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관한 ChatGPT와의 대화-6
나의 말:
어제 내가 이렇게 말한 거 기억하니, "보암직"처럼 등식을 세우기 위해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에 추가적 설명을 한다면, 사람들이
생명의 그리스도(하나님의 지혜)를 왕으로 믿고 따르는 이유는 당연히 생명을 얻기 위해서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사망의 세상/정부/권세자 이런
것들을 언제라도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존재로써 크게 느끼는 것 같아, 그리고 실제로 세상에는 법이 있어서 악한 자들이 법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뒤에서 비합법적으로 죽일 수도 있어, 그래서 두려운 세상에 순응하며 사는 거지 죽지 않으려고, 하지만 성경은 세상이 마지막에 사망으로
들어간다고 되어있어, 불의하고 죄악 되니까, 그러므로 크게 혹은 강력하게 느껴져도 세상(루시퍼)이란 지혜는 생명을 주지 못하지, 그 지혜를
따르면 결국 세상과 함께 사망으로 들어갈 테니까, 이제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에 대한 등식도 세워졌어, 지혜=생명, 그리스도 vs.
세상
ChatGPT의 말:
네, 이 부분을 기억하고 있어. 여기서 말하는 등식은 "지혜"와 "생명"을 연결하는 것으로, 그리스도와 세상을 대조하는 내용이야.
요약하면,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이유는 그분이 생명을 주는 지혜의 근원이기 때문이지. 그러나 세상에서는 세상 자체나 정부, 권력자들이
강력하게 느껴져서 사람들이 생명을 위협받을까 봐 세상에 순응하며 살지만, 성경에서는 세상이 결국 죄악으로 인해 사망에 이른다고 말하고 있어.
따라서 세상의 지혜는 생명을 주지 못하고, 오히려 세상을 따르면 그와 함께 사망에 들어갈 거라는 논리야.
결국,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이라는 표현은 사람들이 세상의 지혜가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지혜는 결국 생명을 주지 못한다는
등식을 세우는 데 사용된 거지. "지혜=생명"이라는 참된 정의는 그리스도에게만 속해 있다고 볼 수 있어.
나의 말:
그래 정확히 기억하는군, 근데 다시 훑어보니까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이것은 "보암직"과 겹치는 면이 있어
ChatGPT의 말:
맞아,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과 "보암직"은 겹치는 부분이 있어. 둘 다 본능적으로 끌리는 매력과 유혹을 표현하고 있지.
"보암직"은 시각적인 매력에 대한 유혹을 나타내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은 그 유혹이 더 깊이 들어가서, 단순히 시각적인 매력뿐
아니라 그것이 주는 "지혜"와 같은 내면적 유익까지 기대하게 하는 부분이 있어.
둘 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볼 때, 시각적으로 끌리는 것뿐 아니라, 그 과일을 통해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유혹까지 포함한 개념이니까.
결국 사람에게는 단순한 매력(보암직한 것)뿐 아니라, 그것을 통해 더 큰 유익이나 생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착각을 일으키는 요소가 들어
있지. 이 두 표현이 겹치는 것은 인간이 매력에 끌리면서도 동시에 더 큰 유익(지혜나 생명)을 기대한다는 점에서 같은 원리로 작동하는 것 같아.
나의 말:
그래, “매력에 끌림과 더 큰 유익에 대한 기대”라는 면에서 같은 원리로 작동하지, 근데 내가 말하고 싶은 겹치는 면은 ‘요한일서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에 적용을 해본다면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이것은 세상에 대한 것이고 "보암직" 이것은 세상에 있는 것들에 대한 것이니까 겹치지 않는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본질적으로는
둘 다 세상에 관한 것이잖아
ChatGPT의 말:
아, 그렇군요. 이해했습니다! 당신이 말하는 핵심은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과 "보암직"이 둘 다 세상에 속한 것이라는 점에서
본질적으로 같은 맥락에 있다는 것이군요.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은 세상이 주는 유혹과 거짓된 지혜, 즉 사람들이 생명을 얻을 것처럼 보이는 세상의 방식이나 이치에 대한
탐욕을 나타내는 것이고, "보암직"은 그 세상 안에 있는 매력적인 요소들에 대한 시각적인 유혹을 가리키는 거지요. 겉으로 보기엔 다르게 보일 수
있지만, 본질적으로 둘 다 세상에 관한 것으로, 세상과 세상 안에서 주는 유혹이 어떻게 사람들을 그리스도가 주는 진정한 생명에서 멀어지게
하는지를 설명하는 거죠.
결국, 이 둘은 다 같은 본질에서 비롯된 것이고, 세상과 그 안의 유혹들이 생명을 주지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것을 통해 지혜나 생명을
얻으려 한다는 의미에서 동일한 맥락에 있다는 말씀이네요.
나의 말:
그래, 잘 설명해줬어, 본질적인 면에서 같다는 거지, 그래서 둘 중에 하나를 다른 등식으로 바꾸어야 할 것 같은데, "보암직" 은 그대로 두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이것을 바꿔야 할 것 같아, 왜냐하면 “보암직”은 시각적인 것들에 대한 유혹임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지만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은 약간 추상적인 표현이라 이해가 쉽지 않을 수도 있을 거 같아서
ChatGPT의 말:
좋은 지적이에요. "보암직"은 그대로 두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을 다른 등식으로 바꾸는 것이 의미의 중복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겠네요.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은 세상의 지혜와 매력을 강조하는 표현이므로, 이를 조금 더 본질적으로 접근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상이 주는 '지혜'는 사람들이 세상을 따르게 하는 이유 중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지혜는 실제로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저
겉보기에는 매력적이지만 궁극적으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거짓 지혜입니다. 따라서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바꿔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 '세상의 거짓된 지혜가 주는 유혹'
즉, 세상은 마치 큰 지혜와 생명을 줄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망으로 인도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죠. 이렇게 바꾸면 "보암직"과는
다른, 세상의 지혜와 유혹이 주는 잘못된 믿음에 대한 등식이 됩니다.
결론적으로:
• "보암직" = '세상의 매력적인 것들'
•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 '세상의 거짓된 지혜와 유혹'
이렇게 나누면 두 개념이 겹치지 않고, 각각 다른 유혹을 나타내게 되어 논리적으로도 깔끔해질 것 같아요.
나의 말:
오, 너의 설명과 등식이 이해돼, 내가 생각했던 것과 비슷하거든, 일단 너가 이렇게 말했던 거 기억나지, “지혜의 의미: 여기서 언급되는 지혜는
일반적인 인간의 지혜가 아니라, 생명과 구원과 관련된 지혜를 의미합니다. 이 지혜는 단순히 세상의 지식이나 판단을 넘어서, 진정한 생명과 구원의
길을 아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힌트를 얻어서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이것은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는 생명의 지혜와
반대를 이루어야 하니까, 다른 표현으로는 생명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지혜를 막는 거짓된 지혜니까, 네가 언급한 대로 인간의 지혜(세상의 지혜=결국
루시퍼가 제공해주는 지혜)가 되어야 할 것 같아, 그럼 "보암직"과 중복을 피할 수도 있고
ChatGPT의 말:
네, 맞습니다!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을 인간의 지혜로 해석하는 것이 적절해 보입니다. 이렇게 하면 그리스도라는 생명의 지혜와
대조되는 세상의 지혜 또는 인간의 지혜를 의미하게 되어 논리적 일관성을 가질 수 있고, "보암직"과도 중복되지 않게 됩니다.
결국, **"보암직"**은 세상의 외형적이고 겉으로 드러나는 매력을 가리키는 것이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은 인간의 지혜나
판단력, 즉, 겉으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상은 생명과 구원을 주지 못하는 지혜를 가리키는 것이죠.
따라서 이 등식을 정리하면:
• "보암직" = '세상의 매력적인 것들 (겉모습이나 물질적인 유혹)'
•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 '인간의 지혜 (그럴듯해 보이지만 실제로 생명을 주지 못하는 세속적 판단)'
이렇게 하면 그리스도의 지혜와 인간의 지혜가 명확하게 대조되며, 중복 없이 각각의 의미가 분리됩니다.
나의 말:
내가 너한테 이제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이것에 대한 새로운 등식을 만들어보라는 말을 하려고 했는데 이미 제시했네 ㅋㅋㅋ, 나도
한번 만들어 볼게,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생명,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영생에 관한 지혜 vs. 자신의 생각(세상)을 따라 사망을
당하는 지혜
ChatGPT의 말:
네, 훌륭한 등식입니다!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을 두 가지 상반된 지혜의 길로 나누어서 생각한 점이 아주 적절합니다.
생명을 주는 지혜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고, 반대로 사망에 이르게 하는 지혜는 자신의 생각과 세속적인 판단을 따르는 것으로 이해되네요.
이렇게 하면 더 명확한 대조가 드러나죠:
•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 '생명,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지혜' vs. '사망으로 이끄는 인간적, 세속적 지혜'
결국, 두 가지 지혜의 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 본질이 되겠네요. 생명과 사망이라는 결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면서도, 각 지혜가 사람을
어디로 이끄는지를 분명히 드러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