니 그는 자신에게 생명의 기회를 주는 이 말씀을 깨닫지 못했고 돌이키지도 못했다.

 

그런데 2천년 전의 이런 상황은 이 마지막 때에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으니 어떤 제자는 물질의 어려움과 사람의 수가 적은 것을 보며 십자가라 생각하여 적음으로 자신을 높이려는 마음이 그의 안에 있고 풍부한 물질과 많은 수를 이룬 제자는 큰 것으로 높인다. 그러므로 그들이 만일 그 마음을 돌이켜 처음에 약속한대로 죽기까지 낮아지신 그리스도를 따르지 못한다면 그들은 육의 사망으로 들어간다. 반면 어떤 제자는 처음부터 자신이 목적으로 삼은 그것을 복음을 이용해 다 이루었으니 내려오지 못할 만큼 높아졌다. 그러므로 그가 만일 거짓을 돌이키지 못하면 영혼의 사망으로 들어감은 잘못된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따른 그 제자의 마지막을 보면 알 수 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거처가 있으되 오직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다 하시더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