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운 겨울입니다. 사람의 일생이 그러하듯 자연도 봄이 있고, 여름이 있고, 가을이 있으며, 겨울이 있군요. 

죽은 듯 황량한 거리를 온갖 디자인과 형형색색의 등()을 비춘들, 산과들의 메마른 가지에 드리운 죽음의 표상을 감출 수는 없을 것입니다. 봄은 다시 오고, 우리의 아이들과 같은 연한 어린 잎사귀는 마치 죽음이 있은 뒤에 다시 새로운 삶이 있음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젊은 날의 열정과 같은 여름은 조금은 긴듯하군요. 그러나 사람의 인생은 또다시 젊은 날의 방황을 뒤로한 채, 깊은 고뇌의 장()에 들어서고, 혹여 성숙해 보이는 그리고 아름다운 한 폭의 산수화 같은 그 붉은 물결은 사실 죽음을 기다리는 회광반조(回光返照)와 같은 순간의 환영일 따름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곧 어두운 죽음이 다가오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흰 눈이 내렸습니다. 잿빛 세상을 덮은 하얀 눈으로 그저 눈이 부십니다. 죽어있는 세상에 잠시 잠깐이지만 한 가닥 희망과도 같은 빛이 온 세상을 덮었습니다. 만약 그 하얀 빛이 바라던 바요 영원하다면 소망은 이제 그에게 실체가 된 것입니다. 그토록 바라던 소망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늘 죽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삽니다. 고단할 때, 외로울 때, 슬플 때, 괴로울 때, 아플 때,....사람들이 이런 말을 하는 이유는 죽으면 편하게 쉴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죽고 나면 이러한 고단한 수고로부터 벗어날 것이라는 막연한 그리고 어느새 고정되어 버린 환상일 따름인 것이지요. 정말 죽고 나면 과연 편히 쉴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고 더욱더 고통스러운 곳으로 가게 될 줄을 알았더라면 죽음이라는 것이 갖는 거부할 수 없는 운명에 대해 다시 되돌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당연히 받아야 할 죽음이 오히려 어떤 특별한 목적으로 그 사람의 남은 삶을 이끌게 될지도 모릅니다. 

저의 고단한 수고는 바로 저의 죄와 허물 때문입니다.

 

은혜를 받은 형제로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위로의 말씀에 기뻐하며 거룩해 질 수 있다는 믿음과 소망을 잃지 않으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