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1:16-18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람은 자신이 만날 사람에게 마음이 있으면 상대방에게 잘 보이기를 원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다른 사람을 만나기 전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아본다. 또한 자기가 만날 사람이 무엇을 원하는지도 미리 알아본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잘 준비해 그 사람을 만난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께서도 자신의 몸인 교회가 자신을 잘 맞이하길 원하신다. 그리고 교회도 자신의 마음이 그리스도께 있으니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를 잘 맞이하기 원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게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려주셨다. 또한 자신이 사람에게 무엇을 원하는지도 알려주셨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상징적인 모습으로 자신을 알려주셨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지체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그 상징적인 모습의 의미를 쉽게 깨달을 수 있다. 자신의 마음이 그리스도께 있기 때문이다. 반면 그리스도의 지체가 아닌 자는 그 상징의 의미를 전혀 깨닫지 못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하시어 오직 살고자하는 마음이 있는 자만이 그 상징을 깨닫도록 해주셨다. 그러므로 살고자하는 마음이 있는 자는 자신의 마음이 있는 그리스도에 대해 잘 알게 된다. 또한 그리스도께서 원하시는 것도 알게 된다. 그러므로 그는 자신의 신랑인 그리스도를 잘 준비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반면 살고자하는 마음이 없는 자는 자신의 마음이 다른 남자에게 가있다. 썩어질 육과 사망으로 들어가는 이 세상에 마음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자신의 마음이 다른 남자에게 있는 자는 그리스도의 상징적인 모습을 전혀 깨닫지 못한다. 그리고 깨닫지 못하니 그리스도를 맞이할 준비를 못하게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이 아버지께서는 각 사람의 마음이 원하는 것을 허락해주신다. 그리고 그 아버지의 계획으로 인해 사람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는다. 그러므로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게 하시는 아버지의 계획은 의로우시고 공평하시고 정직하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아홉 번째로 태양처럼 힘 있게 비취는 자신의 얼굴모습을 보여주신다. 1:16-17을 보자.

 

사람은 누구나 이 첫째하늘에 떠있는 태양을 볼 때 눈을 잘 뜨지 못한다. 또한 태양으로 조금만 더 가까이가도 그 뜨거움을 견디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군가 태양과 같은 그 빛과 열기를 가지고 자신의 앞에 서있다면 그 사람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전의 모세가 이와 같은 경우였다. 모세는 자신의 마음을 오직 아버지와 그리스도께만 두었다. 그리고 자신이 먼저 마음을 다해 그 거룩한 율법과 계명을 지켰다. 또한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에게 아버지의 뜻인 거룩에 애쓰라고 외쳤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께서는 모세에게 조그만 영광의 빛을 주셨다. 하지만 당시 이스라엘백성들은 모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지 못했다. 현재의 태양빛과 같은 그 적은 영광도 볼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모세는 백성들과 대화할 때는 자신의 얼굴을 수건으로 항상 둘러썼다.

 

하지만 현재 사람이 보고 있는 태양은 천년왕국 때 그보다 그 열 배로 밝아진다. 그리고 그 밝은 빛보다 100배로 밝은 것이 아버지의 영광 중 한 부분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현재의 태양보다 천 배가 되는 영광을 가지고 계신다. 그러므로 사람은 현재의 태양에도 눈을 잘 뜨지 못하니 그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고 살아남을 육체가 없다.

 

이러한 이유로 그리스도께서는 요한에게 계시를 주실 때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다. 그러므로 요한은 그의 육체가 마치 죽은 자와 같이 되었다. 그의 육체가 깊은 잠에 들도록 하셨던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영혼을 그의 육체 밖으로 꺼내시어 아버지의 영광을 조금만 보도록 해주셨다.

   

그러나 셋째하늘의 성소로 들어가는 거룩한 자녀들은 요한과 같지 않다. 그러므로 셋째하늘의 자녀들은 그의 영혼이 그의 거룩한 육체 안에 그대로 거한다. 즉 그리스도와 아버지의 얼굴을 뵙기 위해 죽은 자와 같이 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자녀들에게 영광을 받으시는 가운데 기쁨의 영광을 비추어주신다. 그러므로 성소에 모인 모든 자녀들은 의롭고 거룩한 기쁨으로 늘 충만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불의하고 죄악된 자들에게는 그 동일한 영광의 빛과 열이 기쁨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 태양의 유황불 못에서 자신의 죄에 맞는 고통을 당한다.

 

천년왕국에서 비취는 태양은 현재의 태양보다 그 빛과 열기가 10배이다. 하지만 그 빛과 열기는 아버지의 영광의 한 부분과 비교할 때 100분의 일도 채 안 된다.

 

그리고 마지막 심판 후 그 유황불 못은 더욱더 뜨거워진다. 하지만 아버지의 영광과 비교하면 그것은 적은 빛과 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의하고 죄악된 자들은 그 적은 영광가운데서도 고통을 당한다.

 

이와 같이 아버지의 영광이 거룩한 자들에게는 기쁨과 즐거움이다. 그러나 그보다 훨씬 더 적은 영광이 죄악된 자들에게는 고통으로 임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얼굴에서 해가 힘 있게 비취는 것을 모습을 통해 교회에게 주시는 깨달음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와 같은 영광을 거룩한 자들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영광에 대한 깨달음이 있으니 아버지의 뜻인 거룩에 애쓰고 있는 것이다.

 

거룩한 육체를 통해 나오는 빛에 대해 세 가지 비유로 깨달을 수 있다.

 

첫째 한 사람이 높은 산을 올라갈 때는 매우 힘이 든다. 하지만 그가 산꼭대기에 올라가면 그 아래에 세상의 충만한 것들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산 위에 있는 자신이 그 충만한 모든 것보다 더 으뜸이라는 마음을 가지게 된다. 그러므로 그는 산을 오르며 겪었던 모든 고난을 잊고 그 영광을 취하는 것이다.

 

이와 같이 교회가 걷는 십자가의 길은 힘들고 고난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그 마지막에는 영광을 비출 수 있는 거룩한 육체를 얻게 된다. 그리고 그 영광을 입고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만물 위에 서게 된다. 그러므로 그는 십자가의 길에서 겪었던 모든 고난을 잊고 그 영광을 취하는 것이다.

 

둘째 한 사람이 물속에 있는 물고기를 잡으러 큰물로 나갔다. 하지만 파도가 높고 심한 곳에서는 아무리 좌우로 그물을 던져도 잡히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는 더욱더 더 어둡고 깊은 곳으로 가게 된다. 하지만 어둡고 깊은 곳으로 나가니 두려움이 앞선다.

 

그러나 그 깊은 곳에다 그물을 던지면 많은 물고기를 잡는다. 그리고 그물을 끌어올릴 때는 자기의 수고를 다하게 된다. 또한 그물 올리는 수고를 할 때는 그물 안에 무엇이 담겨있는지 모른다. 그저 기쁨을 가지고 그물을 끌어올리게 된다. 그리고 다 그물을 끌어올렸을 때 조그만 것들은 다시 물로 넣되 큰 것만 취한다.

 

이와 같이 교회는 자기를 부인하는 두려움과 함께 육신의 고통을 향해 나간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길에서 자신의 온 마음을 다해 거룩에 애쓰게 된다.

 

하지만 사람들은 아버지의 뜻인 거룩에 애쓰는 것을 작은 일로 본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큰일과 많은 사람들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작게 보이는 일에 애쓴 자는 마지막에 의롭고 거룩한 열매를 많이 맺는다. 그리고 거룩에 이르렀으니 거룩한 육체라는 그 큰 영광을 얻게 된다. 그러므로 그가 큰 영광을 취하게 되는 것은 작은 것에 충성했기 때문이다.

 

셋째 사람은 이 첫째하늘에 있는 태양도 육신의 눈을 똑바로 뜨고 볼 수 없다. 하지만 가장 영광이 없는 육체도 태양보다 열 배의 밝은 빛이 나온다. 그러므로 누구든 그 작은 영광을 가진 육체도 눈을 뜨고 볼 수 없다.

 

반면 가장 영광스런 육체는 그리스도의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옷을 걸쳐도 태양보다 천 배의 빛이 그 옷을 뚫고 나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성소에서 문을 열고 뜰로 나오시면 모든 백성들이 머리를 들지 못한다. 모두가 오직 머리를 숙이고 있으니 그 영광이 가득하다.

 

이처럼 가장 적은 영광이라도 태양보다 열 배의 빛을 발한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가장 밝은 영광을 비추신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리스도보다 더 밝을 수는 없다. 그러므로 교회는 태양보다 열 배에서 천 배가 밝은 빛 사이에서 그 빛의 밝기가 정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거룩한 자녀들은 그 영광으로 인하여 죽은 자와 같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즉 그리스도와 아버지의 얼굴을 마주대할 때도 그의 영혼이 그의 거룩한 육체 안에 계속 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버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그리스도와 자녀들이 얼굴과 얼굴을 대하도록 계획하셨다.

 

우선 아버지께서는 모든 자녀들이 성소로 모일 때는 자신의 영광스런 빛을 가리신다. 그리고 이렇게 자신의 빛을 가리는 것은 그리스도와 그 형제자매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모든 자들이 영광을 가린 상태에서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여 보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은 지성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므로 장자들이 지성소에 모일 때도 모두다 빛을 가린다.

 

또한 아들이 딸에게 교훈을 할 때도 빛을 가린다. 그리고 딸이 백성들에게 말씀을 전할 때도 그 영광을 가린다. 그러므로 백성들도 자녀들의 그 얼굴을 보며 말씀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백성들은 자녀들의 얼굴을 보며 역시 기쁨이 넘치게 된다.

 

그런데 아버지께서는 거룩한 몸을 얻은 자들이 질서를 지키기 원하신다. 그러므로 자녀들이 성소 밖을 다닐 때는 늘 자신의 빛을 비추며 다닌다. 또한 거룩한 육을 놓고 영혼만 다닐 때도 그 빛을 지속적으로 비춘다. 그러므로 그들은 각기 다른 빛을 보고 자신들의 질서를 깨닫는다.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하시어 자녀들이 항상 질서를 지키도록 하시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열 번째 상징으로 처음과 나중이라는 말씀을 주신다. 1:17을 보자.

 

처음과 나중의 의미는 8절에 있는 알파와 오메가와 똑같다. 그러므로 그 안에는 두 가지의 의미가 있다. 첫째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 함께 계셨던 것을 뜻한다. 둘째 무슨 일을 시작했으면 그것을 끝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 말씀에서 교회가 한 가지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뜻대로 이 세상을 멸망시키신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세상을 마치시되 앞으로 계속해서 주시는 이 계시록의 말씀대로 하시겠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열한 번째로 자신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고 하신다. 1:18을 보자.

 

이 말씀에서 전에 죽었었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뜻한다. 그리고 산 자라는 것은 그 십자가의 죽으심 후에 거룩한 육체를 입고 계속해 살아계신 것을 의미한다.

 

또한 사망과 음부라는 것은 원수의 사망권세와 무저갱을 뜻한다. 그리고 열쇠를 가졌다는 것은 원수의 사망과 음부의 심판을 그리스도께서 삼 일 동안 내리셨다는 뜻이다.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의 그 행적을 보면 깨달을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육신의 죽음을 당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영혼은 그 육에서 나와 둘째하늘의 심판대로 가셨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셋째하늘에서 둘째하늘로 내려오시어 그 아들을 심판하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그 하나님의 심판 후에 거룩한 육체의 상급을 받으셨던 것이다.

 

그 후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한 육체를 입고 음부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사람의 육신을 입고도 순종을 통해 승리한 것을 보여주셨다. 즉 사망권세를 가지고 옥에 있는 원수에게 승리를 선포하셨던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원수에게 승리를 선포하시므로 사망과 음부의 심판을 내리셨다.

 

반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는 것은 그 승리의 선포를 그리스도께서 죽음과 부활로 내리셨다는 뜻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죽으신 후 삼일 만에 그 거룩한 육체를 보여주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그 옥에서 승리의 선포를 하신 기간은 모두 삼 일이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는 말씀을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선 십자가에서 그 육신이 죽음을 당하셨다. 하지만 심판을 받으시고 거룩한 육체를 입으신 후 무저갱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그 음부에서 사망권세를 가진 원수와 모든 자들에게 승리의 선포를 삼 일 동안 하셨던 것이다. 이것이 바로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는 말씀의 의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제 사망권세를 가진 원수에게 선포를 마치신 후 그 음부에서 나오셨다. 그리고 자신의 거룩한 육체를 여자들과 제자들에게 보여주셨다. 그러므로 그 날이 바로 십자가에서 죽으신 후 삼일 째였다. 그리하여 그때부터 교회는 그 부활을 기념하며 주의 첫날에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죽으신 후 모두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계셨다. 하지만 40일 후에는 둘째하늘로 올라가셨다. 그리고 낙원에 오르신 후 구약의 거룩한 자들과 그리스도를 믿었던 자녀들과 함께 거하고 계셨다. 그리고 지금 요한에게 계시를 주고 계신 것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는 전에 육신은 죽으셨었다. 하지만 그 후로 거룩한 육체를 입고 계속 살아계셨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는 말씀을 주신 것이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는 곧 산 자라 내가 죽었었노라 는 말씀을 주셨다. 또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는 말씀도 주셨다. 그런데 교회는 다시 오시는 그리스도를 잘 맞이하기 원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이 말씀을 주신 이유를 잘 깨달아야 한다.

 

사람의 몸은 항상 머리가 가는 곳으로 따라간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의 머리시다. 그리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그러므로 몸인 교회는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을 그대로 따라가게 되어있다. 즉 교회도 그리스도처럼 죽었었지만 산 자가 되는 것이다. 또한 그리스도처럼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진 자가 되는 것이다.

 

교회는 다음과 같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고 산 자가 된다.

 

교회는 아버지의 뜻을 이루고자 아버지의 말씀에 죽기까지 순종하는 자들이다. 하지만 원수는 아버지의 뜻을 대항하는 자이다. 그리고 원수는 육신에 대한 사망의 권세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 사망권세로 그리스도도 죽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원수는 자신이 가진 사망권세를 가지고 마지막 때에 교회도 죽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처럼 교회도 자신의 십자가에서 죽음을 당하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와 아들과 거룩하신 영께서는 그 죽은 자를 의롭고 정직하게 심판하신다. 그리고 그 거룩한 영혼에게 거룩한 육체를 주신다.

 

교회가 이렇게 부활하면 그리스도처럼 죽었으나 산 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처럼 육신의 사망권세를 가진 그 원수를 이기게 되는 것이다. 즉 원수가 가진 그 사망권세와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이기지 못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교회가 이 승리의 말씀을 꼭 붙들기 원하신다. 교회가 원수의 사망권세를 이기고 거룩한 육체의 생명을 얻기 원하시는 것이다.

 

그런데 그 승리와 생명은 오직 십자가를 통해 주어진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교회가 전에 죽었었지만 산 자인 자신을 따르기 원하신다. 또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진 자신을 따르기 원하신다. 그리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그 원하심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교회는 오늘도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교회가 자신을 따르고 있음을 알고 계신다. 또한 교회가 자신을 따르며 육의 고통과 두려움이 있음도 아신다. 하지만 그리스도께서는 교회에게 죽음 후 승리한다는 믿음과 소망을 주기 원하셨다. 그러므로 전에 죽었었지만 산 자로서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진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신 것이다.