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이세벨

 

그리스도의 한 몸에 거하는 거룩하고 신령한 지체들에게 아버지의 생명의 말씀거룩한 진리를 전하는 자들은 자신이 만일 이세벨이 되지 않으려면 그리스도께서 두아디라교회에 전하셨던 이 말씀을 잘 듣고 잘 기억하며 자신을 늘 돌아보고 돌이켜야 한다. 또한 한 몸의 지체들도 이 말씀을 잘 듣고 깨달을 때 사람들의 영혼을 꾀어서 음행하도록 인도하는 목자들을 용납하지 않고 오히려 끊어낼 수 있다.

 

아버지의 거룩한 종들은 남자요 셋째하늘에서 자기의 욕심과 영광을 얻기 위해 처음부터 거짓말을 하며 선악의 죄를 창조하고도 끝까지 돌이키지 않아 쫓겨난 그 원수의 종들은 여자이니 이 땅에서 아버지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종들도 남자요 타락한 원수의 말을 전하는 종들은 여자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종들은 오직 남자기에 겉으로 보기에는 허물이 많고 또한 말주변도 없어서 오직 십자가의 고난과 영광의 복음을 담대히 전한 후 마지막에는 오히려 그 몸을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향기로운 생축제물로서 올려드린다. 그러나 원수의 종들은 여자이므로 겉으로는 매우 아름답고 그들의 말은 사람의 귀를 매우 미혹한다. 즉 말씀과 예수의 이름을 이용해 사람들을 이끌어 자기의 육적인 유익과 세상의 영광을 얻으며 원수에게 그 영혼들을 바치니 그의 겉모습은 점점 더 아름다워진다. 게다가 원수의 종들은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있는 아버지의 종들을 핍박하되 원수의 종은 계속적으로 사랑하며 따라간다.

 

그런데 이런 원수의 종들은 구약에도 있었고 그리스도의 당시에도 있었고 십자가 후로 일곱교회시대에도 있었다. 또한 이 마지막 때에는 아름답고 말도 잘하는 종들이 여기저기에 더욱더 많이 거하고 있으니 그 여자들의 말이 아버지의 종들의 말보다 더욱더 가슴에 와 닿는다. 그러나 여자들의 말은 그들이 따라가고 있는 원수처럼 어제나 오늘이나 항상 동일하지 못하여 사람과 상황에 따라 늘 변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유익과 영광을 기준으로 늘 바꿀 수 밖에 없는 그들의 말을 잘 듣고 말씀과 비교해보면 그가 세상과의 음행으로 이끄는 이세벨인지 구별할 수 있으며 또한 여자를 보낸 간교한 원수의 말에 속지 않을 수 있다.

 

이러한 이세벨의 영은 언제나 믿는 자들의 안에 있었으나 두아디라교회에는 실제로 여자의 성별을 가진 목자가 있었으니 그때부터 원수는 교회 안에 있는 여자들을 통해 교회를 쉽게 넘어뜨리곤 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것을 깨달은 후에 교회 안에서 여자들을 향해 잠잠 하고 조용히 남편에게 배우라는 그리스도의 명령을 미리 전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아버지와 아들을 섬긴다는 종들이 왜 그리 육과 세상으로 쉽게 나가며 왜 그리 세상과 사람과 타협을 쉽게 하는가? 또한 아버지께서는 전지전능하시어 그것을 막으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것을 허용하시는가? 또한 그들은 왜 돌이키는 것이 어려운가? 한 가지 비유를 통해 그 답을 얻을 수 있으니 아버지의 종이라는 자들이 깨달은바 자신을 돌아보고 돌이키면 첫사랑을 회복하는 기회를 얻게 된다.

 

아버지께서는 남자를 붙드시고 계시되 원수는 여자를 붙들고 있으니 태초의 에덴동산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멀리 보는 남자는 아버지의 붙들림을 받아 오직 십자가를 바라보되 원수는 오늘만을 바라보는 여자들을 붙들고 있기에 남자가 바라보는 그 십자가를 보니 험악하며 또한 그것을 오직 고통으로만 본다. 그러므로 원수는 아버지의 종들 앞에 아름다운 여자를 지나가게 함으로써 남자가 십자가에서 여자로 그 눈동자를 돌리게 한다. 즉 어린아이도 이해할 수 있는 말로 하면 이 마지막 때에 한 영혼이라도 아버지를 위해 거룩하고 신령하게 지어져 가도록 인도하기보다는 대부분의 종이라는 자들이 오히려 교회성장이나 부흥을 소원하며 이미 그것을 이룬 그 아름다운 여자 종들을 찾아가 그 방법들을 구하며 배우고 있다.

 

그러나 아름답고 영광스럽게 보이는 여자가 자신의 앞으로 지나갈 때 복된 자는 그 여자로부터 다시금 눈을 십자가로 돌리며 그 마음을 아버지께로 더욱더 내어 놓는다. 하지만 어리석은 남자는 자신의 몸을 눈이 가는 대로 틀며 원수가 붙들고 있는 그 여자와 그가 치장한 아름다움과 영광을 보되 아버지께서는 남자의 그 마음을 아시기에 남자를 여자에게로 보내주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 남자는 여자에게 가서 잠시 동안은 만족하지만 나중에는 결국 영혼의 만족을 얻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다시금 십자가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나는 이미 때가 늦었도다.’라고 생각하기에 그 남자는 오직 원수의 밥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여자의 아름다움에 눈과 마음을 빼앗긴 어리석은 종들이 깨달아야 할 것이 있으니 첫째 자기의 분깃을 가지고 세상으로 나가 창녀와 허랑방탕한 둘째가 돌아왔을 때 그 아비가 내칠 것이라는 생각에서 돌이키고 받아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가질 때 오히려 독생자까지 십자가에 내어주신 아버지의 그 마음과 사랑을 이해하는 자다. 둘째 주님의 거룩한 종이라는 자가 영원한 생명과 사망의 심판을 내리시고자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를 맞이하도록 오직 한 영혼이라도 아버지의 뜻으로 이끌지 못한다면 수백 수천 수만의 영혼들을 이끈다 할지라도 그들에게 무슨 생명의 유익이 있으리요? 또한 자신의 온 마음과 정성과 뜻을 다하다 마지막에 결국 목숨까지 바치는 것이 목자임을 목자장을 보면 깨달을 수 있으니 그리스도께서는 완전한 사람이시며 동시에 하나님이셨어도 이 땅에서 오로지 12을 데리고 목회하셨으며 그 중에 한 명은 배신했으나 교회시대마다 십자가로 돌아온 그 소수의 피로 인해 비밀의 영광의 복음이 이어져오고 있다.

 

“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에 내가 여호와의 선지자 중에 일백 인을 오십 인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로 먹인 일이 내 주께 들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또 이르라. 무릇 그가 이스라엘 자손이든지 이스라엘에 우거한 타국인이든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거든 반드시 죽이되 그 지방 사람이 돌로 칠 것이요 나도 그 사람에게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이는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어서 내 성소를 더럽히고 내 성호를 욕되게 하였음이라. 그가 그 자식을 몰렉에게 주는 것을 그 지방 사람이 못본체하고 그를 죽이지 아니하면 내가 그 사람과 그 권속에게 진노하여 그와 무릇 그를 본받아 몰렉을 음란히 섬기는 모든 사람을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라. 음란하듯 신접한 자와 박수를 추종하는 자에게는 내가 진노하여 그를 그 백성 중에서 끊으리니 너희는 스스로 깨끗케 하여 거룩할지어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또 네가 나를 위하여 낳은 네 자녀를 가져 그들에게 드려 제물을 삼아 불살랐느니라. 네가 너의 음행을 작은 일로 여겨서 나의 자녀들을 죽여 우상에게 붙여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였느냐”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 주리라”

“돌아와서 고한대 예후가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그 종 디셉 사람 엘리야로 말씀하신 바라 이르시기를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고기를 먹을지라”

“너희 딸들이 행음하며 너희 며느리들이 간음하여도 내가 벌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남자들도 창기와 함께 나가며 음부와 함께 희생을 드림이니라. 깨닫지 못하는 백성은 패망하리라”

“이 네 동생은 죽었다가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얻었기로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니라”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취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