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질문은 거듭난 후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십자가의 길을 가기로 결단하며 따라가는 영혼이 드리는 질문입니다.  

 

말씀에 기록된 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라 하셨고 아무 일도 편벽되이 하지 말라 하셨으니 편벽에 대한 말씀과 관련하여 이러한 고민이 있습니다.  

첫번째 )

어떤 남자가 가정의 평화를 위한다는 이유로 혹은 가정에 분란이 생기는 것을 두려워하여 아내인 여자의 말을 따릅니다. 그리고는 그 원수의 가시를 이기고자 말씀을 의지하며 온유함으로 아버지의 때를 기다립니다. 아버지를 더 두려워함으로 뒤로 물러서거나 세상 또는 전통으로 돌아가지는 않습니다. 다만 여기에서 여자의 말을 따르다 보니 문제가 생깁니다. 왜냐하면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것에 말씀과 충돌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사실 남자는 여자가 무서운 것이 아니요 피하는 것일 뿐입니다. 

두번째 )

그 남자는 아버지를 두려워 함으로 돌이켜 아버지를 믿고 오직 순종함으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합니다. 하지만 문제는 또다른 방향으로 치우치는 것입니다. 바로 자신의 의와 혈기로 그 여자와 아이의 머리채를 잡고 억지로 끌고 산으로 오르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고민이 생깁니다. '이것이 진리의 길이요 곧 십자가의 길이니 내가 억지로라도 가족을 이끌고 여자의 말을 듣지 아니하리라 설령 가족이 해체가 된다할지라도,...나머지는 아버지께서 하시리라' 합니다. 

 

가정에서 남편된 자가 이 두가지 편벽된 행위에 대해 어떠한 지혜로운 대처로 순종할 수 있는지요? 

 

빛으로 흑암을 이기기 원합니다.

 

두 가지의 말씀을 드리니 한 글자 한 글자 보시고 자신의 위치와 상황에 맞는 말씀을 택하여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1. 편벽과 간음의 말씀은 전통과 세상을 더 사랑하거나 자신이 옳다고 여기므로 그리스도를 따르겠노라 결단을 못하고 있는 남자나 또한 결단했으나 편벽되이 행하는 남자를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 허락하신 그 부부의 질서와 또한 그 부부와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의해 그의 여자도 역시 자신의 남자를 따르며 순종하고자 결단치 못하고 있으니 그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또한 남자가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결단한 것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그를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이끄시어 그가 그 과정을 다 거치므로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결단한 남자의 여자도 자신의 생명을 따라가는 것이 마땅하되 아버지께서는 여자도 남자를 따르며 순종하도록 그의 여자를 이 모양 저 모양으로 인도하시며 그에게 맞는 과정과 시간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므로 모든 가족들이 생명을 얻기 위한 지혜로운 순종의 길은 이것이니 아직 결단치 못한 남자의 영혼은 자신의 여자와의 어떠한 관계를 맺거나 요구하기 전에 자신이 먼저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결단하는 것이 우선이며 결단했으나 편벽되이 행하고 있는 남자의 영혼은 여자를 무서워하며 만족시키려 했던 그 편벽됨을 회개하고 약속을 지키는 것이 옳으며 결단하고 편벽되이 하지 않는 남자의 영혼은 자신을 따르며 순종하는 여자와 사랑과 순종의 관계에서 기쁨으로 그 길을 함께 걸으면 됩니다. 한편 결단하고 편벽되이 하지 않되 자신의 여자가 아직 생명을 따르기로 결단하지 않았으면 그로 인해 불순종하며 사망에 머물러 있으면 그 여자의 육을 치며 머리채를 잡고 억지로 데려가는 것은 자신의 의와 혈기로 사람이 사람을 이끌려는 어리석음이요 그로 인해 원수에게 더욱더 훼방할 기회를 주는 것이니 자신이 이미 말씀의 기초와 함께 받은 수많은 말씀들을 기억하며 온유함으로 기다리면 그 때가 곧 이를 것입니다.

 

2. 남자가 만일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결단 후 편벽되이 행치 않고 있으며 또한 아내를 자신의 몸처럼 죽기까지 사랑하고 있으며 또한 가시가 되어 찌르는 아내를 보며 선악으로 대하므로 같이 찌르지 않고 오히려 자신의 가시를 제했으며 또한 온유함으로 기다렸으며 또한 아내의 영혼을 붙들고 있는 그 원수의 손을 떼달라고 눈물로 구했습니다. 즉 사람이 말씀에 순종하여 해야 하는 모든 것들을 다했습니다. 또한 아버지께서도 이 모양 저 모양 시간과 과정을 다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여자는 감당치 못할 은혜를 받고도 생명을 원치 않고 있으니 세상에서 나와 자신을 내려놓고 남자를 따르고자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생명의 길을 가는 남자로부터 갈리기를 원하고 있으며 또한 자식들도 같이 죽자고 하거나 세상에서 나오려는 가족들의 발목까지 끌어당기고 있습니다. 그러면 그 여자는 이미 모든 생명의 기회를 발로 밟아 뭉개었으니 원수의 자식이 되기를 간절히 원하는 그 여자에게는 말씀에 기록된 대로 마지막 세 번의 기회를 허용 후 그 여자가 원하는 대로 갈리어주는 것이 참으로 옳습니다. 남자가 다른 가족을 데리고 그 여자가 원하는 사망에 머물러있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가족들을 사망에서 그리스도께로 인도하여 거룩에 애쓰므로 아버지와 함께 거하며 화평을 이루게 하는 것이 옳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 여자가 다른 가족들을 더 이상 사망으로 이끌지 못하는 것은 세상에서 소금기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남자는 이혼했으니 간음한 것인가? 이러한 경우는 죄와 세상과 함께하는 자들처럼 자신의 욕심이나 불의나 뜻이나 성격차이나 이기적인 마음이나 젊을 때 얻은 여자를 버리고 새로운 여자와 간음하고자 갈린 것이 아니니 즉 말씀에 순종해 생명을 위하여 구속 받지 않은 것이니 신실하신 아버지께서도 오히려 그 남자를 옳게 보시고 그 생명을 허락하시므로 반드시 약속을 지키십니다. 하지만 깨달아야 할 것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따르지 않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남자에게는 그러한 일이 없으니 그것은 그가 말씀에 순종하여 해야 하는 모든 것들을 다하는 그 모습을 보시고 아버지께서 그 여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니 세상과 자신을 따르며 불순종하던 그 여자가 남자의 그런 모습을 보고 마음이 녹고 또한 죽기까지 하는 주님의 사랑을 깨달아 자신도 죽기까지 남자를 따르며 순종하기 때문입니다.

 

아내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