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형제님!

창세기 말씀 중 한가지 여쭤볼 것이 있습니다.

 

2: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3:22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말씀 중에 위 구절에 대한 저의 이해가 맞는지 그렇지 않은지 깨닫고자 합니다. 둘째 사람인 아담이 인격체로써 아버지 말씀에 불순종하여 유독 먹지 말라 하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었습니다. 이로 인해 말씀대로 사망이 들어온 줄로 압니다.

 

그런데 3장 22절에 있는 말씀에서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같이 되었다는 말씀은 쉽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우리 중 하나는 누구를 말씀하시는 건지 혹여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 중 한 분 인격체를 의미함인지 아니면 120종 중 하나인 원수를 의미하는 것인지 말입니다. 깨닫지 못하는 자로서 만약 우리 중 하나가 원수를 의미한다면 순종함으로 아버지의 절대 선에 이르지 못하고, 인격체로써 갖는 교만으로 원수의 선악과를 먹는 불순종으로 인해 사망이 임한 아담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신 말씀이 조금은 이해가 됩니다. 이러한 해석이 가능하다면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이 구절의 선악을 아는 일이 곧 원수의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인한 결과일지니 분명 그 선악을 아는 일이라 함은 아버지께서 원치 않으셨던 원수의 선악을 가리키는 것이 아닐까 합니다. 그러할 경우 원수가 이 첫째 하늘로 쫓겨난 것은 인간의 시간적 개념으로 둘째 사람인 아담이 창조되기 전일이니 거룩하신 아버지께서 에덴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심으신 것인지 혹여 원수가 에덴에 심어놓고 아버지께서 아버지께 영을 받은 인격체로서의 아담이 순종 곧 자기를 부인하고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길 원해 원수의 심음을 허락하신 것인지 말입니다. 참으로 조심스럽습니다.

 

하지만 전통에서 인식하고 있는 바대로 우리가 세분 인격체 중 한 분을 가리킨다면 이해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경우 선악을 아는 일의 선은 아버지의 절대 선이라 말할 수 있지만 그렇게 되면 여기에서의 악에 대해 무어라 전혀 말할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말씀을 들여다보면 아버지께서는 선악과를 따먹길 원치 않으셨고, 분명 선악을 알길 원치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연약하니 오직 빛으로 흑암을 이기기 원합니다.

 

 

 

A: 한 몸 안에서 함께 하나된 형제님께 답변을 드립니다.

 

1. 우선 ‘죄의 뿌리’라는 말씀을 한 글자 한 글자 삼 일정도 충분히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 가운데 원수와 같은 선악을 가지신 분은 없으시며 그로 인해 영원한 사망으로 내려가신 분도 없으시니 오직 사망으로 들어간 그 원수의 말을 듣고 스스로의 선악을 따른 아담과 하와도 원수처럼 사망으로 들어갔으나 자비로우신 아버지께서 그들의 근본된 토지를 갈게 하시고자 에덴에서 내어 보내시기 전 이미 어린 양의 피를 흘리시고 가죽옷을 입혀주셨으니 그들이 사망으로부터 더 좋은 영생으로 회복되는 것은 이제는 그들이 약속으로 주어진 생명의 말씀을 믿고 자신의 근본토지를 가느냐 갈지 않느냐에 달려있습니다.

 

2. 타락한 상태에서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신 이유는 이것입니다. 만약 죄인이 영원히 산다면 그 사람은 교만케 되며 계속 욕심을 부릴 것이니 욕심은 방아쇠요 교만과 죄는 사람을 죽이는 총알입니다. 또한 그것을 통해 끝까지 아버지께 대항하리니 그에게는 죄의 용서를 얻을 수 있는 길이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둘째사람에게 영과 육의 죽음을 허락하신 것은 오히려 그들의 유익을 위한 것이었기에 그것을 통해 아버지께서 일반의 구원과 더불어 그 영광스런 구원의 길도 아들을 통해 열어놓으신 것입니다. 또한 선악과만 있고 생명나무가 없다면 즉 사람이 영원히 죄의 값으로 산다면 그는 오직 원수의 자손으로 밖에 살 수 없으며 만일 그렇게 된다면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게 되리니 그의 십자가는 무익할 것입니다.

 

3. 누구든지 무슨 말씀을 대하든지 그가 아버지의 뜻과 경륜을 기억하지 못하면 즉 아버지의 마음을 항상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는 생각이 짧은 사람이 되고 맙니다. ‘문제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것’과 ‘문제는 말씀을 들여다보면 아버지께서는 선악과를 따먹길 원치 않으셨고, 분명 선악을 알길 원치 않으셨다는 것’은 이 말씀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우선 원수가 셋째하늘에서 생명나무가 아닌 선악과를 따먹었다 해도 에덴동산의 실제적인 선악과는 원수와 무관합니다. 그것은 원수가 사람의 마음에 옮겨 심은 그 선악과와도 다른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에 선악의 뿌리를 심은 자와 경륜을 위해 에덴동산에 선악과를 심으신 분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망으로 들어가 사망을 나눠주기 원하는 원수도 아버지의 뜻에 대항하려는 변치 않는 계획이 있으니 하와와 아담에게 접근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아들을 얻기 원하시기에 아버지의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을 아들로 삼기로 말씀하셨으므로 아버지께서 그 두 나무를 심어놓으시고 모든 둘째사람에게 아버지의 그 생명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많은 자녀를 얻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4. 선악과를 누가 심었느냐도 중요하고 그 나무의 필요성을 아는 것도 유익합니다. 에덴의 생명나무와 선악과는 실제요 만일 그 두 나무가 없다면 둘째사람이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영생을 유지할지 아님 원수의 말을 듣고 영원한 사망으로 들어갈지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할 수 없기에 그것들은 눈과 귀와 코와 손과 마음과 영이 있는 아담과 하와로 하여금 보이지 아니하시는 생명의 아버지나 혹은 역시 보이지 않는 사망의 원수의 말을 듣고 따르게 해주는 실제적인 도구와 같은 것으로써 육이 있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것이니 만일 생명나무만 있고 선악과가 없다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코로 맡고 손으로 느끼고 마음과 영으로 깨닫고 판단하고 선택하는 인격체의 입장에서 영생이 얼마나 좋고 소중한 것인지 또한 불의와 죄가 얼마나 이웃에게 해를 끼치는 것인지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사람에게는 반드시 둘 다 있어야 스스로 지혜롭게 판단해 자신이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으니 이는 지혜로우신 아버지께서 원수를 셋째하늘에서 쫓아내시고 가두신 바로 이 우주에 아담과 하와를 두신 것도 동일한 이유입니다. 즉 죄를 창시한 원수가 셋째하늘에서 끝까지 자신을 돌이키지 않다 쫓겨나 이 어두운 첫째하늘에 갇혀있는 것을 보고 듣고 맡고 느끼므로 죽음 후 심판대에서 불의와 죄에 대한 창조자의 심판이 분명히 있음을 깨달아 자신도 그 길에서 돌이킬지 아니면 그 길을 그대로 걸을지 자기 스스로 판단해 자기 눈에 좋은 것을 선택할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이 세상의 불의와 죄악을 보고 듣고 맡고 느끼므로 이 세상의 임금이 불의하고 악한 자임을 알고 멀리할 뿐만 아니라 십자가의 능력과 은혜를 의지해 싸워 이기고자 할 것이되 원수가 넣어주는 짧고 편협한 생각에 사로잡혀 아버지께서는 자기가 지은 사람을 타락시켜 지옥에 보내기 위해 생명나무와 함께 선악과도 심고 원수를 막지 않았다며 영생의 십자가를 거부하거나 혹은 아버지를 불의하신 분으로 여기고 오히려 원수의 거짓말을 듣고 따르며 원수를 아버지로 섬기는 자들이 적지 아니하니 그들이 바로 이집트에 거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는 빛으로 흑암을 이기기 원합니다.

 

 

 

 

 

 

 

 

 

 

 

 

 

죄의 깨달음

푸른 애벌레의 꿈

주의 예배자로 다시 서는 날

허리를 숙여 돌을 주으라

이 몸에 소망 무언가

어둔 죄악 길에서

약한 나로 강하게

십자가 군병들아

내 너를 위하여

예배자의 기도

그렇기 때문에

내가 아노라

항해자

정결

복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