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께서는 사람에게는 짐승과 달리 영을 주셨으니 사람은 인격체요 영원한 생명이 있다. 그러므로 인격체에게 그것은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 귀한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중에 자기의 영혼이 영원히 입게 될 그 거룩한 육체를 얻기 위해 자기의 안에 있는 영혼을 염려하며 그에 맞는 목적을 이루며 살아가기보다는 오히려 썩어져 버릴 옷을 위해 염려하며 그 옷을 아름답게 치장하는데 온 마음과 몸을 다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진주는 값없는 돌로 여겨 버리고 대신 돌은 취한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이 순례자의 길을 걸어 그 생명에 이르기 원하신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거하는 사람들이 자신은 지금 나그네길을 걷고 있으며 이 세상에 순례자로서 잠시 거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는 말씀을 주셨다. 그리고 이번에는 인격체들이 더욱더 깊이 깨닫고 돌에 간 마음을 돌이키도록 그 말씀을 더 설명해주신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외출을 할 때에 자기가 만나는 사람을 위하여 자기의 앞모습은 상당히 예민하게 여기며 그가 이리저리 거울을 보며 꾸미되 뒷모습은 예민하지 아니하니 잘 꾸미지도 아니한다. 그저 한두 번 간단히 쓰다듬고 마친다. 하지만 사람은 앞모습만 보고는 판단할 수 없으니 그의 뒷모습을 보면 그 사람의 성품이 나타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영원한 영혼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 자는 들판의 지혜로 자라는 들의 백합화를 보고도 깨닫지 못하여 일만 악의 뿌리에서 나오는 그 열매를 많이 맺고 싶어한다. 이 세상의 영광이 헛된 것임을 알지만 그 헛된 것을 얻고자 좇아간다.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풀도 입히시는 아버지께서 사람은 더더욱 입히실 것을 알지만 믿지 못하니 끝까지 육과 세상을 좇는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오직 자기의 의복만을 염려하는 동안 그로 인하여 자기의 뒷모습은 전혀 꾸미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간이 흐르면서 그 뒷모습과 함께 그가 꾸몄던 앞모습도 서서히 더럽혀지는 것이다. 

 

     그러나 말씀의 깨달음을 얻은 자는 아버지의 그 뜻을 이루어가므로 보이지 않는 자기의 뒷모습을 꾸민다. 그러므로 시간이 지나며 그가 입은 의복도 함께 점점 더 깨끗하고 의로워진다. 그리하여 아버지께서는 그가 잠시 입었던 그 의복을 벗고 심판대에 섰을 때는 그 영원한 의복으로 갈아 입혀주시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모든 영혼들의 앞모습과 뒷모습을 공평히 꾸미어 이 세상에 내보내셨으되 그가 그 깨끗한 모습으로 나갔다 다시금 깨끗하게 돌아오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살고자 하는 마음과 거룩의 믿음을 가지고 아버지의 뜻에 애쓴 사람 외에는 많은 사람들이 돌아갈 때 앞모습과 뒷모습이 함께 더러워진 상태로 돌아간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