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남자의 책상 위에 모니터와 스피커와 자판이 있었고 책상 밑에는 컴퓨터가 있었다. 그런데 그는 자기의 장갑을 늘 컴퓨터 위에다 보관했다. 그러므로 그가 밖에 나가서 일하고 들어오더니 장갑을 벗어서 자기의 딸에게 주며 말하길 아빠컴퓨터 위에다 좀 갖다 놓으라고 했다. 하지만 그 아이는 아빠의 장갑이 컴퓨터 위에 올려져 있는 것을 본적이 없었다. 게다가 그 책상 위에 있는 모니터와 스피커와 자판을 보고는 순간적으로 책상을 컴퓨터라고 생각했다. 그러므로 그 아이는 아빠의 장갑을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자 그는 책상 위가 아니라 책상 밑에 있는 컴퓨터에다 올려놓으라고 했다. 이에 그 아이는 ‘아!’하며 즉시 아빠가 시킨 대로 했다. 그리하여 아빠와 그 딸아이는 영원히 행복하게 함께 살았다.

 

그러나 아빠가 아이에게 충분히 설명해줘도 또한 컴퓨터 위에 놓여있는 장갑의 모습을 보여주어도 그 아이가 만일 자기의 생각을 내려놓지 않고 아빠에게 들은 말대로 하지 않거나 혹은 오히려 아빠에게 책상이 컴퓨터라고 주장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그러므로 사람들은 흔히 말이 안 통한다고 말한다. 또한 상대방이 한 말의 뜻을 알아들어야 상대가 원하는 행위를 할 수 있다. 하지만 만일 서로간에 말이 계속 통하지 않으면 더 이상 대화를 지속할 수 없고 또한 말의 뜻을 깨닫지 못하면 서로가 원치 않는 행위를 하다 결국 그들의 관계는 끊어져버린다. 이처럼 말은 인격체간의 관계를 올바르게 유지시켜주는 참으로 중요한 도구다.

 

그런데 아버지도 사람도 인격체이니 영은 그 둘의 관계를 올바르게 유지시켜주며 또한 그것이 곧 생명의 기준이니 영의 뜻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고 하셨다. 하지만 영의 의미를 올바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의 부모가 죽었을 때 장례를 치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도 아니니 그는 아버지와의 관계가 끊어져가고 있다. 마찬가지로 세상에 평화가 아니라 검을 주러 왔다는 말씀을 깨닫지 못하면 모든 종류의 전쟁은 그리스도 때문에 일어난다고 생각하거나 자기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려니까 원수마귀가 불신가족들을 통해 시험과 핍박을 준다며 자신은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불신가족의 핍박을 이기고 그들을 전도하라고 가르침을 받는다.

 

그러나 자기가 낳은 자식들이 서로 사랑하며 의좋게 지내기보다 서로가 미움과 욕심으로 싸우기를 바라는 부모가 세상 어디에 있으리요? 하물며 영원한 셋째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어떠하시리요? 그러므로 심령이 가난한 자들은 영의 의미를 깨닫고 싶어하되 이미 사망으로 들어간 원수와 그 선악을 따라 말과 행위를 하는 자들은 말씀을 보며 늘 자신의 생각과 경험대로 이해한다. 결국 누구든지 진리가 아닌 것을 전하는 자들을 따르는 것은 이미 자신의 안에 자신의 이익만을 구하는 악한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자기의 이익과 앉은 자리를 위해 자기의 생각으로 말씀을 바꾸는 그 악한서기관들을 통해 자신처럼 악한 마음을 가진 자들을 위해 처음부터 거짓말한 원수가 변경한 것이니 실제로 기록되었던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다는 이 예언은 허무한 세상에 거하다 거듭나 이제는 자신을 따를 수 있게 된 제자들을 향하여 주신 것으로 그 본래의 기록은 이것이다. “그리스도가 이 땅에 온 것은 와서 그 원수와 화평코자함이 아니니라. 또한 세상에 심판을 내리기 전 원수가 이끌어가고 있는 이 불의하고 죄악된 세상에서 오로지 사람들을 살리고자 온 것이니라.”

 

그리스도께서는 이 말씀에 따라 자신이 먼저 모범을 보이셨다. 즉 세상과 평화를 이루지 아니하므로 원수와 평화를 이루지 않으셨다. 구체적으로 공적인 사역을 시작하실 때 원수가 주는 그 시험들을 이기므로 육의 욕심과 필요를 취하지 않으셨다. 또한 세상의 영광을 조금도 따르지 않으셨다. 그러다 마지막에는 세상을 구하고자 의롭고 거룩한 자신을 실제로 십자가에 내주셨다.

 

그러나 자신을 그리스도의 제자라며 목자의 일을 하되 원수가 누구에게나 주는 세 가지 시험을 이기지 못하고도 혹은 오히려 그것을 위해 사역을 시작한 자들이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일을 통해 육의 필요와 욕심을 채우며 세상이 주는 영광을 좇게 된다. 그리고 그들이 세상과 평화를 이룬 잘못된 상태에서 돌이키지 못하는 것은 그 장갑을 끝까지 컴퓨터가 아닌 책상 위에 놓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목자라는 자가 원수와 화평치 않으신 그리스도를 밝히 보고도 세상과 평화를 이루고 있다면 그의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 또한 그가 누구의 제자인지 쉽게 알 수 있다.

 

둘째 살고자 하는 마음과 갈급한 마음을 가지고 사망으로 들어가고 있는 세상에서 나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자신의 제자들에게만 허락하신 말씀으로서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는 그 예언의 뜻은 이것이다.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자신의 애비와 애미에게도 얽매이지 말 것이며 아들과 딸에게도 얽매이지 말지니라. 또한 한 사람과 한 사람의 영혼을 서로 얽매거나 얽매이지도 말 것이니라.”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이 먼저 이 말씀대로 자기의 어미를 자신이 원하는 곳으로 가자고 얽매지 않으셨고 또한 어미가 원하는 곳으로 가자는 그 얽매임에 자신도 묶이지 않으셨다. 자신의 육적인 동생들과도 마찬가지셨다. 사람에게 얽매이면 그 죽음과 생명의 길을 걷지 못하기 때문이요 상대를 얽맨다고 그가 그 길을 걷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도께서 자신이 먼저 이 말씀에 모범을 보이신 것은 오직 그 기쁘신 뜻을 위해 아버지께서 자신에게 정해주신 그 선하시고 의로우신 십자가의 길을 걷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 말씀은 예언이니 교회시대의 모든 제자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그러므로 말씀에 기록되었듯이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따르려거든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셨다. 자신을 부인한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의와 모든 결단과 모든 재산을 내려놓고 오로지 그리스도만을 향하여 달리는 것이며 십자가는 자신의 살과 피를 드릴 그 도구이니 진다는 것은 그 도구를 자신의 마음속에 두고 좇아가는 것이다. 그리하여 자신이 그리스도께 합당한지 아닌지는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졌는지 혹은 그런 진실한 마음이 자신에게 있는지 없는지를 보면 스스로 알 수 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