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위하여*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게 된다. 그러므로 죄라는 것은 오직 자기를 위한 욕심에서 나오는 것이다. 또한 사람들이 불의를 행하는 이유는 그것을 행하므로 자기에게 유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불의한 일을 행하는 것도 죄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특히 믿는 자들은 죄와 불의를 범하고도 돌이키지 않고 오히려 이러한 말들을 한다. “나는 은혜를 얻었노라.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는도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니라.” 그러면서 죄와 불의를 계속 범하니 그것은 자기의 욕심과 유익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이방인도 아닌 믿는 자들이 그렇게 행하는 것을 보며 그들이 이 말씀을 통하여 돌이키길 원했다. 그러므로 바울이 로마교회의 믿는 자들과 또한 교회의 인도자들에게 전한 이 말씀의 안에는 그들의 잘못된 행위에 대한 지적과 더불어 책망이 담겨있다. 한가지 비유를 통해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는 이 말씀의 의미를 깨달을 수 있다. 

 

어떤 영혼이 거듭남의 은혜를 얻고 보니 너무나 감사했다. 그러므로 아버지를 위하여 일하고 싶어서 하늘에 계신 아버지와 이렇게 약속했다. “저는 이 세상의 그 어떤 일도 하지 않고 오직 사람들의 영혼을 불쌍히 여겨 생명의 말씀만을 전하겠습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제게 필요한 만큼을 주시어 저와 가족들로 하여금 굶어 죽지 않게 하실 것을 믿습니다.” 그는 이렇게 약속을 하고 말씀을 배웠다. 그리고 그 일을 행하려고 하는데 자신과 같은 일을 먼저 행하고 있던 자들이 가정을 돌며 흰 봉투를 받고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러므로 그는 저것은 옳지 않은 것이며 사람들에게 오히려 폐를 끼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처음에는 이렇게 참으로 신실하게 그 일을 하려고 했다. 그러나 그가 그 일을 하다 점점 배고픔과 굶주림이 다가오니 그것을 이기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결국 이 가정 저 가정을 두루 다니며 말씀도 주고 기도도 해주었다. 그러므로 이 가정 저 가정을 갈 때마다 그 식탁이 음식으로 가득 찼다. 또한 그에게 복이 있으리라 말을 하니 사람들이 흰 봉투를 내밀었다. 하지만 그는 처음에는 거절을 하고 두 번째 세 번째에도 거절을 했다. 그러나 네 번째부터는 거절하다 받아서 넣었다. 그랬더니 그 다음부터는 그가 거절할 때에 그들이 봉투가 두꺼우면 도둑맞거나 들고 다니기에 위험하다고 하며 그 양은 같거나 많되 점점 봉투의 두께를 좁혀서 그에게 건네주었다. 이제 그가 자신의 거하는 처소에 왔을 때 그 봉투를 지붕 위에다 숨겨 두었다. 그리고 자기의 아내와 또한 자기의 자녀들이 훔칠까 그것을 잠가두었다. 그가 이렇게 행하는 것이 하루 이틀 한 달 두 달 일 년 이 년이 갔다. 하지만 중간에 그는 스스로 ‘내가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그러나 그의 후손이 와서 이것저것이 필요하다는 말을 했다. 그때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지 않고 다시금 또 한 가정을 방문해 봉투를 가져와 그 후손에게 넘겨주었다. 그리고 그의 아내가 먹을 것이 없다 하니 역시 다른 가정에 가서 또다시 흰 봉투를 들고 와 그 식탁에다 음식이 가득 차게 했다. 그러다 그가 마지막 숨지기 전에 자기의 후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의 복은 오로지 아버지께로부터 왔으니 너희는 내 발자취를 따르라. 그리하면 너희들에게도 복이 있겠노라." 

 

     이와 같이 모든 사람들은 누가 무엇을 행하여 그가 큰 이익을 얻었다라고 하면 그 행한 것이 의로운 일이건 의롭지 아니하건 그 일을 행한다. 사람의 마음에 원수가 심은 그 선악의 뿌리로 인하여 자기의 욕심과 유익을 구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들은 자신을 의롭게 여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 일을 의롭다라고 칭하니 그것은 자신이 그 일을 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직 거듭나지 않은 이방인이라도 아버지께서 주신 양심이 그의 안에 있다. 한편 거듭난 자의 안에서는 그가 아버지의 뜻을 이루도록 도우시는 거룩하신 영께서 이것은 죄요 불의한 것이니 돌이키라고 책망하신다. 그러므로 그들이 그것을 행하다 이것은 많은 자들에게 유익이 없으며 또한 많은 자들에게 폐가되니 그 일은 행치 말자고 말한다. 이때 그것이 욕심에서 나온 죄요 불의한 것임을 아는 자들 가운데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은 자신을 돌이켜 그것을 멈추므로 그는 더 이상 죄에 거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 마음을 버리고 끝까지 자기의 욕심과 이익을 얻기 원하는 자는 그것이 죄요 옳지 못한 것임을 알면서도 다시 행한다. 또한 그것을 행치 말자고 자신과 다른 자들에게 말하고도 그것을 계속 행한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의 죄와 행위를 슬퍼하거나 애통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그 행위를 끝까지 의롭다고 하며 또한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고 하니 그것은 오로지 그의 안에 있는 그 죄의 인격으로 인한 것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것을 끝까지 원하니 그것을 멈추지 않고 말과 행위를 하여 자신의 이익을 더 얻는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신들은 은혜를 얻었으며 하나님이 자신들과 함께하며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라는 말들을 한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오로지 의로운 자와 함께 하시며 또한 가난한 자와 함께 하신다. 그럼에도 그들은 그 당연한 것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 자신의 욕심과 이익을 챙기며 그것이 은혜라 고백한다. 그러므로 그들이 을 원한다 하며 그 행위를 지속하는 것이 옳음 이뇨?’라는 바울의 지적과 책망이 바로 이 말씀의 뜻이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