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흔히 외적으로 잘난체하며 건방진 태도를 가진 사람에 대해 교만하게 여긴다. 반면 경우에 맞게 존댓말을 잘 사용하거나 인사할 때 고개를 많이 숙이거나 그의 입술로 늘 '예 예'하는 사람은 겸손하게 본다. 그러므로 교만한 사람은 자신을 낮추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늘 거부한다. 물론 그의 입술과 태도는 상대방의 말을 듣는 것 같지만 그의 생각은 상대방을 비판하고 있으며 자신이 상대보다 위에 있다는 마음을 품고 자신이 원하는 길을 이미 정했다. 즉 사람은 자신이 정한 기준과 생각에 따라 말과 행위를 하면 교만해질 수 있으니 만일 겸손해지기를 원한다면 겉으로 나오는 말과 행위를 바꾸려고 애쓰기보다는 그것이 과연 어떤 마음에서 나오는지를 스스로 돌아보고 교만한 속마음을 돌이키는 것이 순서다.

 

하지만 죽기까지 기다리며 순종하신 온유하고 겸손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성소로 들어가 아버지의 얼굴과 영광을 보며 사랑과 기쁨과 평화를 얻기 원하는 영혼은 교만을 사람과의 관계에서 깨닫기 보다는 말씀과의 에서 깨달아야 한다. 그러므로 사람이 만일 아버지와 말씀과 관계할 때 말씀을 판단하면 그는 아버지보다 더 위에 있는 자이니 '교만한 영혼'이다. 그리하여 교만한 자는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순종치 아니한다. 게다가 불의와 죄로 가득한 자신을 의롭게 여기니 말씀을 보고 듣고는 쓰레기 같은 글로 여긴다.

 

예를 들어 아버지께서는 여자에게 남편에게 순종하며 따르라는 가장 큰 계명을 주셨다. 그러나 어떤 여자는 끝까지 자신을 더 지혜롭게 여기며 목 위에 있는 머리를 자기의 마음과 생각대로 움직인다. 한편 남자에게는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따르며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큰 명령을 주셨다. 그러나 어떤 남자는 썩어질 헛된 것에 마음을 두고 육을 위해 세상을 방황한다. 둘 다 아버지 앞에서는 교만한 자들이다.

 

이처럼 사람이 창조자이신 그리스도와 영원한 사랑과 공의의 아버지께로부터 교만하다는 말을 듣기 원한다면 피조물인 자신을 주님 앞에서 낮추지 않으면 된다. 그러나 생명을 주시는 아버지께서는 교만한 영혼을 멀리하신다. 또한 교만한 자는 진리와 생명의 말씀에 순종치 아니하되 불의한 죄인을 의롭고 거룩하게 하는 진리는 불순종하는 영혼을 의롭게 씻어주지 못하니 그는 아버지의 의와 거룩에 이르지 못하고 의와 거룩을 이루지 못하니 몸의 구속에도 이르지 못하게 된다. 반면 그리스도를 맏아들로서 가까이 하신 것처럼 겸손한 영혼을 가까이 하시니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하므로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룬 한 영혼들은 그 은혜를 얻어 성전에서 아바 아버지께로 가까이 간다. 그리하여 아름다운 한 빛은 셋째하늘에서 아버지의 빛을 보고 사랑과 기쁨과 평화를 누리며 영원토록 다스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렀으되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

 

5월 29일 교만한 영혼

 

돌문을 열고 나오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