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완전하심의 숫자를 이용한 것은 서기관들이 가르친 것이니 원래의 수는 오직 썩어질 육신의 기쁨을 즐기는 숫자이니 육이다. 또한 함께 불러 그 안으로 가는 것은 그곳에 더 그 육을 잡고 자신들이 음란의 기쁨을 누리며 무저갱보다는 그 더러운 곳에 더 오래 거하기 위함이다.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을 믿는 자들 가운데 자신의 생각과 의를 따르는 악한 자들과 첫사랑을 잃고 마음에 우상을 담아두고 있는 음란한 자들은 그들이 어느 시대에 거하든 그들의 마음과 혼과 몸이 거룩한 성전이 아니요 오히려 흑암의 성전이 되어 사망으로 들어가리니 썩어질 육의 필요와 욕심을 붙들고 헛된 세상을 헤매는 자들은 밤이 오기 전에도 밤중에도 한밤중에도 심지어 세상이 곧 멸망하는 직전까지도 주님께로 그 마음을 돌이키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스스로 자신의 그런 마음을 돌이킬 줄 알아야 하니 그것이 그가 아버지와 그 얽매인 죄악을 푸는 길이다.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