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는 아들을 통하여 이 첫째 하늘을 선하고 깨끗하게 창조하실 때 이 셋째 별의 그 많은 바닷물에다 소금을 은혜로 넣어두셨다. 그러므로 누구나 몸에 필요한 이 소금을 가지고 있으며 창세 때부터 지금까지 육의 음식에 재료로 쓰이고 있다. 

 

     소금이 어떻게 사람의 손까지 오는지 알면 또한 짠맛을 잃은 소금을 유대인들이 어떻게 처리하는지 들여다보면 믿는 자들이 이 세상의 소금이라는 말씀을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소금은 바닷물에서 나오니 바닷물에서 나온 후에는 깨끗이 말린 후 그것을 음식에 넣어 그 음식을 입맛에 맞춘다. 그러므로 음식이 깨끗하고 맛이 있으려면 깨끗한 바닷물을 깨끗하게 말려야 하며 또한 그 말린 것에 반드시 짠맛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만일 더러운 바닷물을 말리거나 깨끗한 물이라도 더럽게 말리면 짜지 아니하고 쓰니 음식을 버리게 된다. 또한 물을 말렸으되 그것이 짠맛을 내지 아니하면 다른 사람들이 그 맛을 잃은 소금을 통해 헛수고하지 않도록 음식을 만드는 사람은 그것을 깨끗한 물에 던지지 아니하고 더러운 물에다 던진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너희는 소금이라고 말씀하신 것에는 이러한 의미가 담겨 있다.

 

“나는 너희를 깨끗한 물에서 택하여 말렸으니 사람들이 음식에 소금을 넣는 것처럼 사람들도 그 생명에 이르도록 그들의 영혼 속에다 그 진리를 전하여라. 그러나 전하지 못하는 자는 짠맛을 잃은 소금이 더러운 물로 들어가듯 오히려 물로 들어가니 그는 이 불의하고 악한 세상과 함께 거하게 되는 것이니라.”  

 

     그런데 이 교회시대의 마지막 때에도 이 말씀은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진리를 전하지 않는 자는 세상에 거하고 있다. 또한 사람을 의롭고 거룩하게 하는 진리를 아무리 전해주어도 자신이 의롭고 깨끗하게 되는 것을 원치 않는 자는 이 세상에서 나와 진리를 따르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이 이 세상에 있으니 그들은 자신의 몸도 이끌고 오히려 불의하고 죄악된 그 더러운 세상의 물로 더 깊이 빠져간다. 

 

     한편 깨끗한 바닷물을 말리지 아니하고 더러운 물을 말리거나 깨끗한 것을 자신이 더럽게 말린 자는 전할 수 있는 거룩한 진리가 없으니 그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전해주리요? 그러므로 그는 오로지 이 세상 것들을 보고 이것이 진리라고 하며 또한 자신의 생각과 의와 계획을 아버지의 뜻이라고 하며 전하게 된다. 이때 자신이 더럽혀지는 것을 보면서도 그 세상 것들을 원하는 자들은 쓴맛을 전하는 자들의 그 말을 듣고 따른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 아들인 그리스도께서는 그 짠맛을 잃은 자들과 쓴맛을 전하는 자들은 모두다 다 더러운 물로 내어 던지시니 그들은 이 세상에 마음을 두고 이 세상과 함께 거한다. 그리고 그렇게 세상밖에 버려져 이 세상과 사람들에게 밟힌다. 하지만 유전무죄요 무전유죄니 외모지상주의니 이 거짓되고 더러운 세상이니 하면서도 세상에서 나오지는 않는다. 그리하여 마지막 때에 이 세상이 불로 멸망을 당할 때는 그들도 자신이 택한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과 함께 그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깨끗한 소금의 짠맛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오직 사람을 씻어 거룩케 하는 진리만을 전한다. 그리고 진리가 있는 자가 진리를 전할 때 거듭남의 은혜를 얻은 자들 가운데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의롭고 깨끗한 생명을 원한다. 그러므로 그는 이 세상에서 나와 그리스도를 따르며 자신의 안에 있는 그 선악의 죄와 싸운다. 그리하여 세상에서 밟혀지지 않고 오히려 죄와 이 세상을 이긴 그가 그 거룩한 육체의 생명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