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4:1(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그리스도께서는 지금까지 요한에게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의 환상을 보여주셨다. 일곱 교회시대의 해야 할 일과 피해야 될 일들을 환상을 통해 보여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각 교회시대에 택함 받은 일곱 교회의 비밀도 들어있다.
그런데 그 일곱 교회시대가 마쳐지면 이 세상에 마지막 때가 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그 마지막 때에 다시 오시어 이 땅에 낙원을 이루신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내려 오시기전에 원수가 일으키는 대환난이 있다. 그리고 그 마지막 때의 환난가운데서 여러 가지 일들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마지막 때의 일들을 요한에게 보여주시길 원하셨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씀을 주신다. 계4:1을 보자.
그리스도께서는 요한에게 그 마지막 때의 일들을 보이시고자 이리 올라오라고 하셨다. 그런데 그 음성은 처음에 들었던 그 나팔소리 같은 음성과 같았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일곱 교회의 환상을 자기의 종을 통해 알려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때의 환상도 자신을 섬기는 종을 통해 보이시고 들려주신 것이다.
마지막 때에 마땅히 될 일들의 순서를 그림을 통해 알 수 있다. (그림)
우선 일곱 교회시대가운데서 라오디게아교회시대가 마쳐진다. 그런데 라오디게아는 교회시대의 마지막이다. 그러므로 라오디게아 교회시대가 마쳐지면 교회시대는 끝이 난다. 즉 더 이상 교회시대가 아니요 환난시대가 시작되는 것이다.
원수는 영혼들을 추수하기 위해 마지막 때에 두 번의 환난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두 번의 환난은 서로 다른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을 구분하기 위해 첫 번째는 가짜 환난이요 두 번째는 진짜 환난이라고 한다.
그리고 그 두 번의 환난을 일으키는 두 짐승의 이름도 다르다. 그러므로 7년 동안 가짜 환난을 일으키는 짐승을 적그리스도라고 한다. 그리고 이어서 또다시 7년 동안 진짜 환난을 일으키는 짐승은 가짜 그리스도라고 한다.
적그리스도는 그 가짜 환난의 중반에 이 땅에 마지막 전쟁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 삼차세계대전으로 인하여 이 땅에 거하는 사람들 가운데 사분의 삼이 사망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살고자하는 마음이 있는 영혼들은 그 전쟁의 환난가운데서 지켜주신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둘째하늘과 첫째하늘의 문을 열고 나오신다. 그리고 그 가짜 환난의 끝에 신령한 신부들을 공중으로 들어올리신다. 그러므로 정결한 영혼들은 진짜 환난을 보지 않고 공중으로 휴거를 당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지금부터 이러한 마지막 때의 일들을 알려주기 원하신다. 즉 교회시대가 끝나고 자신이 이 땅에 내려오기 전에 어떤 일들이 있을 지를 알리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이 마지막 때의 일들을 교회에게 알리시는 목적이 있다. 그것은 바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영혼에게 생명의 길을 보이시기 위해서이다. 또한 자신의 사랑하시는 자들로 하여금 신랑을 맞이할 수 있는 정결한 신부로 준비시키시기 위해서이다.
그러므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거룩에 애쓰는 영혼들은 원수가 일으키는 환난들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환난의 때를 기다린다. 그 두 환난의 사이에 공중으로 들림 받아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떤 자는 그 진짜 환난에서 피의 제사를 드리고 공중으로 끌려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 마지막 때에 둘째하늘과 이 첫째하늘을 합치시는 순간이 있다. 그리고 두 하늘을 합치기 바로 전에 자신의 신령한 신부들을 맞이하신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때에 어떤 일이 있을지를 알려주신다. 계4;1을 보자.
이 말씀에서 ‘이 일’이라는 것은 요한이 본 일곱 교회의 환상을 뜻한다. 그리고 이 일 후라고 하였으니 교회시대가 끝났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그때에 이 땅에는 환난이 시작되고 있다. 즉 적그리스도가 일으키는 가짜 환난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땅에서 환난이 시작되는 그때에 하늘에서는 오히려 문이 열린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하늘에 열린 그 문을 요한에게 자세히 보여 주셨다. 그때에 하늘의 문은 이러한 순서로 열리게 된다.
그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둘째하늘과 이 첫째하늘의 문을 여신다. 자기의 몸이 될 그 신령한 신부들을 데리러 오시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혼자 오시는 것이 아니요 아버지와 함께 오신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셋째하늘과 둘째하늘의 가로막고 있는 문을 여신다. 그리고 아들에게 말씀하시길 시간이 다됐다고 하신다. 그리고 영이신 아버지께서는 그 아들의 몸으로 들어오신다.
이때 아버지의 말씀을 받으신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종들을 부르신다. 그러므로 종들은 둘째하늘과 이 첫째하늘의 문을 연다. 그리고 아버지와 함께 계신 그리스도께서는 그 종들을 데리고 내려오시는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의 신랑은 자기와 혼인할 여자가 숫처녀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신부는 밤에도 등불을 들고 자기의 신랑만을 기다린다. 그러므로 둘째하늘과 이 첫째하늘의 문을 여신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의 신부를 부르신다. 그러면 종들이 그 정결하고 흠 없는 신부들을 이 땅에서 데리고 올라가는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신부를 데리고 올라가는 것은 그리스도의 종이다. 그러므로 그 종들은 그리스도를 심기는 종들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 종이 있듯이 자녀 될 자들에게도 종이 있다. 그리고 그 종들이 교회가 자녀 되어 후사가 되기까지 섬긴다.
아버지께서는 구원 얻을 후사들에게 이렇게 종을 허락하신다. 예를 들어 한 종이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다.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그리스도와 같은 아들딸들에게는 열 종을 주신다. 그러므로 장자의 종들이 그리스도의 종들보다 더 많은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신부를 맞이하면 그 수가 달라진다. 즉 그 신부들의 종들도 그리스도의 종이 된다. 그 이유는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처음에는 한 종의 섬김을 받는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신부의 종까지 합치면 백 종이 된다.
이처럼 그리스도를 따르며 섬기는 종의 수는 실제로는 적은 수이다. 하지만 신부를 맞이한 후에는 더 많은 종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며 섬기게 되는 것이다.
또한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신랑은 누구나 자기의 신부를 맞이하는 날 참으로 기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도 밤에 등불을 들고 있던 자들을 보며 매우 기뻐하신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교회를 섬긴 그 종들도 함께 기뻐한다. 또한 아버지도 아들 안에 계시니 아버지께서도 그 신부를 보시며 매우 만족하신다.
신부를 맞은 유대인의 남자는 많은 자들을 불러 혼인잔치를 연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도 어린양의 혼인잔치를 공중에다 베푸신다. 둘째하늘과 이 첫째하늘이 합쳐진 후 그 안에 있는 낙원에 베푸시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께서는 그 혼인잔치의 자리에서 정 가운데 앉으신다. 그러면 각자의 자리를 얻은 신부들은 그 신랑을 둘러싼다. 그리고 종들은 그 혼인잔치의 모든 시중을 들기 시작한다. 그러므로 그 잔치는 7년 동안 진행되며 기쁨이 충만해진다.
이와 같이 교회시대가 끝나면 하늘 문이 열리고 기쁨과 즐거움의 은혜로 충만해진다. 그리고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거룩에 애쓴 자들이 그 열린 하늘 문으로 들어간다. 말씀의 갈급함을 가지고 빛을 따른 영혼과 깨어있던 영혼들도 그 열린 하늘 문으로 들어간다.
그리하여 하늘에 소망을 두고 아버지의 뜻을 이룬 영혼들은 모두다 하늘의 기쁨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반대로 이 땅에는 가짜 그리스도가 일으킨 진짜 환난이 시작된다. 그러므로 육과 세상에 마음을 두고 원수를 따른 자들은 그 대환난에 참여하게 된다. 즉 원수가 베풀어놓은 그 사망과 고통의 은혜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마지막 라오디게아교회가 끝나는 시점에서부터 하늘의 문이 열린다. 그리고 그 문이 열리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신부들을 데리러 오시기 위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교회시대의 끝에 있는 사람들은 누구나 육과 세상에서 마음을 거둘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의 뜻에 애쓰며 그리스도를 맞이하고자 애쓸 것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오히려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즉 육의 욕심을 취하며 더욱더 세상으로 빠져든다. 그 이유는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오심을 깨닫지 못하도록 원수가 사람들의 눈을 가리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하여 그 마지막 때를 더욱더 악하게 하기 때문이다.
한 가지 비유를 통해 원수가 어떤 자들의 눈을 가리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비유를 통해 어떻게 악하게 하는 지도 깨달을 수 있다. 동시에 원수에게 속지 않을 수 있는 마음도 깨달을 수 있다.
어떤 사람이 먹음직하고 보암직한 과일을 먹고 싶었다. 그리고 어떤 두 과수원 주인이 그의 마음을 알았다. 그런데 한 주인은 아주 깨끗하고 풍성한 과수원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므로 그 주인은 자기의 과수원에서 깨끗한 과일 한 개를 땄다. 그리고 자기의 과수원으로 가는 지도를 준비해서 하얀 봉투에 넣었다. 반면 다른 주인의 과수원은 더러웠다. 그리고 벌레가 많이 먹고 썩은 과일들밖에 없었다. 그러므로 그 주인은 더러운 과일들을 따서 예쁜 바구니에 담았다. 그러나 그 과일바구니를 아름답게 포장했다. 이제 그 두 주인은 과일을 먹고 싶은 그 사람에게 찾아갔다. 그리고 깨끗한 과수원의 주인은 그 하얀 봉투와 깨끗한 과일을 보여주며 이런 말을 해주었다. “나의 과수원에는 이렇게 깨끗한 과일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그 과수원에 가면 그 과수원에 있는 나무들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이번에는 더러운 과수원의 주인이 아름다운 과일바구니를 그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의 과수원에는 맛있는 과일들이 있소. 나를 따라오면 그것을 모두 다 주겠소!” 두 주인의 말을 듣자 그는 이렇게 물었다. “내가 어떻게 하면 당신들의 과일을 가질 수 있소!” 이에 깨끗한 과수원의 주인은 의롭고 정직한 땀을 흘려야 한다고 했다. 반면 더러운 과수원의 주인은 자기의 이익만을 생각하는 욕심이 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의 눈에는 더러운 과수원주인의 얼굴이 점점 더 잘 보였다. 그러나 깨끗한 과수원주인의 얼굴은 점점 멀어지더니 전혀 보이지 않았다.
이와 같이 이 마지막 때의 사람들은 오직 자기 자신만을 위한 욕심을 구한다. 그리고 원수는 자신과 같은 마음을 품은 자들의 그 눈과 귀를 가린다. 게다가 그 썩어질 육의 욕심에 기쁨과 즐거움을 더해준다. 또한 사망으로 들어가는 이 세상을 더욱더 즐길만한 곳으로 만든다. 즉 사람들에게 원수자신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때 욕심으로 눈과 귀가 가려진 자들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는 어떤 일도 다한다. 또한 그 육의 욕심을 취하며 그것을 죄로 생각하지 않는다. 죄를 범하며 오히려 기쁨과 낙으로 여긴다. 그리고 불의를 의로 보며 자기의 이익을 위해 마음껏 불의를 행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 불의하고 악한 세상을 참으로 아름답고 즐길만한 곳으로 본다. 그리하여 악해진 그들의 눈에는 오직 이 세상과 그 악한 원수만이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그 가짜 환난가운데 있는 믿는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그때는 적그리스도가 움직이는 시대이다. 그러므로 이방인과 같이 육과 세상에 마음이 있는 교회도 무능력하게 된다. 즉 육의 욕심을 가지고 이 세상으로 더욱더 빠져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악한 눈에도 신랑이신 그리스도는 보이지 않게 된다. 그리고 신부를 데려가고자 하늘의 문을 여시는 그리스도는 더더욱 보지 못한다. 악한 자의 눈에는 악한 자가 선한 자의 눈에는 선한 자가 보이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원수는 육과 세상에 마음이 있는 자는 그가 누구든지 간에 그의 눈과 귀를 가린다. 그러므로 그는 진리를 보고도 보지 못하고 듣고도 듣지 못한다. 오히려 이 악한 세상가운데 빠져 원수와 함께 악을 행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선악을 따르며 그것을 돌이키지 않는 자에게는 자신을 나타내지 않으신다. 그러므로 그는 그리스도도 보지 못하고 하늘 문이 열리는 것도 보지 못한다. 오직 이 세상만을 보며 이 세상의 뒤에 있는 그 원수만을 본다. 그리하여 원수와 이 세상을 본 그는 원수를 따라 그 사망으로 내려가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 마지막 때의 모든 자들에게 살길을 내어주셨다. 그리고 그 살길은 오직 말씀을 비교해서 말씀을 붙들면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그 가짜 환난이 시작되며 적그리스도가 나타난다. 그리고 그와 함께 많은 거짓 예언하는 자들과 음녀교회가 역사한다. 그리고 그들을 따르는 자들의 수효가 참으로 많다. 게다가 아버지께로부터 떠나 전통 안에 있는 지체들도 수없이 많다.
그러므로 교회시대의 라오디게아의 일곱 교회는 회개와 그리스도의 천국과 셋째하늘의 복음만을 선포한다. 하지만 그 처음의 환난 가운데서는 회개와 심판을 전한다. 또한 육과 세상으로 향한 마음을 돌이키라고 전한다. 그리고 대환난 가운데서는 이러한 환난의 복음을 공개적으로 선포한다.
그러나 그들은 그 마음을 돌이키지 않는다. 오히려 아버지께서 택하신 교회들을 더욱더 핍박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 기간이 끝날 때에는 그 진실된 일곱 교회를 많은 자들이 미워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 적은 수는 마음을 돌이켜 진실한 교회를 찾는다. 그러면 일곱 교회는 그들을 맞이하여 오직 진리를 전해준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이 들은 진리를 말씀과 비교를 한다. 그리고 그 영혼은 자기의 생명을 위하여 전통과 진리가운데서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뿐만 아니라 진실한 교회를 찾은 자들은 택함 받은 교회의 거룩한 모습도 보게 된다. 예를 들어 진실한 교회들은 오직 아버지의 뜻인 거룩에만 애를 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자신과 다른 자들의 거룩을 위하여 온 마음과 힘을 다해 부르짖어 기도한다.
이때 어떤 자는 그 모습을 보고 부르짖으라고 기록된 그 말씀을 기억한다. 즉 말씀과 그들의 거룩한 모습을 비교하는 것이다. 그리고 말씀을 붙든다. 그러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씀을 붙든 그들은 진실한 자들과 함께 거하게 된다.
그러나 살고자하는 마음이 없는 자는 부르짖는 모습을 똑같이 보고도 말씀을 기억하지 못한다. 오히려 ‘왜 저렇게 크게 부르짖지? 하나님이 귀가 먹었나?’라는 생각을 한다. 그러므로 말씀을 붙들지 않고 보고도 믿지 못한 그들은 진실된 교회에서 나오게 된다.
진실한 교회는 또한 공동체가 모였을 때 여자지체들이 잠잠하다. 또한 자신의 남편을 따르며 마음을 다해 순종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여자가 남편에게 순종하며 교회에서도 순종하는 거룩한 여자의 모습을 보게 된다.
이때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말하는 것이 허락되지 않았으니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말씀을 기억한다. 그리고 남편에게 순종하라는 말씀도 기억한다. 그리고 말씀과 비교한 후 말씀에 순종하는 그들이 진실된 자들임을 깨닫는다. 그리하여 그들도 그 거룩한 자들과 함께 거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자는 살고자하는 마음이 없다. 그러므로 진실된 교회에서 여자지체가 순종하는 모습을 똑같이 보고도 말씀을 기억하지 못한다. 오히려 ‘여자라고 어떻게 순종만하나? 여자는 입이 없나?’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거룩하지 못하니 거룩한 자들을 떠나 거룩하지 못한 자들과 함께 거하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살고자하는 마음이 없는 자는 말씀을 붙들지 않는다. 또한 진리를 듣고도 순종하는 자들을 보고도 말씀을 믿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도 순종치 않는 그들에게는 있는 은혜도 거두신다.
이때 그들은 은혜를 잊었으니 이 세상으로 더 깊이 빠져들어 간다. 그리고 그 환난가운데서 방황하다 사망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반면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는 오직 말씀을 붙든다. 그리고 그가 믿음이 연약하면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한 자들의 모습도 보여주신다. 그러므로 그 순종하는 자들의 빛을 보고 믿은 그들도 나중에는 말씀을 붙들게 되는 것이다.
이때 그리스도께서도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순종하는 자들을 붙들어주신다. 그리고 그들에게 더욱더 은혜를 부어주신다.
그러므로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진 자들은 그 환난가운데서도 옳은 길로 돌아오게 된다. 그리고 다시는 원수와 이 세상과 전통에 속지 않는다. 그리하여 그들도 그 열린 하늘 문으로 들어가 거룩한 자들과 그 기쁨을 함께 나누게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