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시대의 온전한 십일조

 

십일조는 처음에 아브라함이 대제사장인 멜기세덱에게 드렸으니 그것은 본래 자신의 모든 수입가운데 10분의 2였다. 그러므로 10분의 1의 몫은 멜기가 자신의 의식주를 위해 개인적으로 사용했고 나머지는 남겨두었다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주었으니 그들도 육의 생명을 유지하며 거룩에 애쓸 수 있었다. 또한 멜기세덱의 십일조를 기초로 한 구약의 십일조계명도 동일하게 10분의 2였으나 매년 토지소산의 첫 것과 짐승의 새끼들 반이 더해졌으되 쓰임은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드렸던 것과 같았으니 구약시대의 제사장과 레위지파도 동일하게 오직 1의 분깃으로만 자신의 육을 유지하고 나머지는 가난한 자들과 나누어 함께 거룩에 애썼다. 그러나 육의 욕심에 빠진 어리석은 성전목자들은 지금처럼 차량유지비나 판공비라는 말들을 붙여 얼마든지 더 타낼 수 있었다. 또한 그런 제사장과 바리새인을 따르는 백성들도 십일조의 목적과 의미에는 관심이 없고 그저 육과 세상의 복을 받는다는 말에만 믿음을 가지고 오직 자신과 가족을 위해 바치되 여호와께 바친다고 속였으니 그들이 바친 십일조는 온전한 것이 아니요 더러운 것이었다.

 

이처럼 육적 십일조계명은 이방인을 위함이 아니요 오직 십자가전의 유대인에게만 주어진 것이되 그리스도의 전과 당시의 유대인은 더러운 욕심을 품고 철저히 그것을 바쳤다. 그러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자신을 다 드리므로 율법의 그 요구를 이루셨으니 십일조도 십의 십으로 완전해졌다. 그러므로 십자가후의 믿는 유대인은 오직 자신의 일부만 바침이 아니요 살을 찢고 물과 피를 온전히 희생하신 그리스도를 믿고 그대로 따랐다. 그리하여 예루살렘교회도 십의 십만이 아니요 자기의 생명과 가족까지 온전히 헌신한 후에 초대교회의 제자와 거룩한 자와 지체들이 육에 필요한 만큼을 공동체에서 받아쓰며 오직 거룩에 전념할 수 있었기에 유대교와 로마정부의 핍박가운데서도 오히려 믿음이 강건해져 야고보를 시작으로 담대히 살과 피를 드리고 유대인의 남은 자로서 말씀대로 그 기업의 분깃으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초대교회의 거룩하고 정결한 지체들이 이렇게 물질만 아니요 자신의 목숨과 자녀들까지 온전히 헌신했던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우선 십자가의 죽음 후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그 영광을 입고 셋째하늘과 둘째하늘과 이 첫째하늘을 다스리고 다니시며 또한 택하신 교회와 세상 끝까지 함께 하시되 형제자매와 신부의 처소와 또한 혼인잔치의 준비로 인해 그리스도와 한 몸은 머리 되신 그리스도를 육적으로는 더 이상 볼 수가 없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부활한 아들이 둘째하늘의 낙원으로 오를 때 거룩한 영을 보혜사로서 예루살렘교회에 보내주시어 아들의 한 몸 안에 거하는 그 모든 영혼을 거룩으로 인도하게 하셨다. 그러므로 보혜사의 가르침과 역사를 통해 말씀의 깨달음을 얻은 초대교회는 썩어질 육의 욕심과 헛된 세상에 마음을 두고도 지킬 수 있는 율법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폐하시되 마음과 몸과 정성과 목숨을 드려야만 지킬 수 있는 율법을 온전히 다 이루시어 한 사람을 지으셨음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자신의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나와 광야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성막을 짓기 위해 자원하는 예물을 드렸던 것처럼 그들도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고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또한 둘째로 예루살렘교회의 인도자들과 따르는 자들은 인간의 역사가운데서 가장 심했던 핍박과 환난이 다가올 때 자신이 언제 피의 제사를 드릴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들의 인생이 내일 어떻게 될지를 몰랐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셨음을 믿고 보혜사의 인도하심에 따라 자신의 모든 소유를 심령이 가난한 공동체에 속임 없이 진실하게 내어 놓고 자신과 가족에게 필요한 만큼을 공동체에서 공평하게 얻어다 사용하며 오직 거룩에 애썼다. 그리하여 이방인과 전통에 거하는 자들의 눈으로는 1억과 두 렙돈과 없어서 못 바친 자의 육적인 영향과 돈의 가치는 다르되 육신의 것을 지체들을 위해 헌신하고 자신의 한 몸으로 들어온 영혼들을 공평하게 사랑하시는 그리스도의 눈으로는 동일한 것이니 신실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들은 액수와 상관없이 아버지께로 거룩하게 구별된 물질이었다.

 

그렇다면 아직 헌신되지 못한 자나 혹은 자신은 헌신되었지만 가족이 아직 헌신되지 못한 경우에는 하고 싶어도 헌금생활에 참여하지 못하는가? 그들도 참여할 수 있으나 아직 헌신되지 않은 그와 함께하는 여자가 남자가 부모가 자식이 그것을 원치 아니하는 경우가 있다. 이때 그들이 만일 자기만 생각하여 그 일을 행하면 가정의 질서를 주신 아버지께로 불순종하는 것이요 또한 가정의 질서를 깨는 자가 어찌 질서가 있는 거룩하고 신령한 공동체의 지체로서 거할 수 있으리요? 그러므로 자신의 가족도 썩어질 헛된 것에서 돌이켜 그리스도께 자신을 헌신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참되되 그가 만일 가족의 동의를 받은 후 세상의 물질을 아버지께 드리고자 원한다면 그가 한 달에 필요한 만큼만을 떼고 나머지를 공동체에 내어 놓을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은 깊이 생각하고 또한 마음에 결단을 한 후에 행해야 함은 결단하고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믿음을 원수에게로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니 시간을 두고 생각하며 믿음을 확신하고 결단한 후에 행하는 것을 그리스도께서 원하신다. 그리하여 이렇게 온전한 헌신을 기다리는 영혼들이 가족들의 동의를 얻어 마음에서 물질을 낼 때 그것을 ‘연보’라 칭한다.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믿고 따르던 유대인의 예루살렘교회와 이방인의 안디옥교회는 이렇게 육의 필요와 욕심을 마음에서 다 내려놓으므로 성전의 첫 단계인 심령이 가난한 자의 말씀에 순종했기에 가난한 자와 부유한 자도 지위가 높은 자와 낮은 자도 배움이 있는 자와 없는 자도 몸이 건강한 자와 불편한 자도 모두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하나가 될 수 있었다. 또한 썩어질 것에 대해 누가 많이 갖고 누가 적게 갖고 하지 아니하므로 모든 것이 공평해졌으니 아버지의 한 자녀로서 그들은 입술로만이 아니요 참으로 그리스도안에서 흠 없는 살과 거룩한 피로 육신의 혈육보다 더 진하고 가까운 형제자매가 되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 헌신할 때 기억할 것이 있으니 그의 결단이 참된 것이라면 더욱더 아버지의 은혜의 손길을 그의 남편과 친척과 친구와 친지에게까지 그의 마음을 보시고 베푸시니 곧 그의 주변영혼들에게 임하는 날을 소망하겠으나 아직 마음이 되지 않은 자나 거짓된 마음으로 행하면 시험이 있을 것이요 차후 육의 욕심에 빠져 범죄하고 돌이키지 못하는 영혼은 물질문제로 인하여 다시금 사망으로 쫓겨나게 된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 일곱교회시대에 택하신 일곱교회들과 신령한 교회들도 또한 환난시대로 들어가는 교회들도 초대교회와 동일하게 자신과 가족과 물질을 온전히 헌신하는 이유는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폐하신 율법과 완성하신 율법을 믿고 그들도 폐할 것은 폐하고 순종할 것은 순종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자신을 교회라고 칭할 때 그들이 아버지의 뜻을 위한 육의 물질을 어떻게 이용하고 있는지 한 가지만 보아도 아버지께서 이 땅에서 택하신 그리스도의 교회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다. 하지만 초대교회처럼 자신도 말씀대로 순종하려는 정직한 마음을 가지고 올바른 교회를 분별하고 싶은 영혼은 오직 재정 하나만을 보기보다는 생명과 진리의 말씀을 깨닫고 더불어 그 말씀에 마음을 다해 순종하고 있는지를 보며 하나라도 흠이 없을 때 그리스도께서 이끄시는 거룩한 공동체로 판단하는 것이 가장 확실한 길이다.

 

“너희 대적을 네 손에 붙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 하매 아브람이 그 얻은 것에서 십분 일을 멜기세덱에게 주었더라”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내가 이스라엘의 십일조를 레위 자손에게 기업으로 다 주어서 그들의 하는 일 곧 회막에서 하는 일을 갚나니”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는 고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네 경내 네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네 손을 펼찌니라”

“이스라엘 여자 중에 창기가 있지 못할 것이요 이스라엘 남자 중에 미동이 있지 못할찌니 창기의 번 돈과 개 같은 자의 소득은 아무 서원하는 일로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가져오지 말라 이 둘은 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한 것임이니라”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의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곧 베드로의 발 앞에 엎드러져 혼이 떠나는지라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죽은 것을 보고 메어다가 그 남편 곁에 장사하니 온 교회와 이 일을 듣는 사람들이 다 크게 두려워하니라”

“믿는 사람이 다 함께 있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또 재산과 소유를 팔아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 주고”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분깃을 지키시나이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생존 세계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너희가 수치 대신에 배나 얻으며 능욕 대신에 분깃을 인하여 즐거워할 것이라 그리하여 고토에서 배나 얻고 영영한 기쁨이 있으리라”

“하나님 앞에서 네 마음이 바르지 못하니 이 도에는 네가 관계도 없고 분깃 될 것도 없느니라”

“그리하면 위에 계신 하나님의 내리시는 분깃이 무엇이겠으며 높은 곳에서 전능자의 주시는 산업이 무엇이겠느냐”

“여호와는 나의 분깃이시니 나는 주의 말씀을 지키리라 하였나이다”

 

신약시대의 온전한 십일조

 

내게 있는 향유 옥합

 

내게 있는 모든 것을

 

말씀의 나무

 

보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