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 관한 ChatGPT와의 대화-5
나의 말:
어제 내가 이렇게 말한 거 기억나니, “3.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여기에서 언급되는 지혜라는 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지혜가
아니라 생명을 얻는 지혜를 뜻해, 즉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만일 지혜를 줄 수 있다면 그걸 먹고 생명을 얻어야 하지만 반대로 사망을 얻었어
그러니까 하와가 그것을 지혜롭게 여겼을지라도 결과적으로 어리석게 할 만큼 탐스러운 것이지, 정리하면 지혜라는 것은 항상 그것이 생명을 주느냐
주지 못하느냐와 관계된 것을 의미한다는 거야”
ChatGPT의 말:
네, 기억합니다! 당신이 설명한 내용에서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이라는 부분은,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지혜롭게
여겼지만, 실제로는 생명을 주지 않고 오히려 사망을 초래하는 어리석은 선택이었음을 강조했죠. 지혜는 생명을 주는 것과 관계가 있으며, 결국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을 얻는 것이 진정한 지혜라는 말씀을 통해 이 개념을 확실하게 설명했습니다.
나의 말:
근데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단지 지혜만 생명과 관계된 것이라고 보기에는 문제가 있는 거 같아, 왜냐하면 그 나무의 이름은 선악나무 즉 죽음을
주는 나무이고 반대되는 생명나무는 생명을 주는 나무니까, 먹음직과 보임직도 역시 생명이나 죽음과 연결해서 생각해야 정확한 내적 영적 의미를
깨달을 수 있겠지
ChatGPT의 말:
맞습니다. 지혜만 생명과 관계된 것으로 보기는 부족할 수 있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죽음을 가져오는 나무이고, 생명나무는 생명을 주는
나무로 대조되기 때문에, "먹음직"과 "보암직" 또한 생명과 죽음의 관점에서 이해해야 더 깊은 영적 의미를 알 수 있습니다.
먹음직: 루시퍼의 달콤하고 부드러운 말에 끌려 하나님 말씀을 어기게 되면서, 이 '먹음직'이라는 것은 영적인 결단과 행동으로 연결되었죠. 여기서
영적인 식사는 생명과 죽음의 선택을 의미합니다. 먹음직이 보였다는 것은 죽음을 가져오는 결정을 은근히 미화한 것이라고 볼 수 있죠.
보암직: 육체적인 감각으로 세상의 매력에 끌리게 된 하와가 이 열매를 '보암직'하다고 여겼던 것은, 세상의 유혹과 아름다움이 결국에는 죽음으로
이끈다는 점을 나타냅니다. 세상의 기준으로 보암직한 것이 생명과 반대되는 죽음의 선택이 되었죠.
이렇게 세 가지 요소가 모두 생명과 죽음의 선택과 연결되어 있으며, 단순한 육체적 만족을 넘어 영적 결정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나의 말:
오, 깊이 있는 분석이네, 일단 원수의 말에 따라 그 나무가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했지만 오히려 어리석게 만들었지, 죽음의 심판에
이르렀으니까, 즉 패러독스로써 원수의 말은 지혜롭게 들려도 어리석은 말(헛된 말/거짓말/죽음의 말)이야
ChatGPT의 말:
맞습니다, 원수의 말은 표면적으로는 지혜롭게 들리지만, 실제로는 어리석음으로 이끄는 말이었습니다. 하와는 루시퍼의 말을 듣고 선악과가 지혜를 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 그것은 죽음을 가져오는 어리석은 선택이었죠. 이 패러독스는 영적인 교훈을 줍니다.
루시퍼의 말은 매력적으로 들리고 순간적으로는 지혜롭게 보일 수 있지만, 그것이 결국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선택으로 이끌 때, 그 지혜는 생명을
주는 진정한 지혜가 아닌 죽음을 불러오는 어리석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만이 참된 생명과 연결되고, 루시퍼의 말은 아무리 지혜롭게
들려도 결국에는 파멸로 이어지는 속임수라는 점이 강조됩니다.
이 점에서, 세상이나 유혹이 지혜롭게 보여도 그 본질이 하나님과 동떨어져 있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선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의 말:
네가 말한 이 부분, "이 점에서, 세상이나 유혹이 지혜롭게 보여도 그 본질이 하나님과 동떨어져 있다면, 그것은 어리석은 선택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보암직" 과 연결돼, 즉 사람들이 돈을 원하는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보면 물론 욕심을 부려서 더
좋은 차 더 좋은 집 더 좋은 음식과 옷 등을 취하기 위해서지만 본질적으로 들여다보면 죽지 않기 위해서야, 돈이 없으면 음식을 사지 못해
죽으니까, 즉 돈이 생명을 주는 것처럼 여기는 거지, 마찬가지로 힘이 없으면 다른 사람에게 당하거나 심지어 죽을 수도 있으니까 같은 맥락에서
죽지 않기 위해 권력을 원하는 거고, 명예와 인기는 생존을 넘어 자신의 생명을 가장 높은 곳에 올려놓기 원하는 거고, 하지만 사람들이 만일
원수의 보암직한 말에 따라 살고 싶다며 보암직한 것들을 취한다면 나중에 그것들이 오히려 올무와 덫이 되어 생명을 주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는
패러독스에 부딪히게 되는 거지
ChatGPT의 말:
맞습니다, 정확한 통찰을 하셨습니다. "보암직"한 것들은, 겉으로는 생명을 유지하고 보호하기 위한 수단처럼 보이지만, 그 본질이 하나님의 말씀과
어긋난다면 결국에는 생명이 아닌 죽음으로 이끄는 덫이 됩니다.
사람들이 돈, 권력, 명예를 추구하는 이유는 결국 생존과 관련이 있죠. 돈은 음식을 사고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요하고, 권력은 자신을 보호하고 타인에게 지배당하지 않기 위한 도구로 여겨지고 명예와 인기는 개인의 가치와 중요성을 강조하며 사회적 인정을
통해 자신이 특별하고 중요한 존재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욕구를 나타냅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을 하나님이 아닌 세상의 기준과 루시퍼의 속삭임에
따라 추구할 때, 그것들은 더 이상 생명을 보장하지 않고 오히려 죽음으로 이끌게 됩니다.
즉, 원수의 말에 속아 돈과 권력, 명예를 생명과 동일시하는 순간, 사람들은 참된 생명을 잃어버리고 헛된 것을 위해 달리게 되죠. 이 패러독스는
성경에서 말하는 "속이는 영"의 대표적인 전략입니다. 진정한 생명은 세상에서 얻는 물질이나 권력이 아닌, 오직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것입니다.
결국, 보암직하게 보이는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님의 기준에서 벗어나면 생명을 줄 수 없고, 오히려 죽음에 이르게 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나의 말:
“이 패러독스는 성경에서 말하는 ‘속이는 영’의 대표적인 전략입니다.” 너가 이렇게 표현했지 나는 이렇게 표현해볼게, “다 가지라는 세상의
거짓말” ㅋㅋㅋ, 이제 "보암직도 하고" 이 표현에 대한 이해를 통해 성립된 등식은 보암직=생명, 말씀 vs. 돈/권력/명예=생명 vs. 사망
ChatGPT의 말:
맞습니다. "보암직도 하고"라는 표현에서 성립된 등식은 보암직=생명이라는 잘못된 등식이 생긴 순간을 보여줍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생명을 위해
어떤 것이 '보기에 좋다'는 감각적, 물질적 기준에 따라 선택을 하게 되는데, 이는 곧 하나님의 말씀과 대립됩니다.
이 등식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풀어보면:
보암직=생명: 인간이 세상을 볼 때, 그들이 느끼는 '아름답고 탐스러운 것'이 생명을 준다고 착각하는 것.
예를 들어, 돈/권력/명예가 생명을 유지하고 행복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믿는 것이죠.
말씀=생명: 그러나 진정한 생명은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따르는 데서만 얻어집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지혜이자 생명을 주시는 분으로, 그와의
관계에서 참된 생명을 얻을 수 있습니다.
돈/권력/명예=사망: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대신 세상적 기준으로 '보암직한 것'을 택할 때, 돈, 권력, 명예를 통해 생명을 얻으려 하지만, 그
결과는 생명이 아닌 사망입니다. 이는 원수의 속임수이며, 결국 세상적 성공이 궁극적으로는 영적 죽음으로 이끕니다.
결국, 보암직하다고 느껴지는 것들은 하나님의 진리와 생명 대신, 세상의 가치관과 육적인 기준으로 보게 된 결과입니다.
나의 말:
풀어놓으니까 더 쉽네 ㅎ,
근데 문제는 가짜 생명을 주는 것들은 보암직하지 않고 진짜 생명을 주는 그리스도가 보암직해야 하는데 그는 육의 눈에 전혀 보암직하지 않다는
거야, 육으로는 흠모할만한 아름다움이 하나도 없으니 ㅠㅠ, 아마 가짜 형상과 진짜 형상의 차이겠지, 물론 십자가와 그 길의 가치를 아는
사람에게는 내면적 영적으로 대박 보암직하지 ㅎㅎㅎ, 그리고 “생명을 유지하고 행복을 보장해 줄 것이라고 믿는 것이죠” 너의 이 말은 마지막에
죽음을 당하기 전의 상태 즉 결국 허무한 죽음에 이르기 전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영혼의 생명과 마음에 행복을 얻지 못하는 안타까움을 설명하는군,
정확히 그래, 사람은 원수가 보여주는 가짜로 보암직한 말을 듣고 가짜로 보암직한 돈/권력/명예를 구하며 따를 때 겉으로 보기에는 혹은 당장은
별로 보암직하거나 아름답거나 가치 없는 것으로 보여도 영생을 주는 그 말씀 즉 실제로 보암직한 그리스도가 없어서 이 땅에서 행복과 소망을 누리지
못하다 결국 사망에 이르는 거야 ㅠㅠ
ChatGPT의 말:
정확한 해석입니다. 사람이 원수가 제시하는 가짜로 보암직한 말에 속아 돈, 권력, 명예를 따를 때, 그것이 겉보기에는 아름답고 가치 있어
보이지만, 결국 그 안에 진정한 생명은 없고 사망으로 이끄는 올무에 빠지게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하나님의 참된 말씀은 세상의 기준에서는 별로 보암직하지 않게 보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육적인 관점에서는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거나 즉각적인 만족을 주지 않지만, 실제로는 생명을 주는 유일한 길입니다.
결국, 진정으로 보암직한 것은 세상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것을 따르지 않을 때
죽음으로 향하게 됩니다. 원수가 보여주는 거짓된 보암직함은
일시적으로는 매력적일 수 있지만, 그 끝에는 사망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이죠.
나의 말:
"보암직"처럼 등식을 세우기 위해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에 추가적인 설명을 한다면, 사람들이 생명의 그리스도(하나님의 지혜)를 왕으로
믿고 따르는 이유는 당연히 생명을 얻기 위해서지, 마찬가지로 사람들은 사망의 세상/정부/권세자 이런 것들을 언제라도 자신을 죽일 수 있는
존재로써 크게 느끼는 것 같아, 그리고 실제로 세상에는 법이 있어서 악한 자들이 법적으로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뒤에서 비합법적으로 죽일 수도
있어, 그래서 두려운 세상에 순응하며 사는 거지 죽지 않으려고, 하지만 성경은 세상이 마지막에 사망으로 들어간다고 되어있어, 불의하고 죄악
되니까, 그러므로 크게 혹은 강력하게 느껴져도 세상(루시퍼)이란 지혜는 생명을 주지 못하지, 그 지혜를 따르면 결국 세상과 함께 사망으로 들어갈
테니까, 이제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에 대한 등식도 세워졌어, 지혜=생명, 그리스도 vs. 세상
ChatGPT의 말:
정확한 논리적 흐름을 따라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에 대한 등식을 세우신 것이 맞습니다. 사람들이
생명을 위해 그리스도(하나님의 지혜)를
믿고 따르는 이유는 바로 영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겉보기에는 강력하고 권위 있게 느껴져도, 결국
생명을 주지 못하고 사망에
이르게 하죠. 세상 법과 권력은 때로는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고 죽음에 대한 위협을 가하지만, 성경은 세상이 결국 사망으로 들어간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에 대한 등식은:
지혜 = 생명, 그리스도 vs. 세상
• 지혜 = 생명, 그리스도 vs. 세상
• 참된 지혜는 그리스도로부터 오며, 이는 생명을 주지만,
• 세상의 지혜는 겉으로는 강력하고 매력적으로 보일지라도, 그 끝은 사망으로 이어집니다.
이 등식은 사람들이 왜 세상적인 권력, 명예, 그리고 법에 순응하며 사는지, 그리고 그 결과가 무엇인지 잘 설명해 줍니다.
나의 말:
더불어 "먹음직" 이것은 참으로 이해하기 쉽지 않은 게 육적인 소재이지만 동시에 영적인 소재이기도 하기 때문이야, 우선 사람들이 먹는 이유는
본질적으로 영양을 취해서 아미노산에 의한 단백질 합성을 위해서지, 그래서 왜 먹냐고 물어보면 살기 위해서 먹는다는 우스꽝스러운 대답을 하지만,
좀더 깊이 생각해보면, 사람들은 먹고 마시면서 한걸음씩 육의 죽음으로 더 가까이 가고 있어, 반면 인자의 살과 피는 먹고 마시면서 영생으로
다가가지,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며 새 생명을 얻은 사람은 실제로 부활해서 영생하게 되니까, 근데 서두에 이해하기 쉽지 않다고 했잖니?
그 인자의 살과 피가 육적일수도 있고 영적일수도 있기 때문에, 먹음직이 육적인 동시에 영적이라는 말은 일단 사람이 그 살과 피를 세상의 음식처럼
자기의 육적인 입으로 먹고 마시잖아, 하지만 그것은 사실 영혼의 양식이야, 무슨 말이냐면, 육과 영의 관계를 비유로 나타내자면, 집(육체)
vs. 집안에서 안식하는 사람(영혼), 옷(육체) vs. 옷을 입은 사람(영혼), 포도주잔(육체) vs. 포도주(영). 즉 육적으로 취하는 그
인자의 살과 피가 영혼의 양식(집과 옷과 포도주잔처럼 영혼의 겉에 있는 생명을 주는 것)이라는 거지, 이제 "먹음직"에 대한 등식도 세울 수
있어, 내가 세우지 않고 네가 세워볼래
ChatGPT의 말:
네가 설명한 내용을 바탕으로 "먹음직"에 대한 등식을 세워보자면, 육적이고 영적인 두 가지 차원을 통합해서 이해해야 할 것 같아.
등식은 이렇게 구성될 수 있어:
먹음직 = 생명(그리스도의 살과 피) vs. 세상의 음식
이 등식은 다음과 같은 의미를 포함해:
육적인 차원: 사람들이 육적인 음식을 먹는 이유는 살기 위해서, 즉 육체를 유지하기 위해서야. 하지만 그 과정에서 사람들은 점점
육적인 죽음에
가까워지고, 세상의 음식을 계속 먹으며 결국에는 죽음에 이르게 돼.
영적인 차원: 반면,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육적으로 먹고 마시는 행위처럼 보이지만, 이는 사실
영적인 양식이야. 그리스도의 살과 피는 영혼의
생명을 주며, 이 생명은 부활과 영생을 약속해.
따라서, "먹음직"은 단순히 육적으로 보기 좋은 것이 아니라, 진정한 생명을 주는 영적인 양식인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의미하게 돼. 반면에
세상에서 주는 육적인 음식은 겉으로는 생명을 유지하게 해주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끝은 결국 사망으로 이어지지.
이렇게 먹음직 = 생명, 그리스도 vs. 세상의 음식과 죽음이라는 등식을 세울 수 있어.
나의 말:
우와 미치겠네, ai가 이 등식을 어떻게 세웠지? 아주 정확함 ㅎㅎㅎ, 나중에 보자
ChatGPT의 말:
고마워! 네가 제공한 깊이 있는 설명을 바탕으로 정리한 것이라 더 쉽게 등식을 세울 수 있었어. 함께 탐구하는 이 과정이 정말 흥미로워! 언제든
또 이야기 나눌 준비가 되어 있으니, 다음에 또 만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