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비가 일주일 동안 낯선 곳으로 여행을 다녀오게 된 자식들에게 이러한 말을 해주었다. “여행가서 낯선 사람이 주는 음료수를 마시거나 쓸데없는 곳에 들르거나 물건들 잔뜩 사오지 말고 할 일을 마치면 곧장 집으로 돌아오너라.” 그 아비는 이렇게 말하고는 여행에 꼭 필요한 만큼의 돈과 단 한 벌의 옷을 입혀서 돕는 종들을 함께 딸려 보냈다. 세 자녀들은 드디어 여행지에 도착해 이것저것을 구경하다 첫째는 아비의 말을 기억하고 아비가 챙겨준 일용할 양식을 먹고 마시며 함께 간 종의 도움을 받아서 자기가 해야 할 일에 열심을 냈다. 그러므로 첫째는 자기가 이루어야 할 일을 다 마친 후에 아비를 위한 작은 선물 하나를 준비해 곧장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둘째는 그 낯선 여행지를 보더니 이곳은 너무 좋다면서 여행지에서 살고 싶어했다. 또한 어떤 남자가 준 음료수를 받아 마신 후 자기의 소중한 몸을 그에게 맡기고 신기하다며 음란한 곳을 돌아다녔다. 또한 아비가 준 일용할 양식에 만족하지 못하고 그 여행지에서 돈 벌고 집 사고 새로운 물건들을 하나씩 둘씩 모으며 더 큰 것으로 바꾸는 기쁨을 누렸으나 점점 더 허무함에 빠져들었다. 둘째는 그렇게 자기의 옷을 위해 마음과 몸을 다했으니 나중에는 그 여행지에 쓸모 없는 것들을 잔뜩 쌓아놓을 수 있었다. 그러나 어리석고 헛된 욕심을 이루느라 정신이 팔려서 정작 자기가 여행지에서 이루어야 할 일은 시작도 못했고 마음은 허무로 가득 찼다. 게다가 자신이 돌아갈 고향과 자기의 아비까지 마음에서 잊어버렸으니 둘째를 돕기 위해 함께 갔던 종은 아비의 뜻을 위해 아무런 일도 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둘째는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했으며 그로 인해 사랑하는 아버지와 형제자매들의 얼굴을 다시는 볼 수 없었다. 반면 셋째는 그 낯선 곳에서 자기가 해야 할 일을 시작은 했으나 둘째처럼 자기의 옷에 모든 정성을 다 쏟았으니 시작한 일을 마치지 못했다.

 

이와 같이 낯선 곳에 여행을 갔을 때 그곳에다 곡식을 쌓아두는 사람은 없다. 만일 낯선 사람이 건네준 음료수를 마시고 그것에 취하면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악한 자들에게 다 빼앗긴다. 음란한 세상을 보고 처음에는 놀랍고 신기하지만 그 음료수의 힘을 얻어 점점 더 음란을 담대하게 즐기게 된다. 또한 낯선 여행지에 잠시 일을 보러 갔다 이삿짐과 같은 많은 짐들을 모아 고향으로 돌아오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몇이나 있으리요? 그러므로 여행을 떠난 사람은 낯선 곳에 가서 오로지 자신이 해야 할 일만 마치고 돌이켜 고향으로 속히 돌아오는 것이 지혜요 당연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낯선 곳을 자기의 고향이라고 생각하며 곡식을 쌓아두거나 많은 짐들을 구하고자 애쓴다면 그는 헛된 것에 소중한 시간을 빼앗겼으니 자기가 여행을 떠난 목적을 이루지는 못한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하며 그리하여 자기부모와 형제자매를 다시는 만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혼을 주시고 한 번은 죽어야 할 육을 입히시어 이 세상에 보내셨으니 사람들이 공평하게 받은 오직 한 번뿐인 인생을 사는 동안 사람과 같은 옷을 입고 이 땅에 오셨던 우리의 유일한 구주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를 보며 깨닫기 원하시는 것이 있으시니 그것은 바로 이것이다. 이 땅은 오로지 나그네길이요 사람은 순례자임을 기억하길 바라신다.

 

아버지께서는 또한 참으로 그 영혼들을 나그네로서 이 세상에 보내실 때에 아버지께서 하늘에 쌓아놓으신 그 거룩한 육체를 믿고 영광의 자유를 소망하며 그 낯선 곳에서 오직 거룩을 이루고 돌아오길 원하신다. 하지만 아버지의 뜻을 이루려면 그가 육의 생명이 있는 동안에 육신의 삶에 필요한 기본적인 것들이 있어야 하니 먹을 것과 마실 것과 누울 곳과 더불어 목숨이 붙어있어야 한다. 하지만 욕심을 부리며 원수의 말을 듣고 원수를 따라 어두운 세상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아버지께서는 그들이 돌아올 때까지 오직 필요한 만큼만을 육과 영에 일용할 양식으로 늘 제공하신다.

 

그러나 거듭난 자라도 이것을 믿지 못하는 자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방인처럼 세상에 들어가 헌 옷만을 위해 살다 돌아가고 심지어 믿는 자라도 원수에게 자신의 마음을 내어주고 원수의 말을 듣는 자들은 먹을 것을 걱정하며 자신만 죽는 것이 아니요 가족의 목숨도 자신이 끊기도 한다. 그리하여 말씀은 원수를 짐승이라 칭하는 것이니 사람이 양심과 이성이 있을지라도 원수의 말을 들으면 짐승보다 못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또한 자신이 순례자임을 깨닫지 못하는 자는 마지막에 사망으로 들어갈 이 헛된 세상으로 들어가 썩어질 것을 모으는데 마음과 몸을 다할 수밖에 없으니 그는 인생의 목적을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니 십자가의 첫사랑을 잃고 썩어질 것과 헛된 곳에 마음을 빼앗긴 자들에게 어찌 아버지께서 사람이 사는 이유를 알려주시리요? 알려주셔도 오히려 스스로 거부한다.

 

한편 양심이라는 말을 사용해도 창조자와 영원한 생명을 구하지 않는 자들이 있으니 그것은 선한 양심이 아니다. 이런 자들은 살고자하는 마음이 없으니 예를 들어 시장에 가 이거 얼마냐고 묻지만 자신에게 안 맞으면 쉽게 뒤돌아 설 정도로 아버지께서 주시는 영생을 가볍게 여긴다. 그러므로 아무리 과학을 파도 철학을 파도 종교를 파도 사람이 사는 이유를 깨닫지 못한다. 게다가 양심을 말하며 오히려 독주를 마시는 자들은 교만이 하늘을 찌르니 인자의 살과 피를 거부하고 인간의 가르침과 수행으로 거룩을 이루고자 노력한다. 그러므로 그들은 우주가 우주를 낳았으며 자연이 하나님이라 주장하되 그들이 부르며 섬기는 아버지는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가 아니요 셋째하늘에서 독주를 빚고 쫓겨난 원수요 그들이 믿는 아들은 원수와 함께 타락하고 쫓겨난 종들이요 그들이 말하는 성령은 그리스도께 받은 심판에 불만을 품고 무저갱에서 올라와 사람들에게 생각을 주며 비 진리와 세상으로 이끄는 흑암의 세력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아무리 아버지 예수님 성령님을 말하며 사람은 영과 혼과 육으로 된 존재라는 것을 알아도 거룩을 이루지 못하되 오히려 자신의 마음에서 떠오르는 생각을 따르며 원수와 함께 영원한 형벌의 사망으로 들어간다.

 

그러나 거듭난 후 선한 양심을 품고 자기의 생각에서 돌이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아버지께서 입혀주시는 그 거룩하고 영광스러운 새 옷을 믿고 소망한다. 그러므로 그는 이 세상은 잠시 걷는 나그네길이요 자신이 순례자로서 목적을 가지고 이곳에 와 먹고 마시며 숨쉬고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 목적을 이루도록 썩어질 육체에 있어야 할 것들을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오직 필요한 만큼만 늘 제공해주시는 것도 믿는다. 그리하여 자신의 몸을 소중히 여기며 의를 따르는 자는 한 평생 헌 옷만을 위해 살다 떠나는 동물 같은 삶을 살지 아니하니 오히려 일만 악의 뿌리와 그 뿌리에서 맺은 썩어질 열매들을 버려 두고 자신과 같은 곳을 바라보는 거룩하고 정결한 지체들과 한 몸을 이루어 오늘도 모퉁이 돌 위에서 순례자의 그 목적을 함께 이루어가고 있다.

 

*순례자: 이 세상이라는 낯선 여행지에 육신을 입고 온 영혼이 하늘의 아버지께서 주신 인생의 목적인 거룩을 이룬 후 다시금 아버지께서 기다리시는 시간과 공간의 한계가 없는 그 거룩하고 영원한 셋째하늘로 돌아갈 자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생명의 근원되신 아버지와 그의 아들이시오 창조자이신 그리스도를 아는 자는 이 말씀을 안다면 이를 지키면 은혜와 유익이 있을 것이요, 아버지와 아들을 모르는 자는 말씀에 자신의 생명이 있으니 이 은혜를 입는 것이 유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