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는 생명이 있는 흙과 물로 동물의 육과 육신의 혼을 창조하시고 오직 한 번의 삶을 주셨으나 거룩한 영은 주시지 아니하셨다. 그러므로 동물도 생각을 하며 먹고 마시고 배설하면서 한 평생 육신적인 활동을 하다 아버지께서 정하신 수명을 다하면 육과 혼이 다시금 자신이 왔던 흙과 물로 돌아가니 영원히 살지는 못한다. 그러나 어리석은 자들은 욕심과 교만을 품고 선악을 창조한 후 끝까지 돌이키지 못하여 셋째하늘에서 쫓겨난 원수의 말과 생각을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우주가 우주를 낳았으며 자연이 곧 하나님이요 산의 정상은 하나라도 거룩에 이르는 길은 여러 가지라고 주장하며 모든 생명은 삶과 죽음을 반복한다고 믿는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그런 무질서하고 불완전하고 우연한 창조계획을 세우시지 아니하셨으니 동물에게도 사람에게도 육의 죽음을 오직 한 번으로 정하셨다.

 

한편 아버지께서는 아담도 깨끗한 육과 혼으로 지으셨으나 짐승과는 달리 그의 코를 통해 생기를 불어넣어주셨다. 즉 죄가 없이 선하게 지음을 받은 둘째사람은 혼과 더불어 거룩한 영이 있기에 인격체요 영원히 소멸되지 않는 영혼은 아버지께로 영생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육체를 가진 인격체와 형체를 가진 인격체(천사)에게는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귀한 것이 바로 자신의 영원한 생명이다. 그리하여 중생 후 이것을 깨달은 영혼들이 자신의 썩어질 몸을 이용해 마음과 영혼의 거룩을 이루고자 자신의 생각에서 돌이키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진리에 순종함은 한 번 정해진 그 육의 죽음 후에 아버지께로 얻게 될 그 거룩한 몸에 대한 믿음과 소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중에 자기의 영혼이 입고 영원히 살게 될 그 새 옷을 위해 자기의 안에 있는 영혼을 염려하며 거룩을 이루어가기보다 오히려 오늘의 의복을 염려하며 그 헌 옷을 아름답게 치장하는데 자기의 온 맘과 정성을 다한다. 또한 진주는 값없는 돌로 여겨서 버려버리고 대신 헌 옷을 가꿀 수 있는 돌을 취해 깊은 곳에다 숨겨놓는다. 그리하여 어리석은 자들은 소중한 영생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짐승과 같이 여겨 한 평생 육만 돌보다 목숨을 마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거룩을 이루시고자 사람과 같은 연약한 옷을 입고 이 땅에 오셨으며 또한 십자가에서 그 옷을 찢어 거룩을 완성하셨으니 거듭난 자들이 약속으로 받은 그 은혜에 감사하며 이제는 순례자의 그 길을 걸어 그 영광의 자유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거하는 자들이 자신은 지금 나그네의 길을 걷고 있으며 이 세상에 순례자로서 잠시 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도록 몸이 의복보다 중하다는 말씀을 베푸신 후 이제는 인격체들이 이성을 가지고 더 깊이 생각하고 깨달은 후 돌에 간 마음을 돌이키도록 이런 뜻의 말씀을 허락하셨다.

 

사람들은 집안에 있다 외출할 때에 자기가 만나게 될 사람을 위하여 자기의 앞모습은 상당히 신경을 쓰며 그가 이리저리 거울을 보면서 꾸미지만 뒷모습은 예민하게 여기지 아니하며 별로 잘 꾸미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그저 한 번 혹은 두 번 정도 간단히 털거나 쓰다듬고 마친다. 하지만 사람은 앞모습만을 보고는 판단할 수 없으니 그의 뒷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성품이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썩어가는 몸만 신경 쓰고 영혼의 생명은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자들은 아버지께서 그 들판에 베풀어두신 지혜로 아름답게 자라나는 백합화를 보고도 그 영광을 깨닫지 못하니 일만 악의 뿌리에서 나오는 그 썩어질 열매를 더 많이 맺고 싶어하되 두 장의 팬티를 껴입는 자와 하루에 네 끼를 먹는 자와 이 집에서 자다 일어나 새벽에 깨어 저 집으로 옮겨가 잠자는 자는 이 세상에 한 명도 없다. 또한 이 세상의 영광을 얻었다 곧 잃어버리는 자들을 보며 세상의 영광이 헛되고 헛된 것임을 알아도 잠시 후 잃을 것을 끝까지 좇아가다 귀한 생을 마친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도 입히시니 거듭나 하나님의 거룩한 자녀들이 될 그 약속을 받은 영혼들을 더더욱 입히시지 아니하시겠는가? 그러나 들에 핀 백합화를 아무리 보아도 보지 못하고 아무리 들어도 듣지 못하는 자들은 거룩에 애쓸 수 있는 그 소중한 병기를 이용해 오히려 육과 세상을 좇아가니 인침을 받았어도 자신을 들풀처럼 여기는 자들은 거룩에 이르도록 주신 오직 한 번뿐인 인생을 허비해버린다. 그리하여 오직 자기의 의복만을 염려하며 가꾸는 동안 자기의 뒷모습은 전혀 꾸미지 않는 자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그의 뒷모습만이 아니요 그가 꾸몄던 앞모습까지도 서서히 더럽혀지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할례 받은 유대인과 거듭난 이방인에게는 공히 생명나무의 열매를 언약으로 주셨으니 선한 양심을 끝까지 간직한 영혼들은 단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소중한 육체를 눈에 안 보이는 자기의 뒷모습을 꾸미는 병기로 이용한다. 그러므로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뒷모습도 점점 더 거룩해지며 인자의 재림 전까지 그의 온 영과 혼과 몸이 하나님을 모시는 성전으로 완성된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인자의 살과 피를 의지하며 진리에 순종해 거룩을 이룬 자가 잠시 입고 있던 그 헌 옷을 벗고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섰을 때에 그 영광스런 하얀 새 옷으로 갈아 입혀주시는 것이니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 가장 먼저 부활하신 하나님의 아들을 보라!

 

이처럼 아버지께서는 모든 영혼들의 앞모습과 뒷모습을 공평하게 꾸미시어 이 세상에 보내셨으되 그가 그 깨끗한 모습으로 나갔다가 비록 원수의 죄세상으로 인하여 잠시 더럽혀졌다 할지라도 자신의 마음과 믿음을 아버지의 뜻에 두고 거룩에 애를 써 다시금 깨끗하게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살고자하는 마음을 가지고 십자가를 지고 가며 거룩함과 정결함에 애쓰는 자들은 은혜를 받은 영혼들이요 교만한 자들은 행여 육과 세상을 바라지 않을지라도 아들을 통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의를 따르며 인간의 노력과 수행으로 거룩을 이루고자 하니 은혜를 받은 자 외에는 많은 자들이 돌아갈 때는 앞모습과 뒷모습이 함께 더러워진 상태로 그리스도의 심판대에 서게 된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