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위하여*

 

사람들이 바닷물 속에서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그러나 그 바닷물에는 더러운 독이 퍼져있었다. 그러므로 그 안에 있던 사람들은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이에 그 나라의 왕은 그들을 불쌍히 여겨 이렇게 말했다. “나와 맺은 약속을 지킨 사람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집을 지어주겠노라. 그런데 그 집은 왕이 사는 집이요 영원히 무너지지 않을 것이니 나와 약속을 지킨 사람은 영원히 왕자와 공주가 되겠노라.” 왕의 말을 듣고 난 후 사람들은 그 약속을 이루기 위해 자신이 왕과 지켜야 할 약속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러자 왕은 더러운 물속에서 나와 저 높은 산에 올라가 마음과 몸과 뜻과 정성과 목숨을 다해 곧고 큰 나무를 한 그루 베어서 가지를 치고 껍질을 다 벗겨놓으면 된다고 했다. 이에 어떤 사람이 가장 먼저 더러운 물에서 나와 높은 산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곧고 큰 나무를 베기 시작했으나 나무가 하도 커서 너무나 힘들었다. 그러나 왕과 맺은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음과 몸을 다해 일했다. 그러므로 그는 그 큰 나무를 완전히 베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후 가지를 치고 껍질을 벗기는 일도 너무 힘들었다. 그러나 왕과 맺은 약속을 기억하며 자신의 뜻과 정성과 목숨을 다했다. 그는 왕과 맺은 약속을 지키고자 이렇게 매일매일 자신의 온 마음과 힘을 다했다. 그러므로 첫 번째 사람은 결국 왕에게 약속을 지킬 수 있었고 왕도 그가 약속을 지킨 것을 보고 자신이 그와 맺었던 약속을 지켰다. 한편 두 번째 사람도 역시 산으로 올라가 곧고 큰 나무를 베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는 시간이 조금 지나자 힘도 많이 들고 바닷물 속에 들어가 놀고도 싶었다. 그러므로 나무를 베다 다시 바다로 내려가서 놀았다. 그러다 잠시 후 왕이 한 약속이 생각나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그러나 곧고 큰 나무를 베려니 힘들었다. 그러므로 죽어 쓰러진 나무들 가운데 하나를 골라 가지를 치고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잠시 후 다시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 재미있게 놀았다. 그러다 때가 되면 다시 산으로 올라가서 그 일을 대충하고 다시 물로 들어갔다. 그는 이런 식으로 일주일에 한 번은 빠지지 않고 꼭 산에 올라가서 마음 없이 그 일을 꼬박꼬박 행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렇게 생각했다. “나는 바다에서 건져준 왕의 은혜를 생각하며 가지를 치고 껍질을 벗기고 있으니 세상에서 가장 좋은 집을 얻을 거야! 또한 높은 자리에 앉는 왕자와 공주가 될 거야!” 그러다 나중에 그는 아예 아무런 일도 하지 않으면서도 계속 그렇게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 왕은 그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을 보고 자신도 그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으므로 그 약속을 지켰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생명의 약속이 담긴 율법과 계명을 자신이 택하신 아브라함을 통하여 유대민족에게 주셨다. 그런데 율법이라는 것은 사람이 자신의 마음과 몸과 뜻과 정성과 목숨을 다해야만 지킬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전의 율법시대에는 세상에서 나와 거룩에 애쓴 선지자들과 그들의 말을 듣고 순종한 자들만이 그것을 지켰다. 그리고 지켰기에 아버지의 약속대로 그리스도를 따라 부활하여 그 생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동일한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하여도 썩어질 육과 헛된 세상에 마음을 빼앗긴 다수는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으니 그들은 그 생명의 약속을 얻지 못했다.

 

     한편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의 후로는 십자가로 율법과 계명을 이룬 아들의 그 은혜를 유대인만이 아니요 다른 모든 이방민족들에게도 주셨다. 그런데 은혜라는 것도 율법처럼 자신의 마음과 몸과 뜻과 정성과 목숨을 다해야만 유지되며 더해질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시대에도 거듭난 후 세상에서 나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만이 은혜와 진리에 순종할 수 있다. 그리하여 흑암에서 나와 은혜 안에서 진리로 거룩하게 된 영혼들이 아버지의 약속대로 거룩한 육체를 입고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가 거듭나므로 비록 그 약속을 얻었다 할지라도 육과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면 은혜와 진리를 따르지도 순종치도 못하니 첫사랑을 잃은 자들은 영광스런 그 생명의 약속을 이루지 못한다. 

 

     그런데 사람은 마음이 없어도 심지어 마음이 다른 곳에 있어도 말과 행위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사데 교회시대의 믿는 자들은 아버지의 뜻에 자신의 마음과 믿음이 없이도 또한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오히려 육과 세상에 두고도 여러 가지 거룩한 행위들을 행했다. 예를 들어 그들은 마음은 세상에 있으나 주일이 되면 꼬박꼬박 아버지의 앞에 나와 십일조도하고 기도도하고 찬송도하며 예배를 드렸고 그들의 믿음은 이방인처럼 그저 육과 세상을 향한 것이었다. 그러나 마음 없는 행위들이 지속되다 보니 그들은 그런 행위가 곧 율법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마음과 믿음은 그 속에 없으되 오직 행위로 거룩한 구원을 이루고자 모든 것을 이루어갔다.

 

     사람은 또한 마음 없는 행위를 억지로 하다가 결국에는 아무런 행위도 하지 않다 그곳을 떠난다. 그러므로 그때에는 그리스도께서 은혜와 함께 주신 율법과 새계명을 아예 없애는 운동이 있었다. 그리하여 어떤 자들은 믿음과 행위는 별도라며 또한 누구나 믿음으로 행하라며 피를 흘리기까지 했다. 또한 오직 믿음만을 강조하며 그들의 행위는 죄악으로 가게 두기도 했다. 또한 육체는 세상의 쾌락을 즐기되 입으로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했다. 심지어 그리스도를 믿는다며 나는 지금 죄악에 있더라도 아버지나라의 아들딸이 되겠노라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이루신 율법의 근본정신은 자신의 마음과 몸과 뜻과 정성과 목숨을 다해 아버지를 사랑하며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는 것이요 또한 그와 같이 다른 영혼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거듭난 자는 은혜와 함께 율법과 새계명을 받았으니 그가 만일 십자가로 율법과 계명을 이루신 그리스도를 믿는 자라면 자신도 은혜와 진리를 따르며 그것을 이루는 것이 마땅하다. 그러므로 이러한 자가 어찌 자신과 아버지와 다른 영혼들에게 범죄하리요? 그는 오직 거룩에 애쓰는 그 과정에서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세상을 이기게 된다. 그리고 이겼기에 그리스도와 같은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