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위하여*

 

많은 사람들이 바닷물 안에 들어가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하지만 그 바닷물은 더러우니 사람들은 그 안에서 더러워졌다. 또한 그 안에서 놀던 사람들이 한 명씩 한 명씩 차례대로 물속에 빠져 죽어갔다. 그러나 사람들은 물 안에서 노는 게 너무나 재미있어서 사람이 죽어가는 것과 자신도 언젠가 죽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어떤 왕이 나무 지팡이를 들고 바닷가에 서서 그들이 더러워져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또한 그 안에 계속 있으면 나중에 죽는다고 말해주었다. 그러자 왕의 말을 듣고 반정도의 사람들이 물에서 나왔다. 그리고 나와서 물 안을 보니 그 안에 있을 때는 잘 몰랐으나 바닷물이 참으로 더럽다는 것을 깨달았다. 또한 그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한 명씩 죽어가고 있는 것도 보였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왕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왕을 따르며 왕을 위하여 어떤 일이든 다하리라고 마음을 먹었다. 이에 왕은 물에서 나온 사람들 가운데서 열세 명을 택하여 이렇게 말해주었다. “나는 너희들에게 깨끗한 물을 줄 테니 우선 더럽혀진 너희들의 몸을 깨끗이 씻어라. 그러면 너희들에게 깨끗한 옷을 입혀주겠노라. 또한 너희들처럼 바닷물에서 나온 사람들과 아직 나오지 않은 자들에게도 깨끗한 물과 내가 말한 것만 전해주어라. 그러면 그들 가운데 너희의 말을 들은 자들도 깨끗한 옷을 얻을 수 있겠노라.” 그 열세 명은 왕의 말을 듣고 난 후 자기가 받은 은혜를 기억하며 자기의 목숨까지 바쳐 오직 왕의 말대로만 행했다. 그러므로 물 밖으로 나온 다른 사람들도 오직 왕의 말대로만 행할 수 있었다. 또한 그 열세 명의 말을 들은 자들 가운데서도 목숨까지 바쳐 왕을 위해 충성하는 자들이 생겼다. 한편 어떤 사람은 그 열세 명을 본받아 자신도 그 열세 명처럼 했다. 하지만 때로는 자기의 생각과 경험도 전했다. 그러므로 왕이 주는 물과 말이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자기가 원하는 말과 행위를 하며 점점 더 바닷물 속으로 들어갔다. 또한 왕을 위해 목숨까지 바쳐 충성하는 자들의 수도 점점 더 적어졌다. 반면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바닷물 속에 있었으며 거기서 나온 적이 없었다. 그러므로 왕에게 깨끗한 물을 받은 적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도 많은 사람들에게 물을 주며 또한 많은 사람들을 모아놓고 왕의 말을 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사람들을 가만히 보니 그들은 바닷물을 좋아했다. 그러므로 그는 바닷물을 떠주며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해주었다. 그러니 그를 따르는 사람들은 왕이 주는 물이 무엇인지 몰랐으며 왕의 말도 무슨 뜻인지를 몰랐다. 또한 왕을 위하여 죽기까지 충성하는 것은 아예 생각하지도 않았으며 그저 물 안에서 노는 것만 즐겼다. 그들도 역시 앞에서 말하는 그 사람처럼 바닷물에서 나와 그 물을 받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예루살렘교회 때에는 그리스도께서 택하신 제자들이 사도가 되어서 오직 십자가의 복음만을 전하였으며 복음을 다 전한 후에는 그리스도처럼 아버지께로 피를 드리므로 끝까지 그리스도를 따라갔다. 그리고 에베소 교회시대가 시작되자 택함 받은 일곱 교회들에 거하는 사도의 직분을 가진 자들도 오직 복음만을 전하다 마지막에는 그들도 역시 피로 산 제사를 아버지께로 올려드렸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순교하며 전해준 복음을 이어받은 사도의 직분을 가진 자들 가운데는 복음도 전하며 또한 자기의 생각과 경험도 전한 자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고난과 영광의 복음이 조금씩 가리어졌다. 그리하여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계속적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은 가리워지며 사람의 생각과 경험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십자가의 복음을 깨닫지 못할수록 나타나는 결과가 있으니 자신을 산 제사로 드리기를 원치 않는다. 또한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자들이 자신의 안에 있는 선악의 죄와 세상과 싸워 이기는 자가 되려고 하기보다 오히려 세상에 마음을 빼앗겨 다시금 자신이 나온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으로 들어간다. 그러므로 복음이 가려질수록 피 흘리는 자들은 없어지고 오히려 세상으로 나가는 자가 더 많아진다. 그리하여 매 교회시대마다 피 흘리는 수는 적어지며 또한 복음만을 전하는 자들도 매우 적은 것이다. 

 

     한편 그리스도의 복음만을 전하는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을 보며 사도와 자칭사도를 분별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그 뜻과 계획에 따라 세우신 충성된 종들이 사도의 직분을 맡으면 그들은 오직 거룩만을 이루어가며 또한 오직 복음만을 전한다. 이때 양들은 세상을 따르지 아니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오직 아버지의 그 뜻만을 이루어가는 그들을 보며 사도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므로 초대교회든 교회시대든 충성된 종은 자기 스스로 사도라 말하지 아니하였고 오히려 양들에게 사도라 칭함을 얻었다.

 

     그러나 스스로 사도라 하는 자들은 거짓복음을 가지고 오히려 높은 자리에 앉는 것이 그들의 마음속에 있는 소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선 사람들이 듣고 싶어하는 육과 세상의 복음을 전한다. 이때 그 말이 자신의 마음에 아름답게 들리는 거짓된 양들이 그들에게 몰려든다. 그리하여 자칭 양들도 자칭사도들처럼 자신이 원하는 육과 세상의 것들을 얻게 되는 것이다. 

 

     결국 거짓된 목자들은 이 세상에서 오히려 육의 부요와 세상의 영광을 얻되 마지막에는 유황불 못의 가장 뜨거운 곳으로 들어가니 그것이 영원하다. 반면 진실된 종들은 핍박을 받으면서도 거룩만을 이루다 살과 피를 드리기까지 충성하되 마지막에는 그리스도와 같은 거룩한 육체를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영광을 취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자들이 사람과 이 세상의 짧은 영광을 구하고 있으니 그것은 그들이 피의 은혜를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요 혹은 거듭날 때 품었던 살고자 하는 마음1을 포기했거나 처음에 받은 그 은혜를 잊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교회시대와 마지막 때에 거짓선지자들과 진실된 종들의 수효는 얼마나 되는가? 온 세상에 교회라 하는 자들을 볼 때 진실된 한 종이 있다면 거짓선지자는 백 명이 거하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 환난 때가 되면 거짓선지자가 천명이면 진실된 종은 하나가 나온다. 하지만 자신이 진실한 목자를 따르고 있는지 혹은 자칭 목자를 따르고 있는지 염려하거나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것은 그들이 내는 영과 맺는 열매를 듣고 보면 분별하기가 너무나 쉽기 때문이요 그 쉬운 게 바로 자신의 마음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