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정해진 법과 규칙이 있어도 그것을 지키지 않거나 옳지 않게 적용할 때가 있으니 그것은 자기의 욕심과 유익을 위해서다. 또한 그 중 자기가 원하는 것만 뽑아내거나 혹은 바꾸어 자기의 뜻과 계획을 이루기도 한다. 마찬가지로 아버지의 일을 하되 자기의 목숨을 아버지와 양들을 위해서 내어놓지 않고 오히려 자기의 육적인 욕심과 명예를 위하던 목자들은 아버지께로 온 신령한 율법과 계명을 변경해 자기가 더하거나 빼서 만든 유전과 함께 지켰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백성들에게도 그것들을 열심히 지키라고 하며 이것이 바로 아버지의 말씀이라고 했다.

 

     그런데 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그 악한 마음을 품고 가만히 보니 성전으로 나오는 백성들의 수가 많아질수록 자주 나올수록 자신의 뜻과 계획이 더 빨리 잘 이루어진다는 것을 깨달았다. 고로 그들은 자신들이 이끌고 있는 성전을 참으로 소중히 여겼다. 그리고 거기서 열심히 제사를 행하며 오직 성전과 그 제사를 통해서만 율법이 이루어진다고 가르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유대인들은 율법과 예언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리스도를 맞이하기 위해 거룩에 애쓰기보다는 오로지 그 성전을 사모하는 열심만 있었다. 마치 전통에 속한 이방인들이 예배를 위해 모이는 장소를 교회라고 칭하며 교회와 목자를 잘 섬기면 복 받는다고 생각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였다.

 

     그러나 교회라는 것은 그들이 모이는 곳이 아니요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를 맞이하고자 불의와 죄악이 가득한 이 헛된 세상에서 마음을 돌이킨 후 그 깨끗한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와 함께하며 거룩을 이루고자 애쓰는 지체들이며 그 죄를 회개하고 거룩하게 하나된 그들의 안에 아버지께서 임하시니 그들의 몸과 연합이 곧 성전이다. 또한 그 건물에 들어가므로 거룩의 복을 얻는 것이 아니요 먼저 거듭나야 영원한 형벌에서 벗어나 영의 생명을 얻고 거듭난 자가 육신의 기회가 있을 때 두렵고 떨림으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야 거룩하고 영광스런 육체를 입게 되니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복이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소망이다.

 

     하지만 전통에 거하며 율법과 행위의 복음에 묶여있는 자들은 자신이 성전과 교회라는 것을 모른다. 알아도 거룩을 모르면 건물이 교회가 아니요 믿는 자가 성전과 교회란 말은 하되 정작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로서 의롭고 거룩하게 되어야 함은 깨닫지 못한다. 깨달아도 자신의 마음을 육과 세상에서 돌이키지 못하면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애쓰지 못한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때에는 그것을 알아서 말하는 자들은 있어도 거룩에 애쓰는 자들은 적다.

 

     마찬가지로 유대인도 성전을 들락날락하며 드리는 제사와 또한 그 변경된 것을 지키므로 거룩해져 그 생명의 복을 얻는 것이 아니다. 오직 그리스도를 의지해 신령한 율법을 지키는 그 의롭고 거룩한 자의 몸 안에 아버지께서 거하시니 그가 곧 성전이 된다. 그리고 성전 된 그가 산 제사를 드린 후 그리스도의 부활 후 그 생명에 이르니 그들이 바로 그리스도전의 선지자들이었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독사의 자식들에겐 진리의 깨달음을 주시지 않으신다. 혹시 주셔도 그들 스스로 그것을 거부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당시의 목자들은 율법이나 계명이나 거룩이나 성전이나 제사나 진리 같은 말들을 입에 늘 달고 있었으나 정작 그 뜻을 모르고 전하며 행하고 있었다. 이에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무얼 위하여 그렇게 성전을 소중히 여기며 빠짐없이 제사를 행하고 있는지 그 마음을 아셨기에 수고한다거나 상급이 있으리라 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악한 마음에서 돌이켜 거룩에 애쓰라고 하셨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의 마음을 돌이키길 원치 않았다. 오히려 그들의 눈에는 그리스도가 믿거나 따를만한 대상이 아니라 반드시 없어져야 할 존재로 보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이미 고소할만한 것들을 다 준비하고 이제는 인자를 잡고자 안식논쟁을 일으켰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악한 자들이 변경한 율법과 유전으로 자신을 붙들고자 하는 그들에게 먼저 다윗의 이야기와 더불어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허물이 없다는 말씀을 하셨다. 그리고 나서 이 말씀을 허락하셨으니 그 의미는 이것이다.

 

     우선 율법과 계명의 정신은 아버지를 자신의 마음과 몸과 정성과 뜻과 목숨까지 바쳐 사랑하며 그와 같이 다른 영혼들을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자는 십자가의 길에서와 끝에 그것을 다 이루셨다. 그러므로 십자가 후로는 유대인도 이방인도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남의 은혜를 얻고 거듭난 영혼들 가운데 자기의 힘만으로 율법과 새 계명을 이룰 수 없다는 약함을 인정하고 오직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께로 나와 주님을 따르며 의지하는 자들만이 그것을 이룰 수 있다.

 

     한편 그리스도 전의 유대인들은 그것을 지켜야 생명에 이른다는 것을 이미 뱃속에서부터 들어서 알고 있으니 어려서부터 그것을 자기의 힘으로 지키고자 애쓴다. 하지만 사람의 힘으로 그것을 다 이루지 못함을 깨닫는 자는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율법을 주신 그리스도께로 나온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는 그 삶을 얻고자 하는 그의 간절한 마음을 보고 도우시니 그는 그 부족한 부분을 이루고 거룩과 영광의 삶을 얻는다. 그러므로 그들이 바로 구약의 선지자들이었다. 그러나 눈으로 자기 열조의 우상들을 사모하는 유대인은 육의 욕심과 세상의 영광을 위해 거룩을 버리니 그는 오직 그 변경된 율법과 유전을 열심히 지키며 성전의 뜰만 밟는다.

 

     이와 같이 율법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지되 전통에 거하는 자들은 성전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알고 있었다. 이에 그리스도께서는 그곳에 있는 모든 자들에게 오직 인자가 율법을 완성시킨다는 것을 알리기 원하셨다. 그리하여 인자가 율법을 이루는 자임을 뜻하여 자신이 그 성전보다 위에 있다는 의미의 말씀을 허락하신 것이다. 그러나 성전의 목자들은 마음이 다른 곳에 있었으니 그것을 끝까지 깨닫지 못했다. 또한 인자를 자신의 뜻과 계획을 이룰 수 있는 그 성전을 허무는 자로 보고 오히려 그리스도를 잡아죽이고자 했다.

 

     그러나 살고자 하는 갈급한 영혼들은 그 깨달음을 얻게 되니 오직 지성소에 있는 법궤와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며 믿음을 얻는다. 그 이유는 구약의 짐승의 피가 뿌려지는 그 법궤 안의 십계명과 만나와 싹튼 지팡이의 모든 의미를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십자가와 부활로 다 이루셨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비밀을 깨달은 자들은 이 마지막 때에도 그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오직 그리스도를 따라 아버지께서 사람에게 정해주신 그 거룩의 길을 걷고 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성전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