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첫째 하늘에서는 소를 기를 때 들판의 풀도 조금은 뜯어먹게 하지만 대부분 인간의 욕심이 듬뿍 들어간 사료를 준다. 그리고 더욱더 욕심을 품은 자들은 너무 늙어서 팔지 못하는 짐승들을 사료로 만든다. 그리고 그것을 소와 돼지와 닭 같은 짐승에게 먹인 후 사람에게 먹으라고 준다. 심지어 알을 많이 낳도록 일부러 스트레스를 주기도 하고 약한 병아리는 태어나자마자 죽인다. 

또한 짐승들을 키울 때 자기의 유익을 위해 짐승들에게 크게 하는 약을 먹이거나 음식을 강제로 먹여서 키운다. 젖소의 경우 우유를 짜내면 그것이 오래가도록 또한 고소한 맛을 더하기 위하여 이리저리 다른 물과 또한 다른 기름진 것과 섞는다. 그리고 그것을 신선한 목장에서 온 우유라며 아침마다 마시라고 한다. 이처럼 이 첫째 하늘의 소젖 안에는 유익되는 것이 참으로 적은 부분만 들어있으며 그로 인해 사람도 결국 적은 부분의 유익만을 그 소젖을 통해 얻는다. 동시에 많은 해로움도 얻는다. 

또한 짐승들이 피 흘리며 고통 받는 것을 보며 기쁨과 즐거움을 얻기 위해 짐승끼리 싸움을 시키는 자들도 있다. 지금은 마지막 때이니 사람도 철조망에 가두어놓고 짐승처럼 서로 싸우라고 시키면 그들은 서로를 때리고 차고 꺾고 조여서 쓰러뜨리고자 애쓰되 그들은 자신이 지금 누구에 의해 무엇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아는 것은 오로지 돈과 의자다. 또한 짐승들을 작은 곳에 가두어 기르되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며 발을 펴고 눕지도 못하게 하는 자들도 있다. 그러므로 사육하는 짐승도 눕거나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주라고 법으로 정해서 어린애처럼 일러준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셋째 하늘에 두신 짐승들은 사람이 에덴에서 그 죄로 인하여 타락하기 전과 또한 원수가 더럽히기 전과 같으니 오직 선하고 의롭다. 그러므로 짐승들은 서로를 피 흘리지 않는다. 사료나 사육도 없다. 구체적으로 셋째 하늘의 육지와 하늘을 다니는 짐승들은 모두다 시온산과 작은 산에서 생수를 먹고 자라는 그 깨끗한 풀과 채소를 뜯어먹으며 자유와 안식을 누린다. 그리고 물의 짐승들은 그 깨끗한 네 강의 안에서 마음껏 헤엄쳐 다니며 그것을 누린다. 

셋째 하늘은 이렇게 깨끗함과 거룩함이 완전하며 또한 모든 짐승들도 그러하니 그 어떤 음식도 상하거나 썩지 않는다. 예를 들어 우유가 소에서 바로 나와 그 어느 과정도 거치지 아니하고 거룩한 자녀들의 앞에 오니 그 젖소의 영양이 그 거룩한 육으로 온전히 다 들어간다. 게다가 셋째 하늘의 소와 양은 그 깨끗한 풀과 채소와 또한 생수와 더불어 마시는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그러므로 그 두 짐승은 늘 생수와 더불어 포도주도 마신다. 

그러나 셋째 하늘의 짐승들이 이렇게 자유와 안식이 충만할지라도 이 첫째 하늘에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고난 받으며 아버지의 뜻을 이룬 사람과는 함께 앉아 먹지 못한다. 그것은 그들이 아버지께로 창조를 받았으되 그가 짐승으로 창조를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을 창조한 그 사람의 종이되 사람만을 섬기고 사람에게 순종하므로 그가 사랑을 충만하게 얻는다. 

이와 같이 비인격체가 인격체에게 사랑을 넘치도록 얻는 것은 오직 그의 품 안에 있는 것이요 이것은 인격체들간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즉 사람도 자신에게 생명을 주신 아버지와 아들께 기쁨이 되며 사랑을 풍성히 얻는 것은 사랑의 많으신 아버지의 품에 있는 것이 아니요 오히려 그 사람의 품에 있다. 그러므로 말씀에 순종하며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애쓰는 자는 아버지께로 기쁨이 되며 아버지의 사랑을 늘 풍성히 받는다. 그리하여 아버지께 기쁨이 되며 사랑을 받은 그가 변치 않는 기쁨과 즐거움을 늘 마음에 누리며 그 험한 십자가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