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사야선지자가 기록한 바 생명의 심판을 받는 자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되 형벌의 심판을 받는 자의 마음은 이러하리라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구약예언대로 속죄를 위해 세상 끝에 나타나셨을 때 심판의 말씀에 순종한 자의 마음과 불순종한 자의 마음이요 또한 그리스도께서 먼저 말씀을 전하시고 십자가에서 다 이루신 후에 심판을 하시리니 그 심판이 공의롭다는 의미다. 즉 아버지께서 만일 아들을 통해 복음과 율법을 주시지 않으셨거나 십자가로 의와 거룩을 이루시지 않으시고 심판하신다면 구약의 유대인과 신약의 이방인이 심판 받을 때 불만을 품고 불평하겠으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먼저 은혜를 베푸시고 오직 이미 말씀하신 대로 모든 영혼을 공평하고 정직하게 판단하여 상급을 줄 자에게는 상급을 주시며 형벌을 내릴 자에게는 형벌을 내리시는 것이니 그 심판은 오직 공의를 세우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공의의 심판을 깨달은 이방인은 그리스도께서 먼저 구약말씀을 전하시고 초림 때에 나타나 십자가에서 약속을 다 이루신 후 유대인을 심판하신 것처럼 먼저 복음을 전하시고 십자가로 다 이루신 후 세상 끝에 다시 나타나 모든 사람을 심판하시므로 재림 때도 아버지의 의가 동일하게 세워짐을 믿고 아버지의 영광의 자유에 이를 것을 소망하니 평화의 복음을 믿는 열방의 섬들이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그 구원의 이름을 앙망하며 그의 팔을 의지해 의의 소망인 십자가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다.
한편 마태는 처음에 계시를 받아 복음을 기록할 때 이사야의 예언을 정확히 인용했으나 심판으로 공의를 세우는 내용이 빠져있으니 그 이유는 성전의 의미인 성전에 거하면서도 메시아를 깨닫지 못한 서기관들이 그것을 빼내었기 때문이다. 즉 심판이 오직 심판자의 마음대로 하는 공의롭지 못한 것임을 드러내고자 함이요 또한 자신이 잘하고 잘못하고를 숨기려는 마음의 의도에서였다.
“또한 이방들이 그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