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나라의 안에 어떤 지역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고 어떤 지역에는 사람의 수가 적다. 보통 도시로 가면 사람들의 수가 많고 시골이나 변두리는 적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당시에도 어떤 마을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았고 어떤 마을에는 적은 수가 살았다. 그러므로 예루살렘은 지금과 같이 말하면 사람들의 수가 가장 많은 서울과 같았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에는 원수의 말을 듣고 말하며 행하는 악한 자들로 인하여 반드시 질서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백부장이라는 위치는 그 수가 백명인 마을을 대표하며 책임을 지는 자이다. 하지만 백부장이 다스리는 마을이라 하여 그 마을에 꼭 백 명이 거하는 것이 아니요 그 마을의 명부에는 백 명 정도만이 기록되어 있어도 기록되지 않은 수가 있다. 또한 어떤 백부장에게는 50명이 더해지기도 하고 어떤 백부장에게는 30명을 더해주기도 했다. 그러므로 백부장이 다스리는 마을의 사람수는 대개 그 수가 100명보다 훨씬 더 많았다. 

한편 당시의 유대인들은 지금과 같은 군대가 아니었으니 악한 자들이 쳐들어오면 성인의 나이인 12세 이상의 남자는 누구나 나가서 함께 싸웠다. 그러므로 백부장과 천부장은 행정적인 책임과 더불어 군사적인 책임과 권세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른 자들에게 위협을 당할 수도 있으니 자신의 안전을 위하여 자기의 주변에 칼을 든 종들을 두고 다녔으며 밤에는 칼 든 그 종들이 밤새워 그들을 지켰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하시어 백부장들과 천부장들로 하여금 그 어떤 두려움이나 타협이 없이 한 마을을 의롭고 정직하고 안전하게 또한 백성들을 아끼며 사랑으로 다스리게 하셨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그들이 야곱으로부터 12지파를 이룬 후 이집트에 있을 때에도 또한 광야에 있을 때에도 자기의 목숨을 바쳐 백성들을 위해 일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 때에도 지금과 같이 그 자리에 앉아 백성을 위해 선하게 다스리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욕심과 명예만을 구하는 자가 있었다. 그러므로 그러한 자들은 자기의 목숨을 내어놓고 다스리기 위함이 아니요 오직 자신들에게 있는 부유한 것을 다른 자들에게 보여주며 또한 자신이 앉은 그 자리가 합당하다는 것을 알리기 위한 마음을 가지고 종들을 데리고 다녔다. 그러므로 그런 마음을 품고 그 자리에 앉아있는 자는 입술로는 백성을 위한다고 말하며 돌아다녔지만 늘 백성들을 속였다. 그래야 자기의 자리를 지키며 그 자리를 통해 자기의 유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똑같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당시에 가버나움은 두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가버나움으로 들어가셨을 때 나온 그 백부장은 가버나움의 그 두 백부장 가운데 한 영혼이었다. 그 영혼은 성품이 선하였고 또한 다른 영혼을 늘 불쌍히 여기는 자였다. 그리고 자기의 종이라 하여도 자기의 종같이 여기지 아니하고 늘 한 가족으로 여겼으니 그들에게도 늘 공평하게 나눌 것을 나누어주었다. 또한 항상 자신만을 위하지 아니하고 온 가족과 또한 온 종들을 위하여 애쓰는 자였다. 

하지만 그 백부장의 종들 가운데 한 종이 중풍이라는 병에 걸려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병은 자신의 마음을 이미 원수에게로 빼앗겼기에 원수는 그 두 번째 단계인 육체의 기능을 자신이 잡으려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한번 육체에 어떠한 충격이 올 때에 그 한 부분과 또한 다른 한 군데를 잡으니 그 병에 걸린 자는 그 잡힌 부분을 이용하지 못한다. 그리하여 원수는 자기가 원할 때마다 그 부분을 이용하여 그가 끝까지 아버지께로 나가지 아니하고 오히려 부인하게 하는 것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그 피를 의지해 아버지께로 나가 자신의 죄와 범한 허물들을 회개하면 아버지께서는 그의 육체 안에 군데군데에 죽은 피가 머물러있어 다른 피를 그 육체로 퍼지지 못하게 막고 그 죽은 피를 종들을 통해 거두어주신다. 그러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죄를 회개하고 돌이킨 자는 그 피가 이제는 원래처럼 온몸을 돌게 되니 그 병에서 온전케 된다. 

그런데 자식들이 악한 부모를 보고 자라며 따르면 그 자식들도 악해져 서로간에 원수가 되듯 악한 지도자의 밑에는 반드시 악한 종들이 들어가 서로를 헐뜯고 끌어내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그 반대는 반대다. 그러므로 그 선한 백부장의 종들 가운데 한 명이 그리스도의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그 종은 그 병에 걸려 자기의 옆에 있는 그 종이 그 병에서 일어나길 원했으니 자기의 주인에게 그리스도의 이야기를 전했다. 

그것을 들었을 때 그 주인은 늘 선한 마음이 있기에 유대인으로서 자신이 기다리던 그리스도의 앞에 나와 그 마음을 속죄의 권위가 있는 그리스도의 앞에 내어 놓았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그 백부장의 선한 마음을 이미 알고 계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 백부장의 마음을 보시고 그에게 아버지의 그 뜻이 담긴 복된 말씀을 허락하시므로 그가 생명을 얻었고 또한 그의 종도 영만이 아니라 육의 구원도 얻었다. 즉 그 병으로 인하여 누워있던 그 종도 자기의 주인에게 아버지의 뜻을 전해 듣고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믿고 자신의 그 죄와 허물들을 돌이켰기에 영이 거듭나는 그 은혜와 육의 깨끗함도 얻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그 백부장을 향하여 말씀하신 이만한 믿음이라는 것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다. 첫째로는 그 영혼이 자기의 핏줄이 아닌 종을 살리고자 하는 그 선한 마음을 뜻하는 것이다. 둘째로는 자신이 다른 누구에게로 가지 아니하고 가장 먼저 그리스도께로 나와 그 영혼을 맡기었으니 그것에 대한 마음과 믿음을 뜻한 것이다. 당신의 마음 안에 이만한 믿음이 있는가? 

“예수께서 들으시고 기이히 여겨 좇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스라엘 중 아무에게서도 이만한 믿음을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