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1:1 (그리스도의 계시와 순종의 마음)
요한은 오직 세상의 기초만을 배운 영혼이었다. 그러므로 요한은 요즘과 비교를 하자면 초등학교 6학년의 정도의 배움을 가지고 29살이 되기까지 어부 일만 하고 있었다. 하지만 요한은 그의 마음가운데서 더욱더 지혜를 얻고자 하는 마음이 있었다.
요한은 그렇게 어부의 일을 하고 있었으며 그리스도께서는 진리를 얻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그 요한을 찾아오셨다.
당시 요한은 동생인 야고보와 함께 그물을 손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요한의 살고자하는 마음과 지혜를 얻기 원하는 마음을 보셨다. 그러므로 요한에게 하늘에 있는 말씀들을 배우고자 하지 않겠느냐고 물으셨다.
요한은 그리스도의 그 말씀을 듣고 자신의 배와 종들을 자기의 아비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좇으니 야고보도 함께 좇아갔다.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가장 먼저 요한복음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다음해에 요한1, 2, 3서를 기록했다. 그리고 마지막에 요한계시록을 기록하고는 아버지께로 살과 피를 드렸다.
요한은 7년에 거쳐 요한복음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 기록된 것을 다시 점검하며 그리스도께로 명 받은 대로 모든 언어들을 바꾸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도 다른 진리의 말씀처럼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만이 그것을 보며 깨달을 수 있다.
거룩하신 영께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뜻대로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의 그 마음의 눈과 마음의 귀를 열어주시기 때문이다.
한편 요한1, 2, 3서는 사람의 역사상 믿는 자들에게 가장 핍박이 심할 때 나왔다. 그러므로 그때는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후 1-2년 정도가 지났을 때였다.
요한은 그 가장 큰 핍박가운데서 많은 자들을 강건하게 하길 원했다. 그리고 그들이 믿음을 더 쌓아 올리기 원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교회에 있을 때 그 세 통의 편지를 썼던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살고자하는 마음이 없이 마태와 마가와 누가복음을 읽는다. 그러므로 그런 자들은 진리를 그저 하나의 이야기처럼 읽는다. 그러면서 이해하기가 쉽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생각하길 그 안에 담긴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는 진리를 자신이 깨달았다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요한복음에는 첫 번째 구절부터 전혀 깨닫지 못하는 말씀들이 나온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말하길 요한복음은 심오하며 철학적인 면이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또한 요한복음과 다른 복음의 다른 면을 보고는 어리석은 추측을 한다. 즉 이야기식인 마태와 마가와 누가복음이 요한복음보다 먼저 나왔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요한복음은 심오한 것이니 나중에 나왔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마가와 누가는 그리스도께서 부활승천 하신 후 각각 15년과 16년 후에 그 복음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반면 요한은 33세가 되던 해에 요한복음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또한 요한은 그 요한복음을 7년 동안 기록했다. 그리고 2년 동안은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을 위하여 언어를 바꾸며 정리했다.
그러므로 요한복음은 마가복음과 누가복음 보다 훨씬 일찍 기록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록이 시작 된지 9년이 지난 후에 완성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요한복음을 기록하기 시작한 이듬해에 요한1, 2, 3서를 기록해 핍박이 가장 심할 때 공동체의 믿음을 강건케 했던 것이다.
요한은 또한 요한복음을 다 완성한 후 2년이 지났을 때 계시록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요한은 계시록을 기록할 당시 밧모라는 섬에서 믿는 자들과 함께 있었다. 그러므로 요한은 자신과 함께 하는 거룩한 자들에게 그 받은 말씀들을 먼저 전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후에야 비로서 소아시아의 7교회에도 그것을 보냈던 것이다.
요한은 밧모 섬에서 3년에 거쳐 계시록을 기록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그리스도께서 거룩하신 영을 통해 명하신 대로 역시 그 안의 언어들을 모두 다 바꾸었다. 그러므로 계시록도 다른 진리의 말씀과 같이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만이 그것을 볼 때 보고 들을 때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요한은 이처럼 모든 말씀을 다 기록하고 또한 다 전했으니 이제는 아버지의 때가 되었다. 즉 살과 피를 드릴 때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요한은 계시록을 완성하고 5년 후에 살과 피를 드렸으니 그때 그의 나이 52세였다.
요한은 그리스도께 받은 말씀들을 시작하며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라고 기록한다. 계1:1을 보자.
사람들은 자식을 낳기 전 이곳 저곳에서 귀한 이름들을 찾는다. 그리고 그 중에 가장 좋은 이름을 태어나는 자식에게 붙여준다.
사람도 이와 같을진대 하물며 셋째하늘의 아버지께서도 마찬가지셨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태초에 아들을 낳으실 때 모든 곳을 다 뒤지셨다. 그리고 가장 귀한 이름을 찾으셨으니 그것이 바로 예수라는 이름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낳으시고 자신이 찾은 그 귀한 이름을 그에게 주셨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권위도 그 아들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종들은 그 아들의 이름에 순복하여 그 영원한 셋째하늘과 낙원이 있는 그 둘째하늘과 이 첫째하늘을 창조했던 것이다. 또한 그 아들의 이름에 순종하여 그 첫째사람과 그 둘째사람들도 창조했던 것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그 귀한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다. 그리고 그 아들이 이 땅에 태어날 때에도 그의 이름을 그대로 예수라 하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요셉은 순종하여 예수라는 이름을 짓고 또한 그 이름으로 호적을 올렸다.
이렇게 하여 아버지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이 땅에서도 역시 ‘예수’라는 그 이름을 가지셨던 것이다.
그런데 그 예수라는 이름은 거룩한 생명의 근원이시오 능력 되신 아버지께서 주신이름이다. 그리고 모든 종들은 아버지와 아들의 명에 순종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이름을 부르는 자는 아버지의 종들이 그를 돕는다. 그리하여 그 이름을 부른 자는 마지막에 아버지께서 준비하신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얻게 되는 것이다.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그 예수의 이름 안에는 세 가지의 의미가 있다.
첫째 예수의 이름을 아는 자는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을 안다. 셋째하늘과 둘째하늘과 이 첫째하늘과 그 안의 모든 것들이 예수라는 이름 하나로 창조되었다. 하지만 아들께서는 이 세상의 마지막 때에 바로 그 이름으로 불의 심판을 명하신다. 그러므로 셋째하늘 이외의 모든 것이 그 불로 인해 멸망 당한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이름은 창조자의 이름이다. 동시에 창조하신 모든 것을 심판하시며 멸망하시는 심판자의 이름이다.
둘째 예수라는 이름 안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 함께 하신다. 예수라는 이름은 아버지께로 온 것이다. 그리고 거룩하신 영께서는 아버지와 아들께로 나오시어 아버지와 아들과 영원토록 함께 거하신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이름 안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 영원히 함께 거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아들이신 예수께서는 그 창조와 멸망의 일을 오직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신다. 그리고 거룩하신 영께서도 그리스도와 함께 하신다. 그러므로 예수이름을 아는 자는 아버지도 알고 거룩하신 영도 알게 된다. 그러나 예수이름을 모르는 자는 아버지도 모르고 거룩하신 영도 모르는 것이다.
또한 둘째사람은 그리스도의 형상과 모양으로 그리스도께 창조 받은 자들이다. 그리고 피조물은 창조자를 알아보고 부르며 따르며 자신을 창조한 자의 형상에 이를 수 있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그 이름은 온 세상에 속한 자들이 똑같이 부를 수 있는 이름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생명에 이른 자는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 영원토록 그와 함께 하신다. 그리고 그는 예수라는 그 이름 하나로 영원하신 하나님의 생명에 이른다. 그러므로 그 이름에는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 함께 속해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셋째 예수라는 이름에는 모든 자들이 무릎을 꿇게 된다. 형체와 육체가 있는 종과 사람은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그 아들께로 창조 받았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거룩한 영을 주시므로 그들이 영원히 살도록 해주셨다. 하지만 창조자보다 더 거룩에 이르는 자는 없으니 그 이름보다 더 높은 자가 없다.
또한 아버지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모든 것에 생명을 주실 수 있으셨던 것은 아버지께 생명이 있으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께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것은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신이시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주셨던 그 거룩한 생명과 선하고 무한한 능력을 거룩한 모든 자들에게도 주신다. 그러므로 나중에 그 거룩한 생명을 가진 모든 자들도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결국 사람과 종은 자신이 거룩한 생명의 은혜를 얻고 선한 능력의 은혜를 얻은 것은 그 이름으로 인한 것이다. 그러므로 은혜를 받은 모든 자들은 그 이름 앞에 무릎을 꿇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얻으신 아들께서는 또한 그리스도라고도 불리신다. 그리스도라는 것은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 기름부음에는 아버지의 모든 것을 아들에게 주었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아버지께서는 태초부터 바라시는 것이 자녀를 얻으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품에서 낳으신 아들에게 자신의 모든 것을 주셨다. 그러므로 예수라는 이름을 가진 그 아들이 그리스도가 된 것이다.
그런데 아들께서는 거룩한 자녀를 원하시는 아버지의 그 마음을 아셨다. 그러므로 아들께서는 아버지의 모든 것을 가지고도 그 고난스런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으며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살과 피를 내어 놓으셨다. 오직 아버지의 선하시고 기쁘신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그렇게 하셨던 것이다.
이에 아버지께서는 죽기까지 순종한 그 아들을 사랑하시며 기뻐하셨다. 그러므로 그 아들에게 이제는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허락하셨다. 그런데 이것은 십자가의 길을 걷는 모든 자들에게도 동일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 순종을 통하여 아들에게 거룩한 육체를 허락하셨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길로 따라오는 자들에게도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한 육체를 주시어 아들과 같은 육체를 얻은 자들을 아들과 같이 자신의 자녀로 삼으시는 것이다.
또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모든 것을 주신 것처럼 아들께서도 자신만이 그것들을 갖지 않으시고 자신의 형제자매들에게 그들이 행한 대로 공평하게 나누어주신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아버지의 뜻인 거룩에 애쓴 자들은 셋째하늘의 모든 영광과 권세를 아들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공평하게 얻는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아들이신 독생자는 이 땅에 와서 물의 침례를 받을 때 그리스도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고 말한다. 또한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하시기 전에는 모든 것을 아버지께서 직접 다스리셨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태초부터 이미 아버지의 계획에 따라 아버지께 모든 것을 받으셨다. 또한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시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으며 죽기까지 순종하시어 모든 뜻을 다 이루셨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에만 그 영광을 입고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모든 것을 다스리고 계시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순종한 자가 영광과 권세를 얻는 것은 둘째사람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그 자녀들의 영광도 이미 셋째하늘에 준비해두셨다. 그리고 누구든 그리스도께서 전하신 말씀에 순종하며 약속을 지키는 자에게는 그 준비하신 모든 것들을 허락해주신다. 그리하여 거룩한 육체의 영광을 얻은 자녀들도 그리스도와 함께 셋째하늘을 영원토록 다스리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땀과 고난을 원치 않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같은 그 영광을 누가 얻는지도 깨닫지 못한다. 그리하여 게으른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고난 받으며 죽기까지 순종하셨으니 자신은 죽기까지 하는 순종이나 고난이 없어도 그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얻는다고 말하며 그렇게 믿는 것이다.
이제 아들의 이름이 예수라는 것과 그리스도라는 호칭에 대해 깨달았다. 그런데 요한은 그 두 호칭을 합하여 예수그리스도라고 기록한다. 그러므로 예수와 그리스도는 항상 함께 간다. 그리고 함께 갈 때도 역시 그에 따른 의미가 있다.
이 예수그리스도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그리고 그 의미는 아버지와 아들과 둘째사람의 관계에서 깨달을 수 있다.
우선 예수그리스도란 첫째로 아버지께서 그를 택하셨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둘째사람들 가운데서 자녀를 원하시나 백성도 원하신다. 그리고 그 원하심을 이루시고자 택하신 자들을 통하여 자녀와 백성을 얻으신다.
그러므로 예수그리스도의 두 번째 뜻은 그 택하신 자를 통해 셋째하늘의 백성으로 또한 아들과 딸로 택하신다는 의미가 들어있다.
요한은 자신이 기록하는 것을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라고 한다.
계시라는 것은 아버지의 품 안에 있는 말씀의 비밀들을 의미한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그 모든 계시를 아들에게 다 주셨다. 그리고 아들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 오직 아버지의 말씀만을 전하셨으며 마지막에는 십자가에서 아버지께로 살과 피를 드리셨다. 아버지의 뜻을 아셨으니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던 것이다.
그러므로 고난을 당하며 죽기까지 하는 순종을 하신 아들 외에는 아버지의 비밀을 알 수 있는 자가 없다.
하지만 사람들 가운데서도 아버지의 계시를 받는 자들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아버지께로 교회시대마다 택하심의 은혜를 받는다. 그리고 아들께서는 아버지께서 택하신 그들에게 자신이 받은 계시를 보여주시며 들려주신다. 그러므로 그들도 오직 말씀만을 전하며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그 고난스런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그 고난스런 십자가의 길을 걸으셨던 것은 그리고 그 십자가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셨던 것은 아버지의 품에 있는 그 비밀을 알고 계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고난을 당하며 죽기까지 하는 순종을 하는 자가 있다면 그 영혼도 아버지의 뜻과 말씀의 비밀을 알고 있다는 증거이다.
결국 아버지의 말씀의 비밀은 오직 아들과 또한 아들로부터 계시를 받은 자만이 알고 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는 아들과 아들의 계시를 받은 자 외에는 그 누구도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다.
그러나 모든 계시가 아버지와 아들께로만 오는 것이 아니요 원수가 주는 거짓 계시도 있다. 그리고 그것은 구분하기에 쉽지 않다. 하지만 누군가 계시를 받았다고 할 때 그의 말과 행위를 지켜보면 그것이 참된 것인지 아님 거짓된 것인지를 알 수 있다.
우선 계시를 받은 자는 오직 아버지의 말씀만을 전한다고 했다. 하지만 거짓된 계시를 받은 자는 아버지의 말씀에다 자신의 말을 섞는다. 그리고 자신의 말을 듣지 않으면 저주받는 다는 말을 하고 다닌다.
계시를 받은 자는 또한 십자가에서 자신의 살과 피를 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거짓된 계시를 받은 자는 자기를 부인하거나 자기의 십자가를 지지 않는다. 마지막에 자신의 십자가에서 살과 피를 드리는 것은 더욱더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복음을 전하며 자신의 육적인 것을 챙긴다. 또한 많은 자들이 자기에게 모이며 자신의 이름이 높아지기를 원하는 마음이 그들의 안에 있다. 그러므로 계시를 받았다고 말하는 자의 이러한 말과 마음과 열매들을 보면 그것이 참된 것인지 거짓된 것인지 아주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요한은 계시를 받고 오직 아버지의 말씀만을 전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리스도처럼 자신의 살과 피를 아버지께 드리므로 아버지의 뜻을 이루었다. 그러므로 요한이 받은 계시는 예수그리스도께로 받은 아버지의 참된 계시였음을 알 수 있다.
요한 또한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준 그 계시를 아버지의 일을 하는 종들에게도 보이신다고 기록한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며 아버지의 뜻에 애쓰고 있는 종들도 역시 계시를 받고 있거나 먼저 계시를 받은 자들로부터 그것을 전해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계시를 받은 자는 오직 아버지의 말씀만을 전한다고 했다. 또한 마지막에는 자신의 살과 피를 드린다고 했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때에도 참된 종들은 오직 아버지의 말씀만을 전하고 있으며 그 마지막의 피 흘림만을 바라보며 그 길로 나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금까지의 말씀을 통해 아들께서는 아버지께 받은 계시를 다음과 같이 아버지의 종들에게 주고 계신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들께서는 우선 각 교회시대에 아버지께서 택하신 자들에게 계시를 보여주시며 알려주신다. 그러면 그들은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자신이 보고들은 말씀에 자신이 먼저 순종한다. 동시에 자신이 받은 말씀만을 전한다. 그리고 그것을 보았으니 마지막에는 담대히 순교의 피를 흘리므로 아버지께로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
피 흘림으로 아버지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영광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둘째사람에게 자신의 영광을 주셨다. 즉 자신의 거룩하고 영광스런 영을 주신 것이다. 또한 아버지께서는 육체라는 영광도 주셨다. 게다가 남자는 아버지의 영광의 모양까지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사람은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께로 영혼과 육체라는 영광을 받은 자들이다.
그런데 그 영광을 주신 아버지께서는 사람이 자신처럼 거룩하기 원하시니 순종하기 원하신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순종하는 자에게서 영광을 받으시며 죽기까지 순종하는 자에게서 큰 영광을 받으신다.
계시를 받은 자는 바로 이 아버지의 뜻과 은혜와 영광을 깨닫는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영혼과 육체를 아버지께 드리는 것이다.
그런데 영혼과 육체는 아버지께 받은 영광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그는 아버지께로 드리는 피 흘림의 순간에 자신이 아버지께 받은 영광을 다시 돌려드리는 것이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자신의 영광에 대하여 한 가지 원칙을 정해놓으셨다. 그것은 바로 영광을 받으시면 다시금 더 좋은 영광으로 돌려주신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그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얻으신 것은 바로 이러한 아버지의 영광의 원칙에 의한 것이었다. 또한 자녀들도 이 영광의 원칙에 의해 아버지께로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얻는다.
그리하여 순종으로 영광 돌린 자는 죽기까지 영광 돌리신 그리스도와 함께 아버지의 앞에 서서 그 거룩하고 영광스런 몸을 입고 아버지께로 감사의 시를 돌려드리게 되는 것이다.
결국 계시를 보고 들으며 순종을 통해 거룩에 이른 후 아버지께로 살과 피를 드리는 자는 참으로 복된 영혼이다. 그런데 그 복된 영혼가운데 한 명이 바로 요한이었다. 그러므로 자신이 아버지의 영광을 위하여 창조 받았음을 깨닫고 감사하며 그 영광스런 복을 사모하는 자는 요한을 통해 배울 것이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요한은 마음이 순수한 자였다. 그러므로 그는 오직 말씀에만 귀를 기울였다. 반면 그리스도 앞에서는 아무런 행위를 나타내지 않았다. 하지만 다른 제자들은 말씀을 듣고 가서 자신이 행한 것을 늘 자랑했다.
둘째 사도요한은 마음이 강했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스도께서 걸어가실 때 항상 오른편에서 걸어갔다. 혹 다른 제자들이 그리스도의 옆을 걸어가는 것을 보면 그가 달려와 그사이를 가로질러 들어갔다. 그렇게 하므로 그는 늘 그리스도의 옆에서 그리스도의 말에 귀를 기울였던 것이다.
요한이 이처럼 그리스도의 오른쪽에만 있으려 했던 것에 대해 욕심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그러한 요한을 보며 그가 늘 그리스도의 마음 안에 거하기 원하는 것으로 보셨다.
그러나 가룟유다의 경우는 달랐다. 그는 항상 그리스도께로부터 제일멀리 서있었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한 것은 자신의 마음이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안에 거하지 않는 그의 마음에는 세상의 말이 틈탔다. 그리고 그 세상의 말로 인해 그가 범죄하며 그리스도의 마음에서 떨어져갔던 것이다.
셋째 그리스도께서 다른 제자들보다 요한을 더 사랑하셨던 이유가 있었다. 요한은 오직 영에 소망이 있었다. 그리고 영에만 욕심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도 아버지의 말씀을 사랑하는 요한을 더욱더 사랑하셨던 것이다
사실 요한은 그의 의가 베드로보다 더 강한 자였다. 하지만 그는 참으로 말씀의 욕심이 있었다. 그러므로 자신의 의가 강했으나 그리스도의 말이라면 곧 순종하며 따랐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도 그 마음을 늘 기뻐 받으셨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계시록의 기록을 참으로 영의 욕심과 순종의 마음이 있는 그에게 맡기셨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